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물을 떠마신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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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물을 떠마신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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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3년 꽃 바람이 포근한 봄날.
도쿄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세이코(聖子)양은 취직자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졸업전부터 몇 년째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취직은 하늘의 별따기 였다.
대학에서 세칭 돈 안된다는 비교문화학과를 전공한 탓도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심각한 취업난은 풋내기 졸업생에게 쉽게 일자리를 허용하지 않았다.
마쓰시다나 도요타 같은 큰 회사의 문도 두드려봤고 기계부품을 생산 수출하는 중견기업 등에도 수차례 응시했지만 그녀가 고대하던 합격통지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무심코 입사원서를 냈던 도쿄 제국호텔에서 연락이 왔다.
세이코는 뛸 듯이 기뻐 단숨에 달려갔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깔끔한 호텔에서 일할것을 생각하니 적성이고 뭐고 따질 겨를도 없이 가슴만 두근거렸다.
입사절차를 거치면서 세이코는 근사한 옷을 입고 손님을 맞는 로비층이나 프론트 근무를 원했지만 결과는 6층 전체 객실의 화장실 청소담당으로 수습을 명 받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6층 20~30개나 되는 방마다 화장실 변기청소를 하고 나면 매니저에게 검사를 받고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며칠동안 열심히 청소를 하던 세이코는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더러운 화장실 변기를 닦으려고 대학을 졸업했던가".
갈등은 커졌고 입사를 했다는 심리적 만족감마저 떨어져 가던 어느날 자신의 매니저가 그녀를 화장실에서 불렀다. 변기의 청소상태가 불량하다는 지적을 한 것이다.
그녀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반응이 없자 매니저는 자신이 맨손으로 직접 화장실 변기를 박박 문질러 닦고 몇 번을 헹군 뒤 종이컵으로 변기안의 물을 떠서 마시는것이 아닌가.
세이코는 기겁을 하면서 그 광경을 바라봤다.
매니저는 한 컵을 마신 뒤 세이코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지시했다.

"제국호텔 방값이 왜 비싼지 아는가.
최고의 청소상태 유지는 기본이고 변기까지 우리집 안방처럼 관리한다는 인식때문이다.
고무장갑을 낀채 제국호텔의 변기를 닦으면 넌 즉시 해고야".
눈을 부라리며 세이코를 닥달하던 그 매니저의 언성은 계속 높아졌다.
"빨리 마셔--".
기에 눌린 세이코는 거부할수 없어 변기물을 떠 마셨다. 그리고는 곧바로 반대편 화장실로 뛰어가 점심 먹은 것까지 모두 토하고 말았다.
그일이 있은 뒤 세이코는 변기를 닦을때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갈등은 심해졌다.

 "더 이상 내가 이런 더러운 일을 하면서 제국호텔에서 구박 받을 수는 없어"라는 마음의 소리가 자신을 혼란스럽게 했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매니저와는 눈길도 닿지 않으려고 외면하고 지나쳤다.
하지만 그렇게 얻고 싶었던 일자리 인데다가 프로가 되려면 이 정도 시련은 견뎌내야 한다는 이성의 소리 또한 세이코를 심하게 흔들었다. 마침내 그녀는 결심했다.

"기왕 할바에야 내가 닦은 변기가 가장 반짝거린다는 소리를 듣도록 하자. 갈데까지 가보는거다".

다음날부터 세이코는 맨손으로 방마다 변기를 닦고 광을 냈다. 그렇게 자기 최면을 걸지 않으면 한순간도 자신을 이겨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85년 3월. 어느덧 입사 1년이되었고 다음 기수의 신입사원들이 층마다 배치되었다.
자신을 괴롭혔던 매니저는 후배들앞에서 모범을 보이는 의미로 "맨손 변기청소와 물마시기"를 주문했다.
세이코는 여유있는 동작으로 변기를 닦고 종이컵으로 그안에 받은 물을 한잔 떠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1년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노다세이코(野田聖子)는 현재 일본 내각부 과학 소비자 담당 장관이다. 고이즈미 내각때는 우정상을 지냈고 직전 후쿠다 내각때는 우주개발 담당 대신을 지냈다. 올해 50살로 기후현에서 내리 5선을 기록중이다.

노다 장관은 차기 유력한 여성총리감으로 꼽히고 있다. 인기가 폭락하고 있는 아소다로 현 수상의 뒤를 이을만한 재목으로 일본 정계의 태풍의 눈이다. 고이즈미 수상의
우정개혁안에 반대했다가 지난번 중의원 선거 후보공천에서 탈락한뒤 무소속으로 살아 돌아와 자민당에 복귀하고 장관직까지 중용됐다. 선거전에서그녀는 제국호텔 수습생 세이코의 쓰라림이 오늘날 노다세이코 장관을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최근 서울을 방문한 노다 장관을 프라자 호텔에서 만났다. 영화배우 같은 외모에 젊은 지성미를 발산하는그녀를 대면한뒤 이 여자 장관이 왜 차기 총리감으로 꼽히는지를 알 것 같았다.
자신을 잘 다스려야 세상을 평정할수 있다는 논어의 가르침을 수습생 세이코 나이에 이미 가슴속에 새겨 넣은 것이다.

사상최악의 청년 실업난속에 한편으로는 사상최악의 중소기업 구직난이 이어지고 있다.
큰 회사, 폼 나는 회사는 수 천명의 지원자가 북새통을 이루지만 중소기업들은 사람구경을 못해 안달이다.

수습생 세이코를 조련하는 어른들과 자신을 던져 승부를 거는 당찬 세이코가 시대의 정답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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