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解憂)가 기다려지는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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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解憂)가 기다려지는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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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2

 

해우(解憂)가 기다려지는 새해

 

 

 

가는 해와 오는 해가 교차하는 제야의 밤, 아시아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사라진 흉노족 이야기에 푹 빠졌다. 중국의 역사학자 장진쾌이(張金奎)의 대작 '흉노제국 이야기'는 2천 년 전 풍운이 엇갈리던 중앙아시아 너머 유라시아 대륙 양단으로 필부(必夫)를 초대해 좀처럼 풀어주지 않았다.

흉노(匈奴)는 당시의 경쟁국인 오손(烏孫)과 월지(月支)를 압도했다. 월지는 중국 북서부 간쑤성 서부를 장악한 유목민으로 용맹을 떨치면서 오손을 괴롭혔지만 흉노에 무너진다. 흉노의 통치자 라오샹에게 정복당한 월지는 인도 쪽으로 내려가 쿠샨왕조를 세웠고 간다라 불교로 아시아 고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월지에 당하기만 하던 오손은 흉노 덕분에 왕조를 찾았으나 그들은 늘 두려운 존재였다. 묵돌 선우가 영토를 확장하던 시절 흉노는 전한(前漢)까지 농락하며 맹위를 떨쳤기 때문이다.

툰황(敦湟)이 근거지였던 오손은 지금의 아무르강 부근의 적곡성에 수도를 세웠지만 흉노의 세력은 날로 커져만 갔다. 서역을 지나 한때 헝가리까지 진출한 흉노는 유럽 역사에도 훈족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발자취를 남겼다. 아틸라는 동방의 초원 문명을 로마문화의 울타리 안으로 가져와 싹을 틔웠고 이때의 공포심은 부패한 로마제국의 멸망을 앞당겨 결과적으로 유럽의 봉건화에도 기여할 만큼 흉노는 강력한 힘을 과시했다. 위험을 느낀 오손은 결국 한무제와 결탁해 흉노를 견제하는 전략을 구상했다. 한나라는 혈맹의 정표로 해우(解憂)공주를 오손왕과 혼인시키고 힘을 합해 흉노의 침략의지에 대항했다.

BC 70년경 이 지역에 한동안 평화가 찾아왔다. 해우공주는 이전의 공주들과 달리 정략적이면서도 뛰어난 조정능력을 발휘해 두 나라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었다. 양국의 태평성대를 위해 몸 바친 해우에게 고독과 갈등의 시기도 있었지만 자신의 인생 황금기를 희생하며 성공적으로 동맹을 유지시킨 사실을 역사학자들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한무제가 그녀에게 해우라는 이름을 내린 것은 한나라와 흉노 사이에서 고통 받는 오손의 근심을 풀어주라는 의미였다. 해우공주가 죽자 백성들은 몇 대에 걸쳐 민중을 도탄에서 구할 또 다른 해우를 원했다.

불가(佛家)에서는 복잡하게 엉켜진 인연을 풀거나 걱정을 더는 의미로 오랫동안 해우라는 이름을 애용해왔다. 세상의 모진 근심을 다 털어내는 해우의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해탈한다고 가르친다. 몇 년 전 우유회사의 광고로 유명해진 해우소(解憂所)는 출연한 스님을 단박에 스타로 만들었다. 해우(解憂)가 서가(書家)의 언어에서 청년들의 유행어로 내려오는 시간이었다.

최근 통계청 조사를 찾아보니 국민의 45%는 자신이 하층민이라고 답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75%가 중산층이라고 응답했던 이들이다. 수출호조로 1조 달러 무역을 달성하고 삼성과 현대차의 사상최대 승진잔치가 있었지만 그 그늘에는 전세 값 급등과 청년실업의 그림자가 짙다. 부(富)는 늘어났다는데 성장과 고용은 그들만의 잔치로 빛이 바래지는 느낌이다. 압축성장과 압축민주화로 50년 동안 숨가쁘게 봉우리를 올랐다. 그런데 소득 2만 달러 첫발을 내디딘 지금 이곳이 공교롭게도 양극화의 정점은 아닌지 꼭대기는 사방이 뿌연 안개로 자욱하다.

나라간의 전쟁보다 더 큰 문제인 계층간, 세대간, 이념간의 갈등이 난무하는 시대다. 상생과 복지, 개혁의 숨결이 거칠다. 부패와 실망이 4년 주기 절묘한 타이밍으로 반복되고 있다. 등 돌린 민심과 청년의 분노가 깊다. 살길을 찾아 이합집산하는 정치판의 모습은 어쩌면 판박이처럼 똑같다. 또 선택의 시간만이 어김없이 우리를 쫓고 있다.

올해는 이달 타이완 총통선거를 시작으로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선거가 예고돼 있다. 장례식으로 법석을 떤 북한과 함께 주변국들의 변화가 격하다. 4월과 12월, 우리에게도 선택이 기다린다. 나라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줄 현인은 누구일까. 자신을 던져 전란에서 백성들을 구한 2천 년 전의 해우공주는 어디에 있을까. 이것이 올해 민초들의 고민이다.

부자들은 있어서 불안하고 빈자들은 없어서 불안하다. 불확실성의 저기압이 낮게 깔리고 있다. 냉소와 저주로 표류하는 지금의 사회분위기를 바꾸려면 누가 해우로 나서야 하는가. 그 답을 알고 싶은 새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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