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폭우 속 강퇴' 서울역 노숙인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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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폭우 속 강퇴' 서울역 노숙인의 절규
  • 강윤지 기자 yjkang@cstimes.com
  • 기사출고 2011년 08월 01일 0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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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성님 동상을 나가라고 하니 어느 곳으로 가오리오. 이 엄동설한에. 어느 곳으로 가면 산단 말이오. 갈 곳이나 일러주오."

"아따 이 놈아 내가 네 갈 곳까지 일러주랴. 잔소리 말고 썩 꺼져라."

90년대 히트를 쳤던 '흥부가 기가 막혀'라는 제목의 유행가 가사다.

최근 서울엔 엄청난 비폭탄이 떨어졌다. 104년만의 폭우에 우면산이 무너져 내리는 등 서울은 온통 흙탕물을 뒤집어 쓴 꼴이다.

이런 물난리 속에서도 서울시는 1일 서울역 내 노숙인들을 강제 퇴거시키는 작업에 돌입했다. 폭우로 엉망진창이 된 길거리로 내몰릴 서울역 노숙자들의 처지가 노래 가사 속 흥부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서울시는 노숙인 퇴거조치를 두고 이들 때문에 발생하는 민원 해결과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서울역의 이미지 개선을 명분으로 들었다. 현행 철도안전법에 따르면 역 시설 또는 철도차량 안에서 노숙하는 행위에 대해 코레일이 퇴거조치 할 수 있다고 적시돼 있기도 하다. '적법한' 행위의 연장선상이다.

문제는 대책이 없다는데 있다. 특히 폭우를 비롯해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8월에 노숙인들을 몰아내는 것은 비인간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시민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매해 서울지역에서만 300명 이상의 노숙인들이 주로 겨울과 여름에 목숨을 잃는다. 열악한 생활환경에 의해 건강상태가 악화된 노숙인들이 계절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실제 지난해 1월 서울역에서 쫓겨난 한 노숙인이 사망한 사례도 있다.

비판적 여론에 서울시는 '노숙인 보호소'를 대책이라며 카드로 꺼냈으나 이마저도 실효성은 없어 보인다. 서울시는 '내쫓긴' 노숙인들을 역 주변에 보호소 3곳으로 가도록 유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인근시설이나 사설 보호센터는 수용인원을 넘어서 담당 인력 등이 극히 부족한 실정이다.

노숙인 퇴거조치를 발표하기 전 사전 점검이 있었던 건지, '일단 내쫓자'는 '놀부심보'가 아녔는지 의심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다.

특히 서울시가 최근 '직접' 노숙인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1%가 '단체생활 및 엄격한 생활규칙' 때문에 쉼터 등 시설에 입소하기를 꺼리고 있었다. 24%는 '사생활 보장이 어렵다'고 답했다. 명색이 '노숙인 쉼터'라는 곳이 노숙인들에게 조차 외면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90년대 초반 노숙인으로 인한 민원에 직면했던 프랑스나 영국 등 선진국들은 숙박, 구직, 상담지원 등을 통해 노숙자들이 스스로 철도역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왔다. 근본적인 생계 지원 대책을 세워준 것이다. '무작정' 내쫓는 서울시의 모습과 상반되는 모습이다.

서울시는 앞선 선진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노숙인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시민들과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지난 25일 서울역앞 광장에서 열린 '거리 홈리스 강제퇴거 조치 서울역 규탄' 기자회견에서 한 노숙인의 발언이 새삼 가슴을 울린다.

"우리도 6·25 전쟁을 겪으며 고생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무조건 내쫓지 말고 일자리 제공 등 먹고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컨슈머타임스 강윤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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