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그리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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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그리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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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6


 

스마트그리드의 길

  

 

대정전(大停電)으로 원시시대가 다시 온다면.

우선 수돗물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화장실은 물론 샤워나 세수가 전혀 불가능해 그냥 출근해야 한다. 가스관압력 하락으로 공급이 중단된다. 취사 난방이 불가하고 택시 버스 운행이 멈춰 모두 걸어야 한다. 이동통신 중계기 전원공급이 끓겨 휴대전화가 몽땅 먹통이 된다. 유선전화, TV, 인터넷접속 전면불가. 통신암흑으로 들어간다. 엘리베이터가 중단돼 초고층 아파트나 건물을 계단으로 걸어서 오르내린다. 냉장고가 마비돼 먹을거리가 줄줄 녹아내린다. 이른바 '블랙아웃'이다.

2003년 8월 뉴욕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하철이 멈추고 신호등이 꺼지면서 교통 대혼란이 발생했다. 모든 사람들이 어둠속을 몇 시간씩 걸어서 귀가했다. 공항에서는 전자탑승권 발행이 중단되고 관제탑이 마비돼 항공기 이착륙이 금지됐다. 휴대폰이 먹통이 되면서 맨해튼은 암흑천지로 변했다. 병원의 환자들이 숨지고 하수장 펌프 마비로 오물이 역류해 냄새가 하늘을 찔렀다. 1700개의 상점이 강도에 털리고 1억5천만 달러의 재산피해가 났다. '블랙아웃'의 현실이다.

지금까지 가장 값싸고 질 좋은 전기를 누려온 우리국민들에게 엊그제 전국적 정전 사태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을 구조하는 장면과 수족관에서 죽어 떠오른 물고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정말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예고 한마디 없이 찾아온 정전도 그렇고 늦더위를 예측하지 못한 실수, 거기다 지식경제부의 안이한 대처 등이 기막히게 엉기면서 터진 후진국형 대정전. 한국판 '블랙아웃'의 불길한 징조다.

불확실성의 망령은 이제 에너지 분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기상이변으로 전력수요가 춤을 추는데 재래식 대응방법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해결책이 바로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똑똑한 전력망 또는 지능형 전력망)"다. 제주도 구좌읍 세화리와 평대리는 스마트 그리드 시범지역이다. 이곳에서는 전기가 남아도는 한밤중에 세탁기가 돌아간다. 옥상에는 태양광 전지가 낮에 전기를 만들어 저장한다. 햇빛이 좋은 날은 전기가 남아서 계량기가 거꾸로 돌아간다. 쓰고 남은 전기를 역으로 파는 것이다. 전국의 전력망이 하나의 공유체계로 연결돼 공급조절이 스마트하게 조정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만 하는 게 아니다. 미국, 일본, 스페인, 캐나다, 네덜란드, 스웨덴 등 좀 살만한 국가는 다한다.

유럽에서 가장 큰 제너럴 모터스(GM)의 생산기지인 스페인 아라곤 공장은 8천만 달러를 들여 지붕에 10메가와트짜리 태양열 발전소를 설치했다. 이 발전소는 공장에 필요한 전력을 생산한다. 전력량은 5천 가구에 공급될 정도의 규모다. 초기투자비용 회수에 10년이 채 안 걸리고 이후 생산되는 전력은 태양열시설 유지비만 제외하면 사실상 공짜다.

프랑스의 대형 건설사 부이그(Bouygues)는 파리 교외 자체수요를 위한 에너지 뿐만 아니라 메인 파워그리드로 되팔 수 있는 잉여전력을 생산할 정도의 태양열 에너지를 수집하는 최첨단 상업 복합단지를 세우고 있다. 미래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라는 명저를 통해 스마트그리드의 효용성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이베리아 반도를 넘는 피레네 계곡의 우에스카 왈카 기술단지는 사실상 자체운영에 필요한 전기를 현지의 재생가능 에너지로 충당하는 새로운 개념을 실현했다. 왈카 기술단지에는 열두개의 오피스 빌딩이 가동 중이다 마흔 개 이상의 건물 지붕에 태양열 집적 시설이 설치됐다. 이 시설은 필요한 전기를 풍력, 수력, 태양열 등 재생 가능한 에너지에서 얻는다. 왈카 단지에 입주한 마이크로소프트사 등 첨단 업체들의 가동에 전혀 문제가 없을 만큼 품질 좋은 전력을 생산해낸다.

시장조사 기관 지피라임은 세계 스마트그리드 시장이 올해 130조원에서 2014년에는 200조원을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분산에너지는 거의 우리들의 뒷마당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햇빛과 바람, 농사폐기물, 바닷물, 지하수가 그것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전력생산망으로 연결되고 모아지면 바로 스마트그리드의 저장전원이 되는 것이다. 지식경제부는 2030년까지 스마트그리를 통해 47조원의 에너지 수입비용을 줄이겠다는 계획으로 장기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그런데 너무 일찍 대정전의 재앙이 찾아왔다. 기후와 사용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정부의 스마트그리드 정책도 좀 더 빨라져야 한다. 아울러 수소에너지원 개발과 전력사용 시스템의 혁명적 전환도 신속히 촉구된다.

우주에서 가장 가볍고 풍부한 원소인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분해하면 순수한 물과 열이 나온다. 지난 30년 동안 우주선은 첨단 수소연료 전지로 동력을 조달했다. 수소를 얻으려면 우선 태양열, 풍력, 수력, 지력, 파도 등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전기로 바꿔줘야 한다. 이 전기로 물에서 수소를 추출해 두었다가 나중에 전력으로 변환 시킬 수 있다면 얼마든지 지속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또 하나는 지능적 유틸리티 네트워크로 외부기상조건과 소비자 요구에 맞춰 전기를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늦더위로 전기수요가 갑자기 급증하면 파워그리드에 과부하가 걸리고 피크에너지에 이를 때 유틸리티 소프트웨어가 에어컨의 온도를 1도 낮춘다. 세탁기의 회전속도를 줄여 싸이클을 낮추도록 지시하고 이러한 미세사용량에 동의하는 소비자는 고지서에 전기세 감액혜택을 준다. 최종소비자가 에너지 선택권을 갖되 유틸리티 네트워크로 상호 보완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백열전구 발명 132년을 맞았다. 전기에 지배당하지 말고 지배하는 시대를 만들때가 되었다. 그래야 재앙이 없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지식경제부가 능력 포화상태라는 점이다. 과학기술에 정보통신에 에너지 정책과 산업대책, 수출업무까지를 망라한다. 한때 선진국들이 부러워했던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를 뭉뚱그려 작은 정부를 만든다는 미명아래 지식경제부로 헤쳐 모였다. 덕분에 기형적 공룡부처가 된 지식경제부는 장관 임명자가 업무파악으로 세월 다 보내고 알만해지면 인사이동이 단행된다고 하소연이다. 스마트그리드 하나에만 매달려도 해법을 낼까 말까한 마당에 언제 창의적인 비전을 설정하고 이 나라 에너지정책의 미래를 그려내겠는가. 생각이 스마트하게 바뀌어야 스마트그리드 시대도 앞당겨질 것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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