스토리 부국(富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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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부국(富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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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太山 小天下".
-태산에 올라보니 천하가 작아 보인다-
2500년 전 노나라 사람으로 유교의 근본철학을 집대성한 공자가 56세의 늦은 나이에 방랑길에 나선 뒤 태산에 올라 남긴 말이다. 이 짧은 6글자의 의미를 좀 더 깊이 느끼고 싶어 태산에 올랐다. 산동성 제남에서 하루를 머문 뒤 차량으로 태산입구에 도착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걱정이 태산이다", "태산같이 무거운 죽음도 있고 깃털처럼 가벼운 죽음도 있다", "태산명동 서일필", "태산 같은 파도가 덮쳤다" 등등. 중국인들에게 영원한 영산(靈山)인 태산은 과연 얼마나 높고 웅대하기에 그 오랜 세월을 신비의 산으로 또는 모든 비유와 바램의 대상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가 늘 궁금증의 대상이었다. 

 

정상의 옥황정을 향해 북쪽 명당원에서 등산화 끈을 맺다. 남쪽 도화원으로 오르는 길은 이미 케이블카가 설치돼 등산로가 없어지다 시피 했기 때문에 2시간동안 땀을 쏟고 나서 정상에 올라섰다, 하지만 이게 무슨 태산인가. 중국의 오악이나 큰 산에 비교하면 태산은 그저 거대한 영토의 동쪽 귀퉁이 산동성에 있는 그저 그만한 산이라고 해야 옳았다. 옥황정의 고도가 1545미터로 백두산이나 한라산에도 훨씬 못 미치고 지리산 정도에나 견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개발된 정상 주변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수많은 관광객들로 초만원이어서 이미 걸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보잘 것 없는 이 보통 산에 해마다 수백만의 인파가 몰리는 이유는 그들도 필자처럼 "공자 스토리"를 체험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유교와 공자가 오랫동안 숭상 되어 오다가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서 비림비공(非林非孔) 즉 임표와 공자 깍아 내리기 격하운동에 휘말리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최근 다시 공자의 존엄성을 부활시키는 분위기다. 중국정부의 특명으로 전 세계에 공자 아카데미라는 중국어 학당을 운영중이고 그가 남긴 문화유물을 세심하게 복원중이다. 공자세우기와 태산홍보에 힘입어 산동성 전체가 관광으로 먹고 살 정도다. 특히 인근 추성은 맹자의 고향이어서 동양철학이나 공자와 맹자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성지순례하는 기분으로 태산을 찾고 있다. 

 

역사는 어느 곳에나 있다. 태산처럼 거창한 역사는 아니더라도 만들기에 따라서는 재미있고 의미 깊은 역사가 얼마든지 있다. 어떻게 덧칠하고 가꿔나가느냐가 현재의 화두다. 지금 세계는 역사에 이야기 입히기 전쟁을 치루고 있다. 있는 스토리를 더 잘 포장하거나 없는 이야기도 만들어내는 스토리 텔링의 시대인 것이다. 작은 포도밭을 와이너리 투어 코스로 개발해 대박을 터뜨렸다거나 사람의 발길이 끓긴 철도역에 미술관을 만들어 도시를 살린 이야기들은 이제 흔한 뉴스다. 

 

알프스 남부의 작은 마을 에비앙은 생수로 유명세를 타는 곳이다. 이 마을에 요양 온 귀족이 현지의 물을 마시고 건강을 되찾았다는 스토리를 덧칠해 오늘날 세계 1위의 생수고장으로 기세를 떨치고 있다. 삼다수가 2% 부족한 것은 이 스토리 텔링이 없어서는 아닐까? 

 

네덜란드는 국토의 30%가 바다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다. 물이 새는 제방의 구멍을 밤새 손으로 막아 나라를 구했다는 소년 "한스의 영웅담"은 풍차와 버무려져 세계적 관광국의 명성을 거둬들이고 있다. 여의도 140배 면적의 새만금을 만들고도 흥행에 실패한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해리포터를 촬영한 뉴질랜드나 스페인 빌바오시의 건축 르네상스같은 경우도 내용만 다를 뿐 스토리 텔링으로 승부한 좋은 본보기다. 없는 것도 만들어 내는 판인데 우리에게는 아리랑과 태권도, 웅녀 등 이야기꺼리가 너무나 많다. 전남의 작은 읍내 함평이 나비축제로 엄청난 관람객을 모으고 있다. 김덕수 사물놀이패나 난타가 일본관광객들의 필수 관람코스로 올라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형 캐릭터의 창조인형 "뿌까"가 세계 170여 개국에 수출돼 호평을 받고 있다. 창조할 수 있는 스토리와 환경이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다. 

 

어설픈 전공학과를 고집 할 것이 아니라 에니메이션과 역사스토리 창작 같은 분야로 청소년들의 관심을 돌려주고 정부도 과감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21세기형 부국창출은 유형제품을 만들어 파는 과거식 승부로는 이미 경쟁할 수가 없다. 음식에 이야기를 비비고 문화에 창작의 바지를 입혀야 생생해진다. 획일적인 암기공부를 걷어치우고 상상력을 펼 수 있도록 시각을 확 뜯어 고쳐줘야 한다. 우리는 이미 창조와 문화적 상상력의 시대를 맞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제4의 물결 속으로 빠르게 진입중이다. 

 

피터 드러커의 얘기다.

"지식근로자는 물건을 생산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이디어, 정보, 개념, 스토리를 생산한다." 우리는 20세기형 노동일꾼인가, 21세기형 지식 근로자인가?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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