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트러스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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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트러스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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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구의 1% 이상은 감옥에 가있다. 시민들이 서로를 고소하는데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변호사에게 훨씬 많은 돈을 쓴다. 미국에서 신뢰와 사회성이 쇠퇴하고 있는 증거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폭력과 민사소송이 만연하고 이웃관계, 교회, 노동조합, 클럽, 자선단체 등의 중개적 사회조직이 쇠퇴해가고 있다. 주변사람들과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체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호소가 증가 한다. 급기야는 주정부나 중앙정부가 펼치는 각종 정책에 대한 불신과 인종갈등, 지역갈등들이 대립적 개념으로 부각되고 있다. 신뢰가 무너진 탓에 내야하는 사회적 직접세는 점점 늘고 있다. 연간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이 직접세 비중은 계속 증가 추세다."

일본인 이민 3세로 시카고에서 태어나 사회학계의 세계적 석학이 된 프란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그의 역작 "트러스트(Trust: Social Virtues and the Creation of Prosperity)"에서 분석하고 있는 미국사회의 단면이다.

후쿠야마는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물리적 자본 외에 사회적 자본이라는 밑천으로 지탱해 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경제는 발전하고 펀드규모는 세계를 압도하고 있지만 최근 수 십 년간 트러스트라는 사회적 자본은 보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자본의 축적이라는 것은 복잡하면서도 여러 가지로 신비스러운 과정을 거쳐 문화적으로 이뤄지는 것이지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정부는 사회적 자본을 고갈시키는 정책은 손쉽게 시행할 수 있지만 이것을 다시 채우는 방법을 찾는 데는 엄청난 어려움이 따른다고 충고하고 있다.

이것이 어찌 미국만의 문제이겠는가?

우리사회는 지금 유례없는 신뢰의 상실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이유로, 정당 간 정치적 이해관계를 이유로, 지역갈등을 이유로, 계층간의 소득격차를 이유로, 학력간, 남녀간, 노사간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문제들로 신뢰는 점점 엷어져 가고 있다. 여기에다 남북한 대결구조의 지속은 우리들만 노력해서는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지닌 운명 같은 돌덩이처럼 한반도를 짓누르고 있다. 가난했지만 훈훈했던 옛날이 그리울 정도다. 물론 세상이 복잡해지니까 어느 정도 갈등은 예상했던 일이지만 더 격렬해지고 극단적으로만 변해가는 주장의 방법들이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위기감으로 연결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과 그 후폭풍이 지금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다. 재야단체와 야당은 민주주의 회복과 집권세력의 태도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최근에는 대학교수 사회에서도 역사상 보기드믄 시국선언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집권층은 시류에 끌려가는 듯한 화해제스처나 시국수습은 진보의 목소리만 크게 한다며 행동을 유보하는 분위기다. 그 틈새를 타고 경제적 불확실성과 컨트리 리스크가 서서히 높아가는 상황이다. 이만큼 경제발전도 이뤘고 민주주의도 정착단계에 온 것 같았는데 이게 허사였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그러면 이 상황에서 누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느 편이 먼저 신뢰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단 말인가.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지식인층과 리더집단, 나아가서는 국가를 대신하는 정부가 희생과 수습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재야세력이나 야당에게 현 정국을 수습하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과정에 엄청난 배려와 양보가 있어야 한다. 정권의 이념에 관계없이 모두가 우리국민이다. 진보정권 10년을 잃어버린 세월이라고 몰아 부치면 원한만 만들 뿐이다. 현 정권을 보수꼴통 집단으로 몰아 부치면 적대감만 쌓일 뿐이다. 

 

보수도 통치할 수 있고 진보도 통치할 수 있다. 우린 비록 20여년이라는 짧은 민주주의 역사지만 이것을 체험해왔다. 어떤 쪽이든지 KO 승을 추구하지 말고 판정승을 목표로 해야 한다. 상대가 의식을 잃을 정도로 두들겨 패고 싶겠지만 그것은 경기가 아니고 분풀이다. 분풀이가 끝나면 상처투성이에 후회만이 남는다. 그뿐인가. 남들의 모진 손가락질에 고립만이 남을 뿐이다. 이것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트러스트로 묶어주는 것은 역시 지금 이 사회와 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집단의 몫이다. 대통령부터 모든 리더들이 진정성을 갖고 하나하나를 풀다보면 신뢰는 저절로 생길 것이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껭이 말하는 리더집단의 역할을 다시 주목해 본다. 

 

"조직화되지 않은 무수한 개인으로 구성된 사회, 거대 국가가 억압하고 강제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는 살아있는 사회학적 괴물을 만들어 낸다. 더욱이 국가는 개인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너무나 외면적이고 단절되어 있어서 국가가 개인의 양심 속으로 뚫고 들어갈 수도, 개인을 가두어 사회화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리더집단은 국가와 개인사이의 2차 집단으로 끼어들어 개인으로부터 아주 가까운 곳에서 그들을 자기의 행동권으로 강력히 유인하고 그리하여 사회적 삶이라는 총체적 물결 속으로 끌어 들일 수 있을 때만 트러스트가 유지될 수 있다. 2차 집단이 이 역할을 맡는데 적격이며 이것이 그들의 숙명이다." 

 

경제는 신뢰를 먹고 사는 생물이다. 그나마 우리가 이정도 품위를 유지하면서 지탱할 수 있는 것은 경제덕분이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소모되면 경제라는 생물은 병들고 급기야는 죽어버릴 것이다. 이 사회가 후쿠야마 교수의 예언대로 "트러스트"를 유지하면 선진국으로 갈 것이고 "트러스트"를 상실하면 우리는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불행을 막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내고 신뢰의 끈으로 묶어내는 리더 집단의 행동이 필요할 때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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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2009-06-23 10:21:38
늘 현학적이고도 현실문제에 접근한 발행인님의 글을 즐기고 있습니다
컨슈머타임스 화이팅---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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