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비가 미덕인가
상태바
어떤 소비가 미덕인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http://www.cstimes.com
2011.07.11


 

어떤 소비가 미덕인가

 

폭염의 계절 이 한여름에 자동차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다면 견딜 수 있겠는가. 그것도 독일산 최고급 신차가. 몇 번이나 차를 수리해달라고 하소연했건만 딜러는 차일피일. 화가 난 차 주인은 급기야 언론사를 전전하면서 외제차의 황당한 AS 실태를 하소연하고. 말썽이 나자 그때서야 회사측은 소비자와 대화로 갈등을 풀겠다고 태도를 바꾼다. 문제의 차량은 다른 차와 교환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힘겨운 싸움을 마친 그는 정말이지 다시는 독일 차를 사지 않겠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차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더 덥게 여름을 보내는 답답한 소비자 이야기다. 이렇게 혼쭐이 났는데도 그는 벌써 3번째 1억 원이 넘는 외제차만 타고 다닌다고 자랑이다. 팔 때는 목숨이라도 줄 것처럼 낮은 자세로 임하다가 계약이 되고 나면 주객이 전도되는 것을 아직도 알아채지 못했는지. 요란한 판촉행사와 달콤한 조건들이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영화처럼 현란하게 눈길을 사로잡지만 일단 사고 나서 불편함을 호소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러면서도 값싸고 실용적인 차량은 외면하고 남들의 시선이 꽂히는 외제차량만을 선호하는 그 소비자의 심리가 궁금해진다.

왕복 무역액 1조 달러 시대에 진입한 지금. 고리타분하게 외제차를 타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어떤 제품이든 소비자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 서비스를 개탄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불편한 수리와 복잡한 절차를 견디면서까지 충실한 고객으로 남아 있는지 안타깝다. 거친 대접을 받으면서도 참고, 속아주고, 견디면서 잘못된 소비버릇을 버리는 못하는 이런 경우야말로 바보 소비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될 만하다.

밥값을 아껴서라도 갖고 싶다는 여성들의 꿈. 샤넬 핸드백과 의류가격이 지난 4월 무려 25%나 인상됐다. 프라다와 루이비통의 모든 품목도 뒤따라 15%나 껑충 올랐다. 청년실업과 중산층 붕괴라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외제명품들은 집요하게 한국시장을 파고 든다. 경기에도 상관없다. 수량이 모자라 가격을 올려도 줄을 서서 구매하겠다고 찾아오니 기가 막힌 장사다. 파는 입장에서야 지금보다 값을 두 세배라도 올리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구매대열에 동참하고 나서는 돌아서서 비싼 명품 값을 못마땅해 한다.

양주와 침대, 유아용품 등 국제적 인지도를 가진 고급제품들은 한국 소비자가 봉이다. 전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잘 팔려나간다. 고급 와인과 스코틀랜드산 양주, 몸에 좋다는 각종 보신제품, 바르기만 해도 피부가 살아난다는 기능성 화장품들. 고급제품을 찾는 일부의 소비심리는 식을 줄을 모르는 것 같다. 형편에 상관없이 남에게 기죽지 않겠다고 질러대는 과시형 소비가 가격상승 곡선을 굳건히 받쳐준다. 이렇게 많이 사주면 서비스도 잘 받고 제대로 된 대접을 받고 있을까. 답은 글쎄다.

물가오름세 때문에 서민들이 아우성이지만 서민의 사랑을 딛고 올라선 농심은 신라면 블랙으로 실컷 배를 불렸다. 출시 몇 달 만에 160억 원어치나 팔았다. 600원짜리 라면이 명품이라는 포장을 쓰고 1400원으로 둔갑했다. 그런데 완전식품에 가깝게 제조했다는 광고와는 달리 기존의 라면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들통나 과장광고혐의로 공정위의 회초리를 맞고 1억5천만 원의 과징금을 물었다. 챙긴 이익에 비하면 세발의 피다. 신라면 블랙은 오늘도 전국에서 신나게 팔리고 있다. 비싸면 좋은 제품이라는 우리의 잘못된 소비습관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행위다.

비상식적인 서비스와 황당한 가격에 이렇게 끌려 다니는 것은 21세기형 스마트 컨슈머의 모습이 아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소비자의 약점을 공격하는 나쁜 기업들을 응징해야 한다. 비상식에 대항하는 것은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다. 나 혼자 용인하고 지나가면 모든 소비자가 피해를 본다. 왜 정치적 이슈나 사회적 문제에는 민감하면서 정작 우리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나쁜 소비에는 집단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지 답답하다.

당신은 일류라는 심리적 자극에 걸려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너무 많다. 이런 소비자들은 국가도 공정위도 소비자원도 언론도 아무도 도와줄 수가 없다. 졸부근성, 천민 자본주의라는 손가락질을 그만큼 당했으면 이제는 가치 있는 소비행동을 시작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우리는 선택의 권리를 잊고 산다. 비판의 권리를 너무 쉽게 내준다. 현명한 소비자가 오히려 좋은 기업을 만드는 밑거름인데도 그런 행동이나 대응을 미덕에 반한다고 여긴다.

똑똑한 소비는 무엇일까. 그것은 혼자 가지 않고 함께 가는 것이다. 모래알이 모여서 시멘트와 잘 버무려지면 강한 구조물로 재 탄생된다. 애플리케이션과 소셜 미디어로 정보를 나눠보고 함께 대항하면 꼼수 쓰는 기업들, 폭리로 유혹하는 제품들을 작은 소비자의 노력으로 철저히 가려낼 수 있다. 불편한 소비, 엉터리 가격을 참고 사는 것은 시민사회 구성원의 태도가 아니다. 바보 같은 소비의 잘못된 악연을 이제 끊을 때가 되었다. 합리적 가격구조가 널리 퍼지면 그 지름길을 타고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선진국의 문턱도 그만큼 빨리 넘을 수 있다. 까다로운 소비행동이 시대를 앞서가는 일류기업을 만들어 낸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