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소비기한 표시제 '오픈프라이스' 실패 반면교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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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소비기한 표시제 '오픈프라이스' 실패 반면교사로
  • 김재훈 기자 press@cstimes.com
  • 기사출고 2011년 08월 22일 0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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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우유를 고르던 A씨. 진열대를 헤집고 애써 안쪽에 놓여있는 우유를 꺼내 장바구니에 담는다.

"유통기한이 더 길어요."

흔한 일상 풍경이다. 우유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상대적으로 유통기한이 긴 '먹을거리'들이 소비자들 사이에 인기가 좋다.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장점'과 가급적 신선한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의 교집합이다.

정부가 식품의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꿔 표시하는 제도를 적극 검토중이다. 유통기한 때문에 멀쩡한 식품이 버려져 자원낭비가 심각하다는 인식이 근저에 깔려 있다. 연간 약 6500억원에 달하는 제조업체의 식품 반품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분석도 내놨다.

일견 타당하다. 여기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줄어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일본, 유럽 등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시행중이라고 한다. 타당함에 글로벌한 명분까지 더해져 정책이 추동력을 더한다.

문제는 정책 검토에 앞서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얼마만큼 경청했느냐는 점이다. '숫자'를 뽑아내는 작업에는 '충실'했을지 모르나 '정서'를 읽어내는 작업에는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진열대 깊숙한 속에서 어렵사리 우유를 꺼내 드는 소비자들의 반발 개연성이다.

이를 의식한 듯 정부는 변질되기 쉬운 품목에 우선 도입하거나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당분간' 병기하는 등 단계적 추진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은 벌써부터 심상치 않다.

소비자시민모임, 한국소비생활연구원, 한국YMCA전국연맹과 같은 단체들은 소비기한 표시제도 도입에 대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소비자의 건강안전과 선택권을 빼앗는 나쁜정책이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한 관계자는 "소비수요예측을 제대로 못하고 생산과잉으로 인한 기업의 잘못을 물가안정을 빌미로 제도를 바꾸려고 하는 것은 소비자로서 납득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대화의 부재가 빚은 참극이다. 제 아무리 좋은 의도의 정책이라도 의견수렴 절차가 빈약하면 입지를 다지기 쉽지 않다. 세금부담이 줄고, 환경도 보호할 수 있다는데 반대할 소비자들은 많지 않다. '책상머리'가 아닌 소비자들 사이에 자리를 깔고 앉아 마음을 열고 정서의 간극을 좁혀야 한다는 얘기다.

시행된 지 불과 1년여 만인 지난달 말 '사망선고'를 받은 비운의 정책인 '오픈프라이스' 제도를 정부는 상기해야 한다. 도입 초기 정부는 소비자들에게 이득이라며 '무대포'식으로 밀어 붙였다. 소비자들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는 생략됐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과는 처참했다. 마트들의 편법적 영업행위로 가격시장이 혼탁해 지면서 오히려 소비자들 사이에 불신만 키우다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소비기한 표시제도가 진행되는 상황과 너무 닮아있어 불안하다.

컨슈머타임스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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