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출판 기념회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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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출판 기념회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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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6

 

돌아온 출판 기념회 계절

 

 

베스트셀러 국회의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실력자일수록 베스트셀러 대열에 쉽게 올라간다. 이상득 의원은 책을 낸지 며칠 뒤 단박에 베스트셀러 대열에 동참했다. 한 언론사가 책을 사간 독자들을 분석해봤더니 팔린 책의 80%가 지역구에 우송됐다. 인터파크 배송지에 판매량 68%가 이 의원 지역구인 포항 남구로 보내졌음이 나타났다. 포항 북구에도 11%가 갔다. 포항에서 사준 책 부수가 이 의원의 베스트셀러 비결이었다.

정몽준 의원 책도 베스트셀러다. 아니나 다를까 정 의원의 정치적 기반지인 울산이 주요 배송지다. 교보문고에서도 정 의원의 책 18%가 울산에서 팔린 것으로 조사됐다. '왕차관'으로 소문난 박영준 씨 출판기념회에는 실력자 2000 여 명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행사장 일대가 마비되고 주인공과 악수를 기다리는 행렬은 그의 위세를 가늠하기에 충분했다는 후문이다. 정세균, 유시민 의원도 베스트셀러 의원 대열에 서려고 이런 저런 마케팅 기법을 동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의 계절이 왔으니 출판기념회가 낯설지 만은 않다. 현역이나 예비역이나 정치에 뜻이 있는 실력자들은 책을 내고 한몫 챙겨 내년 총선에 쓸 실탄을 마련하는 것이다. 웬만큼 바깥출입 좀 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주일에 두어 장씩 출판기념회 초대장이 날아든다. 적지 않은 부담이지만 안면에 받쳐 할 수 없이 얼굴을 내밀거나 부조금을 대납시킨다. 2~3년 조용하다가 선거를 앞둔 해에는 극성이다. 바로 올해 연말이 그 대목장이다. 출판회로 1억 이상 못 챙기면 힘없고 별볼일 없는 의원으로 분류된다니 세태가 씁쓸하다.

책값의 몇 배를 부조하고 받아온 저작을 보면 쓴웃음이 절로 난다. 평소 전문가임을 자처했던 터라 그 분야의 심도 있는 글들은 기대했지만 내용은 영 딴판이다. 이곳 저곳에 썼던 기고문, 기행문, 상식에 턱걸이하는 잡문들로 가득하다. 출마를 꿈꾸는 어느 후보에게 받은 책은 500 쪽 가운데 100 쪽 이상이 인터넷상에 떠도는 그저 그런 유머 모음집이었다. 실소가 지나쳐 실망감으로 짜증이 일고 화가 나려 한다. 아무리 정치인의 후원금 모금용이라고 하지만 책은 책다워야 할 것인데 책을 가장한 쓰레기들이 양산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자신들이 직접 쓴 책도 있지만 정치인들의 저서 대부분이 적지 않은 대가가 치러진 대필이라는 것은 다 아는 이야기다. 한술 더 떠 요즘은 책 내용 편집부터 출판 기념회까지 모든 과정을 원 스톱으로 처리해주는 대행사까지 생겨나 정치권 주변에서 성업 중이라고 하니 새로운 풍속도다. 필요는 수요를 낳는다고 했던가.

책은 지식을 전달하는 창구다. 책이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이런 식의 수단으로 쓰이면 지식의 질을 떨어뜨리는 행위다. 단테는 '신곡'이라는 책한 권을 쓰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다윈은 '종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마다가스카르에서 일생을 소모했다. 정약전은 유배지 흑산도에서 죽을 때까지 물고기를 들여다보고 '자산어보'를 남겼다. 시대가 바뀌었다지만 요즘도 책 한 권을 쓴다는 것은 영혼을 혹독하게 짜내는 일이다. 머리가 빠지고 위장병이 도지고 불면의 밤이 수없이 지나야 이뤄지는 난산의 결과물이다. 조사하고 연구하고 체험한 내용을 녹여서 만들어내는 연금술이 책이고 지식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얇고 가벼워지는데 정치인들이 또 한몫을 단단히 해내고 있다.

문제는 그들끼리 그렇게 책 내고 잔치하고 오가면 그만인데 기업인이나 지인들에게 무차별 초대장을 보내 부담을 주는 것이다. 법을 만드는 의원 자신들도 알고 선관위도 안다. 출판기념회가 선거자금을 만드는 통로이고 내놓고 말하기 낯 뜨거운 이벤트라는 사실을. 하지만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서로 눈감아 주는 게 체면이고 예의라고 생각해서 일까. 아니면 동업자들끼리의 동지애일까. 일반인들이야 그들의 눈 밖에 나지 않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에 일부러 시비를 걸 이유가 없다. 착한 유권자들이다. 어떤 이는 하루 두세 탕씩 옷자락을 휘날리며 눈도장 찍고 봉투 건네는 데 분주하다.

이렇게 수많은 행사가 이어지지만 그 누구도 모아진 돈을 연말 불우이웃돕기나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는 사람은 없다. 통 큰 정치의 구호만 있고 통 큰 정치인은 없다. 하긴 어떻게 해서 챙긴 주머니인데 기부운운 하는 것 자체가 어림도 없는 발칙한 제안일지 모른다. 구세군 냄비를 지키는 손이 시리고 방울소리가 쓸쓸한 연말이다. 차라리 없는 사람들끼리 십시일반 이웃돕기에 더 익숙해진 세상이다. 다가오는 추위에 난방걱정이 막막한데 출판기념회 행렬은 길기만 하다. 힘 있는 곳에만 봉투와 눈도장이 쌓이는 계절이다.

오늘도 아침시간 사무실로 나오는 출근길, 중앙선거 관리위원회가 내다 건 현수막이 장충체육관 앞에서 겨울바람에 나부낀다.

"유권자 여러분, 정치인으로부터 축·부의금 10만원을 받으면 과태료가 100만원입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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