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답은 늘 밖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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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해답은 늘 밖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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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0

 

한국, 해답은 늘 밖에 있다

  

 

먼지 수북한 책장에서 낡은 책을 찾아냈다. 30년 전 탐독의 기억이 새롭다. 누렇게 변해버린 책갈피에서 특유의 냄새가 풍겨져 나온다. 대학시절 통일논문발표대회를 마치고 부상으로 받은 선물.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다. 척박했던 대한민국 분단 현대사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한 미 펜실베니아 대학 이정식 명예교수가 쓴 역작이다. 얼마 전 타계한 미 버클리대의 석학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의 제자로 동고동락하면서 공동 저작한 이 책은 1974년 미국 정치학회가 최고의 저술가에게 주는 우드로우 윌슨 파운데이션상을 받으면서 동아시아 공산주의 연구의 국제적인 교과서가 되었다.

해방전후사에 눈을 뜨게 한 이정식 교수를 경희대가 마련한 '한국현대사' 특강에서 만났다. 30년의 경외감을 확인하기 위해 열 일을 작파하고 달려갔다. 올해 여든 살의 연륜에도 불구하고 꼿꼿하게 강의를 이어가는 카리스마에 잠시도 시선을 돌릴 수가 없다. 1931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해방 후 북한으로 귀국, 1.4후퇴 때 남쪽으로, 한국전쟁 중 미군장교와 선교사의 도움으로 UCLA대학 유학길, 국제정치학계 거물로 지금까지 무려 30여권의 저술을 내고 인생의 황혼을 맞이하기까지 그의 운명이 기구하다. 이승만, 서재필, 여운형 전기를 비롯해 한국 공산주의 태동과 남북문제는 일관된 그의 연구주제였다. 아직도 현역처럼 저술과 강의를 병행하고 조만간 미국에서 '박정희 평전'을 출간할 계획이라니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대 학자다.

"우리나라 분단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분단 고착화의 이유를 1946년 봄 미-소공동위원회 실패와 남한단독정부 수립을 촉구한 이승만, 맥아더의 음모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실은 이승만이 귀국하기도 전에 스탈린의 지령으로 북한 단독정권 수립 계획이 이뤄졌다. 46년 5월부터 북한은 중국 공산군의 후방기지로 변했다. 스탈린의 지시로 북한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립이라는 중국내전의 연장지역이 된 것이다. 이로부터 분단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카이로 회담, 얄타회담 이전에 런던에서 승전국의 전리품을 논하는 외무장관 회의가 있었는데 이때 소련은 북아프리카의 트리폴리니아(지금의 리비아)를 원했다. 미국과 영국의 반대로 이 목표가 무산되자 스탈린은 북한에 단독정권 수립을 밀어 부쳤다. 런던 외상회의에서 코리아라는 언급자체가 없었으니 정치학자 아무도 깊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방대한 자료 분석과 국제 관계자들의 증언을 청취하고 내린 확신은 결국 런던외상회담 이후 스탈린의 결심이 한반도 분단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이다. 나 자신도 그 증거들을 최근에야 확인할 수 있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새로운 주장은 해방전후사의 줄기를 새롭게 바꿔 놓을만한 획기적인 내용이다. 세상의 흐름을 잘못 짚어온 이유는 오직 한국 안에서만 해답을 찾으려 한데 있었다고 이 교수는 털어놓았다. 돌이켜 보면 조선말 우리는 청나라에 신세를 지고 사는 처지였다. 심약한 왕조를 일제가 삼켰다. 해방은 연합군 덕분에, 분단은 미국과 소련에 좌우 되었다. 이념이 풀리고 국제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중국과 러시아에 묻혀있던 자료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 바람에 우리 힘으로는 알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사실(史實)들이 더 이어질 수도 있다.

북한을 중공군의 후방기지로 만들기 위해 단독정권을 세운다는 1946년 스탈린의 지령이 60년 분단의 결정타가 된 셈인데 이러한 역사를 잘못보고 분단이유를 이승만에서 찾아 내려 한 한국현대사 연구가 초라해지는 순간이다. 그 바람에 오늘날까지 해방전후사의 좌우논쟁은 이어지고 있다. 서로를 자극하는 시비거리로 애용된다. 논쟁의 멍에를 벗어 던지지 못하는 우리 정치의 모습이 또한 안타깝다. 지정학적 이유로 주변국과 강대국의 이해관계를 면밀히 관찰하지 않고 세상을 재단하면 이렇게 중대한 역사적 과오를 범하게 된다는 노(老)석학의 당부가 절절하다.

역사와 정치만 그럴까. 왕복교역 1조 달러를 돌파해낸 경제는 어떨까. 내부에서 해결되지 않는 운명의 방정식을 외부로 돌려 수출로 이끌어온 경제성장 역사가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지 않는가. 지난 60년 동안 물건을 팔지 않고는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었다. 과거나 현재 모두 우리의 해답은 늘 밖에 있었다. 미래비전 역시 밖으로부터 실마리가 풀려야 희망이 있다. 그래야 우리가 지향하는 강소국 모델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또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미국과의 FTA 협상체결이라는 지금의 과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선택한 대한민국 자본주의 후기를 결정짓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독수리의 눈으로 매서운 관찰이 요구 된다. 미국 다음에는 중국과 일본, 러시아가 기다리고 있다. 강대국과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숙명을 우리끼리의 내부 싸움으로 결론 낼 수는 없다. 이만큼 이뤄낸 바탕을 딛고 공존을 추구하는 관계설정,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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