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다비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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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다비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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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성공하고 싶다면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슴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길을 갈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와이너리를 시작한 첫해 뿐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선택한 길에서 종종 마주쳤던 회의적인 시각과 부정적인 말에
귀 기울였다면 오늘날 나, 로버트 몬다비는 어찌 되었을까. 그랬다면 아마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한 병에 백 만 원 대를 넘는 명품와인 "오퍼스 원(Opus One)", 이탈리아 프레스코발디 가문과 합작해 만든 "루체(Luce)", 칠레 에두아르도 차드윅 가문의 에라주라즈사와 함께 만든 세냐(Sena)", 등으로 와인 불모지 미국에서 세계적 명품와인을 탄생시켜온 로버트 몬다비가 만년에 토로한 자전적 고백이다.

 


85세 때 평소 그의 성격처럼 떠들썩하게 동네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하듯 써낸 자서전은 너무나 가슴 뭉클한 인간적 스토리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한번 읽기 시작하면 밤새도록 책장을 덮지 못하게 하는 묘한 매력에 이끌린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 비즈니스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90이 넘게 장수하다가 지난해 늦가을 타계했다.
1966년 52살의 늦은 나이에 동생과의 불화로 가업이었던 찰스 크룩와이너리를 떠나 세계 최고급 와인을 만든다는 목표아래 새로운 와이너리를 개척해나갔다.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 아버지를 따라 동부와 중부의 탄광촌을 거치고 배고픈 어린시절 나파밸리로 이주했다.
몬다비의 아버지 체사레 몬다비는 1900년대 초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이탈리아 고향의 낭만적인 전원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이주했지만 현실은 탄광촌의 무지한 노동과 저임금뿐이었다. 이민자 생활이 너무 고달파 고향 이탈리아의 전원풍경과 닮은 캘리포니아라면 소박하게 농사나 짓고, 생을 마칠 것 같아 무작정 서부행 기차를 탔다고 한다. 그렇게 미국 서부까지 온 몬다비는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한 뒤 1930년 중반부터 아버지가 가꾸던 작은 포도밭에서 기술을 익혀나갔다.


하지만 불같은 성격으로  남동생이나 다른 형제와 수없이 맣은 불화를 겪다가 법정소송으로 번지고 결국 서로는 파국을 맞는다.  법정싸움은 수년 동안 이어졌고 이 충격 때문에 그의 어머니는 암세포가 확대되 세상을 떠났다. 몬다비는 충격과 슬픔을 딪고  홀로 소노마 밸리 근처 토캘리에 작은 포도밭을 구해 독립했다. 인생의 장년기 이후에 새로 시작한 그의 와인사업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다며 비웃었다. 미래를 알수 없는 와인산업의 불투명성과 5년 동안 공들인 포도밭에 해충이 번져 단지 전체가 황폐화 된 일, 여기다 자금난까지 겹쳐 도저히 살아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들을 딛고 하나씩 매듭을 풀어나갔다.
보통사람 같으면 은퇴이후의 삶을 준비할 나이에 70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나파의 와인 알리기에 나섰다. 불타는 정열과 뜨거운 가슴에서 주체할 수 없이 끓어 오르는 에너지를 제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재출발 30 여 년 만에 한적한 산골 나파밸리를 세계적인 명품와인 단지로 만들어 냈다. 밤을 새워 오크통의 속성을 연구하고 병해충과 시름하며 포도밭에서 미친사람처럼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일하는가 하면 주말에는  직접 담근 포도주를 양손에 들고 인근 도시로 달려가 레스토랑과 술집을 전전하며 한사람 한사람에게 캘리포니아 와인을 알리려고 발바닥이 부르틀 정도로 쫓아 다녔다.


마침내 1997년 프랑스 최고의 블라인드 테이스팅.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고급와인과 엄격한 심판관들 앞에서 몬다비가 출품한 "샤르도네 리저브"는 영예의 대상을 차지한다. 뫼르쏘 샤르므, 슈발리에 몽라쎄, 뉘 생 조르드 등 명품들 앞에서-. 그것도 승부를 조작할 수 없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1등, 유럽인 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이때부터 캘리포니아산 나파와인은 본격적으로 세계적 명품와인 반열에 올라섰다.


 나파밸리는 이제 세계와인 애호가들의 성지로 꼽히지만 처음 포도밭이 생길 때 만 해도 이곳은 미국 서부의 후미진 시골에 불과했다. 그 유명한 골든게이트(금문교)에서 1시간 정도를 달리면 샌프란시스코만에 나파의 계곡이 펼쳐진다. 160 여 년 전 스페인 선교사들이 소노마와 나파지역에 들어와 남긴 발자취가 와인의 본고장으로 변신한 나파밸리 역사의 시작점이다. 은둔의 고장 나파는 로버트 몬다비의 손끝에서 다시 새 역사로 피어 올랐다.


임종까지 몬다비는 미국 와인협회 최고의 마스터, 코넬대 와인 명예박사, 미국와인협회장, 와인 스팩테이터가 선정하는 올해의 장인, 이탈리아 프랑스 국가훈장,애틀란타 올림픽 성화봉송 주자 등으로 자신이 빚어낸 명품와인 못지않게 명품인생을 살다 갔다.

 


몬다비 이야기는 몇 년 전 필자가 나파밸리를 방문했을 때나 그가 타계하고 난 지금이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명제를 제공하고 있다.
'Harvests of Joy' 보다는 'Joy of Harvests', 즉 기쁨의 수확보다는 수확의 기쁨을 거둔다는 생각으로-  .
성공을 해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즐겁게 일하다 보니 성공했다고.


몬다비가 남긴 말 가운데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은 한 구절.

'꿈의 열정을 따르고 정성을 쏟아라. 이뤄진다. 나의 길은 단순하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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