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 리포트 시대가 열린다
상태바
컨슈머 리포트 시대가 열린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http://www.cstimes.com
2012.03.12

 

컨슈머 리포트 시대가 열린다

 

 

에디슨의 전기발명에 버금가는 상품으로 사람들은 애플 스마트폰을 꼽는다. 전쟁 없이 그렇게 빨리 세상을 바꾼 제품은 근대 경제사에 없었기 때문이다. 생전의 스티브 잡스는 그 독보적인 제품과 명성에 걸맞게 괴팍하고 기고만장했다. 자기 제품을 험담하는 어떤 소리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애플의 야심작 아이폰4 출시를 앞두고 세계의 눈이 집중됐다. 그런데 완벽하다고 자부했던 이 제품이 손에 쥐었을 때 통화품질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애플은 충격에 휩싸였고 뉴스는 즉시 지구촌 미디어를 달궜다. 휴가를 중단하고 황급히 돌아온 잡스는 '데스그립'의 문제점 지적을 무조건 시인했다. 도도한 자존심이 큰 상처를 받는 순간이었다. 애플사는 대안으로 스마트폰 커버를 무료 배포하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잡스의 '항복'을 받아낸 주인공은 바로 '컨슈머 리포트' 였다.

뉴욕에 본부를 둔 컨슈머 리포트는 기업들에게 저승사자다. 1936년에 창간 이후 76년 동안 컨슈머의 매서운 눈초리를 유지해오고 있다. 미국에 나도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가 평가대상이다. 연간 3600개 품목을 시험, 평가해 정보를 내놓는다. 호평된 제품은 시장을 장악하고 비평된 제품은 창고로 직행한다. 100명 이상의 전문가들이 혹독한 검사와 각종 시험을 통해 상품을 평가한다.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텍사스 오스틴에 지사가 있다. 460만 명이 구독하고 모든 정보가 인터넷, 미디어에 공개된다. 정부의 간섭 없이 구독료와 기부금으로만 운영되는 비영리 시스템이어서 절대적인 신뢰도를 자랑한다. "미제는 양잿물도 마신다"는 '묻지 마 품질'뒤에 컨슈머 리포트가 버티고 있는 셈이다.

영국에는 '위치(Which)'가 있다. '어느 것'의 품질이 좋고 믿을 만한지 소비자를 가이드 한다. 영연방에서 100 만 명이 열독한다. 1957년에 창간해 지금까지 숱한 제품들을 스타로 만들거나 퇴출시켜 왔다. 삼성 갤럭시 폰이나 현대차가 유럽에서 주목 받은 것은 '위치'의 호평이 시발점이었다. 공산품 전체와 사진, 영화, 와인 등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대표 제품들이 '위치'의 최종평가를 받는다. 적당히 속이면 한번은 넘어가겠지만 불량으로 걸리면 소비자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운명을 감수해야 하니까. 기업들은 어떻게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영국에서 품질시비는 필요 없다. 위치의 평가표가 판결문이다. 이에 따라 상품의 생사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의 소비자 평가를 벤치마킹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다음주부터 한국판 '컨슈머 리포트'를 내놓는다. 첫 작품은 등산화다. 곧 이어 유모차가 대기 중이고 4월에는 연금보험과 음료수가 시험대에 오른다. 기업들은 긴장하고 소비자들은 기대한다. 그 동안 소비자연맹을 비롯한 수많은 단체가 활동해 왔지만 전폭적인 신뢰를 얻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정부가 나서서 시범을 보이고 결과에 믿음을 주는 방식이 시급하다고 지적돼 왔던 문제였다. 달라진 환경에 맞게 스마트폰 앱을 통해 누구나 정보를 쉽게 받아보도록 진행되는 것은 고무적이다.

현대인은 아침에 눈을 뜨면 광고로 하루를 시작하고 제품으로 일생을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쏟아지는 상품과 달콤한 선전이 과연 진실인지 아닌지 개인이 가려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제 컨슈머 리포트가 그 고민을 대신해 줄 것이다. TV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은 항상 높은 시청률을 유지한다. 나쁜 제품을 응징하기 위한 정보교환과 댓글달기는 인터넷 세상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다. 사람들의 생각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본지의 소비자 불만 신고 역시 하루 수 십 건에 이른다. 품질이 떨어지고 속여도 참고 제품을 사주는 소비자의 인내심은 이제 기대하기 어렵다. 매서운 감시는 역으로 우리상품의 경쟁력을 그만큼 높일 것이다. 당장은 괴롭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약이다.

다만 공정거래위원회가 무기한 컨슈머 리포트를 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공공성과 민간의 검사기능이 조합을 이루는 접점에서 독립적 활동이 보장될 때 신뢰도가 높아진다. 미국의 경우가 모델이다. 또 아무리 시작단계라고 하지만 예산배정이 너무 적다. 자동차나 전자제품은 품목 하나에도 5억 원 이상의 검사비가 필요한데 올해 연간 예산을 겨우 2억2천 만 원 책정한 것은 걱정이다. '이런 정책도 했소'라고 시늉만 내고 효과는 실종되지 않을지 우려된다. 의미 있는 시작이 되도록 고민이 더 필요한 대목이다.

만드는데 급급했던 우리의 지난 경제사를 돌아보면 감회가 새롭다. 한국상품이 일류브랜드의 혈통을 유지하려면 컨슈머 리포트는 기초를 다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컨슈머'들의 시선이 프리즘으로 모아져 예리한 빛을 발하면 제품도 그 눈높이를 따라갈 것이다. 매출액 세계 1위를 굳건히 지키는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의 말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소비자다. 대통령도 거지도 소비자라는 측면에서는 동지다. 우리의 보스가 바로 이 소비자다". 컨슈머 리포트 활동이 본격화되면 행정소비자, 정치 소비자 운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소비자 무서운 줄 알면 '한국판 컨슈머 리포트'는 이미 반환점을 돈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justin747@cstimes.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