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인연의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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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인연의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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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여름은 무더웠다.

거제도로 들어가는 모든 도로는 차단됐고 초년병 기자였던 필자는사선을 넘는 기분으로 마산에서 8시간만에 대우조선소 근처로 진입했다. 수십년동안 억눌려왔던 노동자들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역사상 유례없는 노사분규로 창원공단과 울산, 여천,거제 조선단지등이 완전한 혼란속으로 집입해 그해 여름을 달구고 있었다. 6월항쟁의 해결책으로 노태우 당시 대선후보가 민주화이행을 선언했고 때맞춰 노조결성의 열풍이 공단지역을 강타한 것이다. 이 와중에 대우조선소 노사분규를 진압하던 경찰이 쏜 최루탄에 노조원 이석규씨가 사망했다.

2만명이 넘는 대우조선소 노조는 위원장 양 동생 씨를 정점으로 외부와의 통로를 모두 차단한 채 "거제해방구"를 만들어 경찰과 일전의 의지를 불사르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취재는 고사하고 어떻게 노조와 접촉하면서 풀어야 할지 아무것도 할수 없고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하지만 감각적인 판단으로 일단 사망자 이석규의 신원을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 끝에 조선소 관할 동사무소를 찾았다.
주소를 수소문하고 뒤져서 올라간 거제군 신협읍 비탈길 자취방에서 드디어 이석규씨의 사진이 부착된 민방위수첩을 손에 넣었다. 희생자 이석규의 모습이 TV화면으로 방영되기 시작했다.
폭력성이 지나친 노조의현장화면과 함께-- 

 

이날 저녁 우리 일행(카메라기자와 보조원)3명은 노조의 과격장면을 여과없이 왜곡 보도했다는 이유로 소위 "체포조"에 붙잡혀 대우조선 노조 본부 광장으로 끌려갔다. 카메라는 빼앗기고 말그대로 인민재판 상황이었다. 사과방송을 하지 않으면 풀어 줄 수 없다는 폭력적인 협박이 이어졌다. 이때 허름한 갈색 점퍼차림의 시골티 물씬 풍기는 한사람이 소리쳤다.

"이런식으로 하면 우리의 정당성이 훼손된다. 이성을 잃어서는 안된다. 기자들도 노조의 상황을 알리려고 오지 않았는가, 풀어줘라."

하지만 건장한 노조원 몇 사람이 나서 그의 멱살을 나꿔채더니 "당신이 뭔데 참견이야 이 양반아-" 하고 을러대는 험악한 분위기에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어정쩡한 앞가르마 머리 스타일에 반항적인 눈매, 이마의 깊은 주름살, 좁은 하관-.

노무현 변호사였다. 민추협 소속 인권변호사로 이상수(참여정부 노동부장관 역임)변호사와 함께 거제에 급파돼 왔던 것이다. 자정이 넘어서야 사과 자막이 방영되고 우리는 풀려났다.

노무현 변호사는 고생했다며 굳은 악수로 위로의 눈길을 건넸다. 첫 만남이었다. 그날 밤 나는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대우조선 노조활동의 제3자 개입혐의로 그는 구속되고 말았다. 이 사실을 나는 뒤에 알았다. 

 

이후 5공청문회 현장 취재를 하면서-
지역통합을 고집하며 떨어지기만 하던 "바보 노무현"이 지역구를 갑자기 부산에서 종로로 옮겨 역시 가망 없는 선거전을 치르던 어느 유세장에서-
2000년 국민의 정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출연한 텔레비전 대담 프로그램에서-
2002년 대선후보 TV 합동 토론회장에서-
후보통합이 불발된 대선 투표 당일 어지러운 새벽시간에-
그리고 정제되지 않은 언행으로 임기를 지나는 동안 몇 번-
마침내는 지난 주말 뉴스 비보를 통해서-
22년 인연은 끝이 났다.

 

결코 존경할 수 없는 많은 부분으로 얼룩져 있었지만그는 담백하고 담대하고 단순했다. 그 열정과 분노를 잘 다스렸더라면 하는 아쉬움 속에 지난 주말의 비보를 접하고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교향곡을 듣고 싶었던 시간이었다.
폴란드의 대표적인 현대 작곡가 헨릭 구레츠키의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슬픔은 형벌이자 동시에 희망" 이라는 역설적 내용을 음미하면서-

자살을 택한 고인의 행동은 한없는 슬픔이지만 이제 서로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담대한 희망을 만들어가는 것만이 남겨진 사람들의 숙제라고 한다면 갈등의 터널 끝이 보이게 된다는 의미에서 구레츠키는 슬픔을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음표로 적었을 것이다.
그래서 망자는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고 유서에 적지 않았을까

 

초나라때 삼려대부를 지냈던 굴원(屈原)이 간신들의 모함으로 관직을 떠나 세상을 유랑하다가 어느 늦가을 이렇게 탄식했다.
"가을 산에서 바라보니 너무나 작은 세상, 왜 그리 처절하게 살았을까"
우리 모두는 지금 너무 처절하게 사는데 익숙하다. 상대는 무조건 제압해야 하고 우리편은 무조건 이겨야 하며 양보하면 죽음이고 물러서면 끝장이라는 처절함들-
이 처절함 앞에서는 권력도 신념도 정의도 다 무가치하고 부질없어 보일뿐이다
그래서 망자는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라고 적지 않았을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면서 정신적으로 우리처럼 이렇게 가난한 나라는 없다.
이유를 갖다 대면 우리자신이 수치스러울 뿐이다.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로 세상은 언제나 보수와 진보, 급진과 온건으로 나뉘어 갈등하고 대립 해왔다. 다만 매듭이 만져지지 않는 대책 없는 외줄기 갈등이 아니라 협력과 대립이 똑똑하게 공존했던 국가들만 남들보다 먼저 성공했다. 한 마디로 선진국의 근간은 바로 상생과 배려의 정신이다.
세상의 반은 진보고 또 다른 반은 보수다. 버릴 수도 떠날 수도 없다. 운명이다.
그래서 서로를 인정하고 상생하기 위해 허물을 싸 안아야 한다.
노 전대통령 죽음이 또 다른 화합의 시작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노자(老子)의 도덕경을 다시 돌아본다.
세상 모든 사람이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음은 오직 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偕知善之爲善 欺不善己)
남을 아는 것은 지혜로우나 자기를 아는 것은 더욱 지혜롭다
(知人之智 自知之明)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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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완 2009-09-07 18:11:15
참다운 민중의 대변자이기를 원했던 고인을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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