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를 거부하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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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를 거부하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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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6

 

다문화를 거부하는 문화

 

 

후세인 씨는 구로역 가는 버스에 앉아 있었다. 한국친구와 즐겁게 이야기 나누는 등 뒤에 갑자기 욕설이 날아와 꽂혔다. '이 개00야'.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맨 뒷좌석의 30대가 노려보고 있었다. 왜 그러느냐고 묻는 그에게 다시 욕설이 튀었다. '이 냄새 나는 00야, 너 어디서 왔어 임마'. 술 취한 듯해 참고 있는데도 '유 아랍, 유 아랍'과 욕설은 그치질 않았다. 인도출신 보노짓 후세인 성공회대 민족연구소 교수가 당한 봉변이다.

11살 이스마엘 우단의 엄마 이경선씨는 눈물을 흘렸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학교폭력에 지쳐 '고통없이 죽는 법'을 가르쳐 달라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그저 보고만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출신 아버지와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있는 이씨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독하게 당하는 아들과 산다.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아들을 보호해줄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날 선생님이 들어오지 않는 자습시간에 지루함을 참지 못한 아이들은 '우리 반에서 가장 재수 없는 00'를 지목하는 투표를 했고 대다수가 이스마엘을 지목했다. 교실 뒤로 끌려 나가 주먹세례와 발길질 폭행을 당한 이스마엘은 우울증세가 깊어져 방문을 걸어 잠그는 날이 많아졌다.

수도권 대학에 유학 온 찬드라디는 강의실 앞에서 경찰관 2명에게 갑자기 수갑이 채워지고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이유를 묻는 그에게 진한 욕설과 손바닥 폭력이 날아왔다. 마약을 운반한 혐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입에 담기 힘든 욕을 들었고 '아가리 닥치고 너 살던 곳으로 없어져'라는 폭언을 참아야 했다. 며칠 뒤 그는 무혐의가 확인되어 다시 캠퍼스로 돌아왔다. 하지만 친구들 앞에서 체포되는 모욕을 당한 후유증으로 대인 기피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가 만약 백인이었다면 이렇게 당했겠느냐'가 다문화인들의 한결같은 절규다.

우리나라에는 150만 여 명의 외국인이 섞여 살고 있다. 중국동포가 가장 많고 동남아시아와 미국, 중동 등 30여개 나라 사람들이 다문화 사회를 이루고 있다. 힘든 일을 마다하는 세태로 공단과 식당, 노동현장에서 수많은 인력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있다. 자연스럽게 다문화 가정도 증가해 그들의 자녀 15만 여 명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에서 공부한다. 하지만 차별과 언어소통, 빈곤 등으로 우리사회 연착륙이 쉽지 않다. 문화적 충돌이 이대로 이어지면 2020년쯤에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

인구가 섞이는 것은 21세기 특징 중의 하나다. 이미 지구촌 전 인구의 10%가 이민으로 버무려져 있다. 2050년에는 20억 명 이상이 이민생활을 할 것으로 예측된다. 성서에 나오는 최초의 이민자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오바마, 사르코지, 후지모리, 수많은 유태인, 화교, 슬라브인, 아프리카 민족들이 이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세계는 더 이상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재래식 차별을 하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국의 해외동포 800만 가운데 다수가 이민자다. 수백 개의 국제결혼소개소가 성업 중이며 5천 쌍 다민족 합동결혼식이 열리는 나라다. 아직도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공존을 거부하는 문화가 왜 걷히지 않는 것일까.

섞이기를 싫어하는 단일민족이기 때문에 다른 후진국보다 편견과 배타가 심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가 단일민족인가. 정답은 틀렸다 이다. 주몽의 아들 유리왕의 황조가에 이미 중국한인 치희가 등장하고 가야 허씨의 대모로 인도공주 허황옥이 있었으며 아라비아인 처용과 원나라의 노국공주, 대한제국 황태자비인 일본 황실 이방자 여사, 이승만 대통령의 오스트리아 출신 프란체스카 영부인 등 오랜 시간동안 셀 수 없이 섞여왔다. 이러한 역사때문에 275개 성씨가운데 귀화성이 135개로 절반이다. 베트남의 화산 이씨부터 위구르계, 중국계, 몽골계, 여진, 아랍, 산동까지 뿌리도 가지각색이다. 민족주의의 포장으로 근대화를 이뤘고 여기까지 달려온 하나의 수단은 됐을지 몰라도 다문화를 기피하는 문화의 이유를 단일민족에서 찾는 것은 오답이다.

민족주의 연구의 권위자 탁석산 교수는 "민족주의는 세계화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의 사다리이다. 세계화가 이뤄지면 스스로 그 사다리를 걷어 차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독의 광부로 중동의 근로자로 땀 흘리며 이뤄온 우리의 과거는 미화하면서 다문화를 꺼리는 태도는 닫힌 시각이다. OECD 30개국 가운데 다양성, 호혜성 수용지수 28등, 행복도 25등, 선진화 지표 24등 하는 나라.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소득이나 무역대국으로 이룬 숫자에 비해 국제화 수준은 낙제점이다. 이대로 인구가 줄고 노령화가 계속될 경우 30년 후쯤 다문화 인구가 천만 명에 육박하고 필리핀계나 네팔계 대통령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옥스포드 대학의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한국의 심각한 인구감소 추세로 볼 때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최초의 국가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이를 '코리아 신드롬'으로 발표해 충격을 줬다.

행정안전부, 노동부, 농수산식품부, 외교통상부, 법무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통일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펼쳐지는 중구난방식 다문화 정책의 혼란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들 마음속에 깔려있는 편견의 그물을 잘라내는 일이다. 같이 살아가는 동반자적 시각으로 다문화를 바라볼 때가 되었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교육이 포기되면 가난이 대물림 되고 한국에 대한 반감이 가시지 않아 결국 폭력이 잉태된 사회불안 요인으로 커질 수 있다. 청계산, 북한산으로 떠도는 퇴직 전문가들을 모아 저렴한 비용으로 다문화 지원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기업과 매칭펀드를 만들어 민간영역의 다양한 통로가 개설되어도 좋을 것이다

세계는 융복합의 시대다. 개방과 공존이 키워드가 된지 오래다.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안산의 다문화 거리, 서울 가리봉동의 옌벤촌, 서울 광희동의 우즈베키스탄 상점가, 혜화동 성당근처의 필리핀 장터를 지날 때마다 빨라지는 다문화 속도를 실감한다. 올해 선거에서 이 문제는 이슈가 되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처방을 하고 손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남이야 어찌 되든 우리끼리 앞만 보고 달려온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들이 잘못되면 우리가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문화혁명이 필요한 때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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