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멀리가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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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8


 

함께 멀리가는 지혜

  

 

신용카드가 처음 도입된 90년대 국세청은 이를 알리고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각 언론사에 카드사용 캠페인을 해달라고 읍소 하는가 하면 사용률이 높은 타이완을 벤치마킹하자면서 선심성 출장을 제안하기도 했다. 카드를 쓰면 세금을 추적할 필요도 없이 소비자들의 쓰임새가 투명해져 세금을 거두기도 쉽고 세수목표액도 쉽게 채울 수 때문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카드를 외면하자 정부는 이것저것 인위적 규제 조항을 만들어 강제 드라이브를 걸었다. 결국 카드관련 의무사항이 잔뜩 늘면서 사용 액이 늘긴 했지만 규제 남발을 원망하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말았다.

모든 영업점은 무조건 카드가맹을 해야 한다든지 일단 가맹점이 되면 1만 원 이하라도 카드 결제를 거부할 수 없도록 벌금을 물린다든지 모든 음식점은 반드시 모든 신용카드를 받아야 한다는 등의 채찍은 지금 돌아보니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우리 식 규제였다. 덕분에 99년 40조원이었던 카드 사용 액이 10여 년 만에 300조원대로 껑충 뛰었다. 세계경제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성공이다. 하지만 옥죄어서 거둔 성공의 그늘이 만만치 않다.

카드사들의 가맹점 수수료는 올해 4조원을 넘을 조짐이다. 지난해보다 20% 늘어난 수치다. 작년에도 사상최대의 수익이라고 했는데 더 증가한 올해는 또 뭐라고 표현해야 될까. 특히 원성이 높은 곳은 전국의 영세 음식점들인 것 같다.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데 2% 넘는 카드 수수료를 꼬박꼬박 물어야 하니 열이 오를 법도 하다. 가난한 가맹점들의 코 묻은 수수료로 조 단위가 넘는 카드사의 이익을 메우는 현실이 안타깝다. 골프장, 백화점, 대형마트는 1.5%를 받으면서 작은 식당들은 단가가 낮다는 이유로 수수료를 더 물리는 상황. 그러니 오죽하면 자신들의 협회에서 카드사를 직접 해보겠다고 나섰을까.

상반기 7억 건의 카드결제 가운데 30%가 소액이었다. 하지만 이익으로 따지면 10% 미만이다. 더는 깎아줄 수 없다는 게 카드사 입장이다. 땅 팔아서 장사하지 않는 이상 더는 양보 못한다는 카드사들의 항변도 이해는 된다. 그런데 뒤집어 보면 카드사가 수익 대상으로만 영세가맹점을 대해왔지 서비스 대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음을 고백해야 한다. 카드사 수수료 수입 가운데 70%가 자영업자 부담인데 대형사에서 이익을 얻은 만큼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하는 방법을 찾고 함께 갈수는 없는지 궁금하다. 순익 규모를 감안하면 카드사들은 소액결제가 많은 가맹점의 수수료를 더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 가관인 것은 문제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금융당국의 '만 원 이하 소액결제 카드사용금지안' 이다. 이러려고 지난 10년 동안 목청을 돋우면서 카드사용을 독려했는지 한심하다. 슬쩍 흘렸다가 여론이 부글거리니까 없었던 것으로 접는 구태도 여전하다. 정책들이 아직도 공급자 위주의 틀 속에 갇혀있다. 수수료를 더 낮춰서 소비자나 시민들을 챙기는 노력이 부족하다. 가맹점의 요율 격차를 조정해서 카드사의 조 단위 이익에 메스를 가하는 해결책은 왜 선택하지 않는 것인가.

동네 슈퍼에서 감기약을 사게 해달라고 그렇게 원하는데도 약사회의 이익에 휘둘려 몇 년을 끌려 다닌 국회나 정부의 행태를 보면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수수료를 내려 달라고 수없이 외쳐온 30만 영세 식당주들이 총궐기에 나선다고 하니까 이제서야 할수없이 발등의 불을 끄려는 모양새다. 어차피 수수료율을 손대면 카드사들이 속한 금융지주사나 재벌들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변화를 택하고 고민하는 것이 정치이고 정책이다. 이런 난제들을 해결해달라고 국민세금으로 이들을 모시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소득 불균형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운데 카드사는 더 많은 이익을 올리고 더 많은 연봉에 더 많은 배당을 즐기면서 영세 가맹점들의 비명소리를 외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거래 수수료 수입으로 은행까지 사상최대 수익 잔치를 벌인다고 모두들 벼르고 있는데 한쪽만 살이 통통하게 오르는 불균형이 너그럽게 용인될 수 있을까. 이 와중에 동네 슈퍼가 도산하고 마을 식당들이 문을 닫으면 세상이 행복해질수 있을지 묻고 싶다. 왜 승자독식형 시장경제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지금 설득력을 얻는지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수단을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 차제에 카드 가맹점 강제조항에 문제는 없는지도 함께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저기서 분출하는 억지성 민원이 홍수를 이루는 시대다. 내 몫을 챙기려는 이른바 '떼법'도 문제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높낮이가 분명해 보이는 부분은 진지한 고민으로 접근해야 한다. 동반성장이나 함께 가기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는 소비자 경제로 빠르게 시스템을 전환해 가고 있다. 정부위주의 경제학, 공급자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난 새로운 접근법이 요구된다. 힘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경청하고 두둔해온 과거를 돌아보고 낮은 곳을 챙겨야 한다. 소리 없는 아우성들이 태풍으로 변한 경우를 역사는 수없이 증명하고 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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