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없는 1조 달러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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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없는 1조 달러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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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0

 

날개없는 1조 달러의 영광

 

 

60년이 걸렸다. 아프리카 가나 보다 못했던 국가가 모진 풍상을 딛고 세계 10대 무역국에 오르기까지. 미국, 독일, 일본, 중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에 이어 9번째다. 하나같이 제국의 위상을 지닌 역사로 식민지를 경영했던 강대국 틈바구니에 우리가 명함을 올렸다. 한국의 '무역 1조 달러' 달성은 그래서 기적으로 회자될 만하다. 1974년 100억 달러, 1988년 올림픽 때 1000억 달러, 2005년 5천억 달러, 다시 6년 만에 1조 달러를 해냈다. 수출로만 보면 세계 7강이다. 50년 만에 1만 배가 커졌다. 내용도 좋다. 조선, 반도체, 석유제품, 자동차가 수출의 40%다. 이만하면 운수 좋아 잠깐 봉우리에 오른 게 아니라 쉽게 무너지지 않을 내공이 깃든 성공으로 자부할 만하다.

5대 선진국 산업으로 하늘과 땅, 물위를 달리는 유체와 반도체, 철강을 꼽는다. 1904년 라이트 형제 이후 100년 동안 항공 산업은 당연히 강대국들의 차지였다. 전통적으로 기술수준이 가장 차이 나는 영역이다. 자동차와 조선공업 역시 세계 무역시장을 선도해온 필수 분야다. 이 세 가지 분야를 중흥시키려면 핵심원료가 필요했다. 철강과 반도체가 그 중심축이다. 오늘날 지구촌을 압도하는 우월적 산업은 철강, 반도체의 전제 위에서만 가능하다. 우리를 앞서가는 강대국 경제의 역사는 이 5대 분야의 각축전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항공 산업은 아쉽다. 조선, 자동차, 철강, 반도체 다 내세울 만한데 항공분야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념대결이 끝나고 군수산업이 재편되면서 항공 산업은 민수시장 중심으로 급팽창하고 있다. 그 만큼 기회가 많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를 키워낸 우리의 실력으로 미국에 버금가는 항공산업을 키워낼 수 있다면 미래의 게임은 훨씬 쉬워진다. 록히드 마틴과 노스롭 그루먼, 보잉, 레이시온,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 제너럴 다이나믹까지 미국의 항공생산은 500조원을 넘는다.

항공산업의 대표주자 보잉을 돌아본다는 기대는 그래서 더욱 설레었다. 레인이어 마운틴의 구름 걸친 봉우리 아래로 펼쳐지는 시애틀의 아름다운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도시의 남쪽에 거대한 보잉 제조공장이 자리하고 있다. 시애틀이라는 도시가 왜 수많은 사람들의 여행목적지로 꼽히고 빈번하게 영화가 찍히는지 알 것 같은 풍광이다. 밸뷰와 에버렛으로 이어지는 평원의 해안선은 사람과 문화를 포근하게 안아 들이는 마법 같은 끌림으로 다가온다. 거칠지 않게 정제된 자연의 선물이다. 시애틀 남쪽 에버렛으로 차를 몰아 수평선과 맞닿은 보잉 팩토리 활주로에 들어섰다.

   
▲시애틀 에버렛의 보잉팩토리에서

운항이 중단된 콩코드기와 공중조기 경보통제기 AWACS 사이로 보잉의 제조라인 건물이 끝없다. 드림라이너(꿈의 비행기) 787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보잉의 기세는 더 강하다. 짐 맥너니 회장은 이 기종으로 세계 민항기 시장을 통일하겠다고 선언했다. 보잉은 미국 최대의 수출기업이다. 141개국에 연간 700억 달러 어치의 항공기를 판다. 650억 달러를 수출하는 삼성전자보다 크다. 주문량은 놀랍게도 연매출의 4배를 넘는 3200억 달러에 이른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보잉의 제작라인이 미국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미쓰비시, 후지, 가와사키가 보잉부품의 35%를 댄다. 따지고 보면 보잉은 일본과 미국의 합작기업인 셈이다. 그런 인연으로 드림라이너 787의 최초 인수는 일본의 민항사 ANA(젠니꾸)였다. 지난 9월 양국의 언론이 떠들썩하게 잔치를 벌였다. 두 나라의 항공산업 연합은 앞으로 더 깊어질 것이다. 유럽대륙의 합작품인 에어버스를 따돌리겠다는 분위기다.

세계 경제의 중심축은 이미 아시아로 넘어오고 있다. 이러한 경제흐름에 보잉의 전략은 한발 앞서가고 있다. 중국과 주변국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동북아시아에 1250대의 항공기가 더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대비 중이다. 또 2017년까지 지금의 민항기 주력기종인 737을 737 맥스로 바꿔 향후 20년 동안 2만 3천대를 판매하겠다는 설명이다. 매출만 1조 달러. 상상의 숫자다. 그런데 미국에는 보잉 같은 항공업체가 5개나 더 있다.

20년 만에 민간 항공기 수요는 2배 늘었다. 앞으로 20년 동안 다시 배 이상 팽창할 것이고 그 시장의 고객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고등훈련기가 인도네시아, 아랍 에미레이트와 계약이 성사돼 흥분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이스라엘 판매를 놓고 총력전 중이다.외환위기 때 항공산업을 통폐합해 생긴 한국항공우주의 대단한 발전이다. 하지만 민간부분의 항공 부품산업은 연간 4천 억 원 수준이다. 대한항공이 그나마 항공기 부품을 만드는 유일한 회사다. 5년 쯤 더 지나야 지금보다 3배정도 늘어난 1조원 정도를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추종기술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했다. 이제는 추월기술에 매진해야 할 때다. 자동차도 조선도 남 따라 장에 가다가 시작된 발전이다. 숫자에 취해 기분 내는 행동은 금물이다. 핵심기술, 선도기술의 명제를 풀어야 한다. 5대 중심산업가운데 정복하지 못한 날개산업(Wing Industry)이 과제다. 소득 2만 달러 무역 1조 달러로 항공시장을 향한 이륙의 기반은 닦은 셈이다. 가장 빠르게 2조 달러 무역신화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항공의 성장엔진에 날개를 달고 힘차게 날아 올라야 한다. 항공산업은 서비스 산업 발전과 함께 우리에게 또 하나의 기록을 선사할 가능성이 크다. 시애틀의 보잉 팩토리가 유난히 더 크고 부러워 보인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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