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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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5


 

평화의 댐

 

 

파로호(破虜湖)의 푸른 물줄기가 포말로 부서진다. 화천과 양구 사이 북한강을 따라 달리는 뱃전으로 숱한 역사의 현장들이 다가왔다 멀어져 간다. 한국전쟁의 가장 처절했던 전투지역들을 지나 선박은 쉬지 않고 북쪽으로 엔진소리를 높였다. 유난히 비가 많았던 올 여름 계절 탓인지 풍부한 수량은 짙푸른 강변을 가득 채워 강렬한 태양과 함께 아름다운 수채화를 옮겨 놓은 듯 하다. 이성으로 촘촘히 엮인 세상을 빠져 나왔다는 생각에 잠겨있을 무렵 멀리 평화의 댐 선착장이 낯선 모습을 드러냈다. 불신과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사생아처럼 탄생한 댐은 강줄기가 얕아지는 곳에서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북한강의 허리를 정확히 이등분하고 있었다.

601미터 평화의 댐 도로에서 내려다 본 125미터 아래쪽 강물이 아스라하다. 댐은 협곡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흰 페인트로 댐 벽에 굵게 써넣은 '80m' '125m' 표시가 선명하다. 밑바닥 안쪽으로 4개의 수문이 설치돼 있다. 내려오다가 댐에서 막힌 물이 빠져나가는 수로다. 평화의 종 공원을 지나 상류를 살펴본 뒤 비무장지대로 들어섰다. 그 옛날 금강산에서 뗏목을 타고 내려오다가 머물렀다는 안동포구의 철교가 처연하다. 전방 2개 사단의 경계선을 흐르는 강줄기는 안동철교로 이어진다. 발 밑까지 찰랑거리는 수변에 때마침 제철을 만난 자주색 싸리꽃 군락이 아름답다. 쉽게 올 수 없는 곳이어서 그랬을까. 저 멀리 보이는 북한 금강산 줄기들의 다정함이 가슴 아파 그랬을까. 그 순간 이념도 분단도 다 꿈같은 너울 속으로 침잠해 감을 느꼈다. 싸리 꽃 무리의 끝자락을 돌아보니 날카로운 군사분계선 철조망이 감성의 늪 속을 허우적대는 나를 일깨워 준다.

   
▲평화의 댐 안쪽에서 필자

1986년 가을. 막 아시안 게임을 마치고 올림픽 준비가 한창이던 시절이 있었다. 전두환 정권은 느닷없이 건설부장관의 담화문을 통해 북한의 금강산댐 수공으로 서울이 물바다 될 가능성이 있으니 평화의 댐을 건설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온 나라 토목학자들이 동원되어 수공이 얼마나 무서운지 날마다 미디어를 달궜다. 북한을 타도하자는 국민적인 열기도 갈수록 뜨거워졌다. 이튿날부터 편성된 방송특집뉴스에 나갈 국민성금 모금현장을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돼지 저금통을 갈라온 어린이부터 혼수품으로 간직해온 금비녀를 내놓는 할머니까지 기막힌 사연들만 모아서 국민감동용 뉴스를 만드는 고단한 날들이 시작되었다. 그 해 연말 월급에서 성금을 떼인 기억도 새롭다.

TV 화면은 63빌딩이 반쯤 물에 잠기는 그래픽을 내보내 시청자들을 한껏 흥분시켰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용산 시가지위에 모형배를 띄우고 목청을 높였던 뉴스가 엊그제 같다. 국민성금 630억 원이 걷혔고 89년 1단계 공사가 완공되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년 감사원은 평화의 댐이 금강산댐의 수공과 피해예측을 과장했다고 결론 내린다. 만약 수공이 있다 해도 평년 홍수 때 용산이나 마포 저지대 정도가 침수될 수준이라는 설명과 함께. 2002년 보강공사로 댐 높이가 더 올라갔고 2005년 지금의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 평상시에는 물을 가두지 않는 건류댐으로 운영하다가 유사시에 26억 톤까지 저장하도록 설계되었다. 북한이 물 폭탄을 쏟아내면 서울이 반쯤 잠긴다고 '국민사기극'을 펼쳤으니 지금 생각해도 정말 웃음이 나오는 코미디였다.

평화의 댐은 전두환-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18년 동안의 세월에 걸쳐 완공됐다. 올림픽을 위협한다며 정권안보용으로 평화의 댐을 시작했던 전두환은 사기극의 주인공이고 수량조절기능을 인정해 증축을 결정한 김대중은 기회주의자고 증축완공을 소극적으로 다뤘던 노무현은 비겁하고. 댐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반전의 연속점이다. 보수와 진보의 시각에 따라 각자의 논리가 춤추는 미완의 현장인 셈이다. 남북간의 불신, 정치세력간의 불신, 국민간의 불신, 각 정권간의 불신, 그 불신의 숲에서 탄생한 불행한 작품인 만큼 효용가치를 따지는 것은 어차피 의미 없는 일이다. 시작부터가 정직하지 않은 행위였기 때문이다. 24년이 지난 이 여름에 평화의 댐 강가에 서서 헝클어진 역사를 생각해본다.

평양, 신의주, 요덕, 청진에서 탈출해온 새터민 대학생(탈북자들)들의 시선도 촉촉하게 젖어있다. 통일연구원이 마련한 세미나를 마치고 강변에서 이들과 함께 바라보는 댐의 모습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나의 물체를 사이에 두고 상반된 생각들을 정리해야 하는 고통이랄까. 숱한 대립과 조작으로 얼룩진 역사적 유물을 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우리가 북쪽에서 세상 모르고 살던 시절에 남쪽에서도 정말 동화 같은 일들이 있었습네다". 그랬다. 어차피 백성들은 속고 살 수밖에 없는 세상을 거쳐 왔으므로.

   
▲통일연구원 관계자들 그리고 북한 출신 새터민 대학생들과 함께

전 세계 분쟁지역의 탄피를 기증받아 녹여 만든 평화의 종을 타종하고 북한출신 젊은이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이 댐과 DMZ의 평화적 이용방안을 고민해보자고 입을 모았다. 언제까지 이 멍에를 지고 편싸움과 이념대립으로 날을 지새울 것인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는 의견들이었다. 그렇다고 서둘러서 될 일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섞이고 분위기는 이미 남북이 하나 된 느낌이다.

아픈 과거를 묻어두면 회한이 된다. 지금 와서 누구를 탓하고 미워한다고 역사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부끄러운 과거를 감추지 말고 털어내자는 생각으로 이곳에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그런데 4천억원의 혈세를 쏟아 부은 평화의 댐을 찾는 이들은 연간 몇 만 명 수준을 밑돈다고 한다. 산도 험하고 물길로도 머나먼 최전선에 위치한 것이 부담이었으리라.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이곳을 돌아보면 이념과 분단의 역사를 멀리 뛰어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자라섬의 재즈축제에 연계된 록 페스티벌을 평화의 댐에 유치해 해마다 여름이면 세계 청소년들의 이목이 집중되도록 대형 기획을 마련해보면 어떨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겹겹이 쌓이는 동안 버스는 비무장지대 초소를 벗어나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 새터민들의 노래가 구슬프다. 언젠가 베트남 출장 길에 어느 북한 식당에서 한복차림의 공연배우들이 불렀던 바로 그 노래다. '심장에 남는 사람'. 남도 북도 이념도 다 저 강물에 던져버리고 서로가 심장에 남는 사람, 그런 소중한 사람들이 되어야 할 텐데 지금 우리의 갈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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