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육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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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육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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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8


 

바다가 육지라면

 

 

'얼마나 멀고 먼지 그리운 서울, 파도가 길을 막아 가고파도 못 갑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바다가 육지라면 배 떠난 부두에서 울고 있지 않을 것을.
아 아 바다가 육지라면 이별은 없었을 것을'

1969년 가수 조미미가 불러 전 국민의 애창곡이 된 노래 '바다가 육지라면'에 서린 꿈이 아련하다. 어린 시절 동네 '콩쿠르'의 단골 메뉴로, 부모님의 18번 지정곡으로 구성진 노랫가락이 생생하다. 경주 양남면의 어느 바닷가, 봄날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향토작가 정귀문이 만든 노래다. 몇 년 전 나정 해수욕장에 멜로디를 담은 노래비가 세워져 오가는 길손들의 발길을 머물게 하고 있다.

그랬다.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야 했던 그 시절 바다가 육지가 된다면 얼마나 기막힌 일들이 벌어질까를 상상하며 지냈다. 해안선을 따라 하염없이 돌고 돌아야 하는 도로나 배를 타도 더디기만 한 바닷길 너머의 신기루를 좇아 우리는 가슴속의 꿈이 펼쳐지는 날을 기대하면서 지내왔다. 장삼이사. 민초들이 덧없는 인생을 사는 맛은 상상 속의 날개를 펴고 마음껏 다음 세상을 꿈꾸는 자유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는 33km 직선도로를 달렸다.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 넓은 서해를 가로막아 새만금 해원을 육지로 돌려놓겠다는 생각을. 서해고속도로에서 연결된 방조제(防潮堤) 길을 30분쯤 달려 야미도에 도착하니 사방이 수평선으로 그려진 도화지 위의 한점처럼 섬이 떠있다. 견딜 수 없도록 뜨겁게 달아오른 여름날의 태양이 갈증을 유혹하는 외딴섬은 이제 육지가 되었다. 선유도 등 100여 개의 섬들로 둘러싸인 고군산 열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차량행렬이 뱃사람들의 삶을 통째로 바꿔 놓았다. 그들의 시선에서도 놀라움과 경이로움이 가득하다. 이런 것을 천지개벽이라고 했던가. 대역사(役事)가 대역사(歷史)로 바뀐 현장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군산에서 부안으로 달리는 방조제 오른쪽은 서해고 왼쪽은 1.5미터 낮은 새만금 간척지다. 해수면보다 아래 땅이 있는 셈이다. 간척대국 네덜란드의 주다치 방조제(32.5km)보다 더 긴(33.9km) 이 길은 이미 세계기록을 갈아치워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아래쪽 물을 서해로 퍼내 바닥이 드러나면 고르고 다져 새로운 국토를 만드는 것이다. 땅의 규모가 401 제곱킬로미터, 1억 2천 만평이라니 서울의 3분의 2, 세종시의 5배, 송도 신도시의 16배, 뉴욕 맨하탄의 5배가 넘는 면적이다. 경작이 시작되면 150만 명의 1년 양식과 10억 톤의 수자원이 확보되고 우량 농경지 옆에 광역 신도시까지 들어선다니 단군 이래 최대의 공사답게 새로운 시대가 기대된다.

한반도의 절경으로 꼽는 부안 변산반도와 감칠맛 나는 젓갈의 고장 곰소항, 동진강 만경강 두 젖줄을 끼고 곡창을 이루는 김제 호남평야의 지평선과 군산 바닷가를 잇는 장엄한 녹색의 땅이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년 공사 끝에 방조제 전 구간이 개통돼 이제 땅을 만드는 일만 남았다. 그래서 1987년 황인성 당시 농림수산부 장관은 이 공사를 시작하며 만경강(萬頃江)과 김제(金堤)평야를 아우르면서 날아가는 새 모양의 간척지 지형을 따 새만금(萬金)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낙후된 호남을 발전시키자는 명분으로 군사정권이 시작한 물막이 공사는 이렇게 방점을 찍었다.

공사 도중 갯벌이 오염돼 조개 양식장이 썩어 나가고 해안선이 통째로 바뀌는 환경문제도 있었다. 주민이 들고 일어나 2년이나 공사가 중단됐다. 프리초프 카프라의 저서 [환경의 그늘]이 경고하는 자연의 대재앙도 고려해야 하니까 어쩌면 주민의 요구는 당연했을 것이다. 갯벌이 사라지면 몰려가는 미생물과 어패류들의 의식 속에서 분노가 쌓여 인간이 더 큰 보복을 당한다는 그의 주장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생명이라는 명제로 이어지는 긴 역사의 관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환경단체나 NGO 관계자들의 시비와 수없는 찬반 논쟁은 그래서 꼭 허망한 것만은 아니다. 이 엇갈리는 갈등 속에서 방조제라는 하드웨어가 힘겹게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수질이다. 암스테르담이나 베네치아 버금가는 수변도시를 만들려면 새만금은 방조제 밖의 수질을 유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거기다 산업단지만 유치할 것이 아니라 레저와 문화가 버무려진 21세기형 테마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중국과 동남아 사람들이 손꼽는 명품단지를 꾸며서 그들의 혼을 빼놓겠다고 나서야 한다. 환서해 시대의 전진기지로 3억 명의 중국부유층을 흡수하는 블랙홀이 될 때 다시 한번 새만금의 성공을 논해야 한다. 우리의 놀라운 상상력이 빚어낸 방조제에 멋진 디자인을 입혀야 한다. 돌과 흙 퍼다가 컨테이너처럼 쌓아올려 육지를 만들었으니 그 안에 우리만의 매력있는 하이킬 콘텐츠를 담아내자.

갯벌과 어장이 사라지는 아픔을 조금씩은 양보하고 환경과 개발을 조화시켜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도록 깨어난 의식을 마비시키지 말자. 혹시 이 새만금이 '위대하게 무모한 흉물' 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의 아이디어를 간절하게 짜내야 할 때다. 또 한가지. 인간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외국명승지를 보러 가기 전에 새만금을 한번 돌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두바이의 인공도시를 능가하는 바다의 만리장성 새만금을 통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대견해진 '신국토지리지'를 직접 답사하는 뿌듯함을 누려보지 않겠는가.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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