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의 시선] 추풍도 슬피 우는 오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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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시선] 추풍도 슬피 우는 오장원
  • 임철순 미디어 SR 주필 admin@cstimes.com
  • 기사출고 2021년 09월 27일 11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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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청한 가을입니다. 손대면 물들 것 같은 맑은 하늘에서 갖가지 모습의 구름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미동도 하지 않고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 정밀(靜謐)한 풍경에 바람이 산들 불어오면 1년 중 가장 좋은 때가 지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는 풍성한 한가위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음력 8월의 별칭이 청추(淸秋)입니다. 요즘 SNS에는 하늘과 구름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풍경을 보면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라는 찬송가가 절로 떠오른다"고 썼습니다.

천하제일의 행서(行書)라는 왕희지의 '난정서'에 천랑기청(天朗氣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원래 초봄의 풍광을 형용한 이 말은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개고 날씨가 화창해 공기가 상쾌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봄보다 요즘 날씨에 더 맞는 말 같고, 구름이 있고 없고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깨끗이 빨아 넌 것 같은 흰 구름이 청상(淸爽, 맑고 시원함)의 기운을 더해줍니다.

채근담(菜根譚)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봄날의 날씨는 화창해서 마음과 정신을 자유분방하게 하지만 가을날 구름이 희고, 바람이 맑고, 난초 아름답고 계수나무 향기롭고, 강물과 하늘이 한빛이고, 천지에 달이 밝아 사람의 심신이 다 맑아지는 것만 같지 못하다."[春日氣象繁華 令人心神駘蕩 不若秋日雲白風清 蘭芳桂馥 水天一色 上下空明 使人神骨倶清也] (후집 46장)

이렇게 가을과 바람을 이야기하는 것은 최근 다시 읽은 '삼국지'의 여운, 구체적으로 말하면 '삼국지'의 눈대목 중 하나인 제갈량(181~234)의 죽음 때문입니다. 어려서 내 머리에 각인된 제갈량 죽음 장면의 제목은 '추풍도 슬피 우는 오장원'이었습니다. 누가 번역한 어느 출판사 책인지 잊었지만 이 제목이 아주 인상 깊습니다. 성락추풍오장원(星落秋風五丈原, 별은 떨어지고 가을바람 부는 오장원)이라는 '삼국지'에 나오는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가을바람은 오장원에 따라다니는 영원한 수식어입니다.

오장원은 중국 산시성(陕西省) 바오지(寶鷄)시 치산현(岐山縣)에 있는 높이 약 120m의 황토 고원 구릉지대로, 가장 폭이 좁은 곳이 5장(丈, 약 15m)밖에 되지 않아 이런 명칭이 붙었습니다. 이곳에서 촉군(蜀軍)과 위군(魏軍)이 대치할 때 제갈량이 54세로 병사한 뒤 촉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의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삼국지'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공명은 병든 몸을 억지로 일으켜 좌우의 부축을 받으며 수레에 올랐다. 그리고 가만히 본채를 나서 여기저기 흩어진 영채들을 두루 돌아보았다. 얼굴을 스쳐가는 가을바람이 뼛속을 뚫고 드는 듯한 한기를 일으키자 공명이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다시는 싸움터에 나서서 역적을 칠 수 없겠구나! 너르고 너른 푸른 하늘아, 너에게도 끝 간 데가 있느냐?' 그리고 오래오래 탄식해 마지않다가 수레를 돌려 본채로 돌아왔다."('이문열 삼국지' 인용)

이 탄식이 내가 어려서 읽은 '삼국지'에는 "창천(蒼天)은 유유도 하구나"라고만 씌어 있었습니다. 그때는 창천의 뜻을 잘 몰랐지만 그 정도로도 제갈량의 장엄한 죽음을 아로새기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왜 그런지 원문이 궁금해져서 찾아보았습니다. "孔明強支病體 令左右扶上小車 出寨遍觀各營 自覺秋風吹面 徹骨生寒 乃長嘆曰 '再不能臨陣討賊矣! 悠悠蒼天 曷此其極!' 嘆息良久." 이 문장에서 초점은 바로 '극(極)'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입니다. 아래에 몇 가지 번역을 나열합니다.


"내 다시는 진영 앞에 나서서 역적을 토벌하지 못하겠구나. 유유한 푸른 하늘이여! 어찌하여 한계가 있느냐?"('김구용 삼국지')
"다시는 전장에서 역적을 토벌하지 못하겠구나! 유유한 푸른 하늘아, 언제나 이 슬픔이 끝나랴!"(정만국, '원문 삼국지' 번역)
"이제 다시는 전쟁터에서 역적을 토벌할 수 없게 되었구나. 저 아득한 창천은 어찌 이리도 가혹한가?"('신복룡 삼국지')
"다시는 싸움터로 나가 역적을 토벌할 수 없겠구나. 아득하고 아득한 하늘이시여, 어찌 이렇게도 가혹하십니까?"(허우범, '삼국지기행')
"유유한 창천이여, 어찌 이다지도 심하단 말인가?"(서성 '삼국지, 그림으로 만나다')

극(極)은 극진하다, 지극하다, 다하다, 다다르다, 세차다, 엄하다, 혹독하다, 죽이다, 감추다, 징벌하다, 바로잡다, 고치다, 병들다, 지치다, 괴롭히다, 내놓다, 멀다, 잦다, 급하다, 재빠르다, 한계, 하늘, 정점(頂點), 제위(帝位), 대들보, 근본, 흉사(凶事), 매우, 심히 등 그야말로 다양한 의미를 갖춘 글자입니다. 한자나 한문이 어려운 것은 글자 하나에 이처럼 다양하고 때로는 상반되는 여러 가지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갈량이 죽은 것은 음력 8월 15일로부터 1주일 후쯤이니 바로 이 시기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오장원은 한국보다는 가을이 더 빠른 북방이어서 이 무렵이면 가을바람이 뼛속에 뚫고 드는 한기를 느끼게 했을 것입니다. 몸에 병이 들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위의 번역 중 어느 것이 가장 제갈량의 마음과 근사한 것일까? 꼭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생의 마지막이 다가와 목숨을 늘려달라고 북두칠성에 빌었건만 푸른 하늘은 유유하고 유장할 뿐 무심하기만 합니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한데, 천장지구(天長地久)한 대자연은 끝없이 아득하고 무한합니다. 그러니 曷此其極(갈차기극), 어찌하여 이렇게 심한가 또는 무심한가 또는 가혹한가 하고 한탄을 한 것이겠지요. 나로서는 무심과 가혹이 섞인 어떤 표현이 가장 나을 것 같은데, 적확한 말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청명하고 삽상(颯爽)한 가을은 생명의 충일과 성숙을 기약하는 좋은 계절이므로 죽음이 한층 더 비현실적이고 비장해 보일 것입니다. 제갈량은 유비로부터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은혜를 입어 세상에 나오면서 동생 제갈균에게 "뜻을 이루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끝내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위의 저 탄식은 그의 한 생애는 물론 그 시대 전체를 담은 극적 대사(臺詞)입니다.

무한한 대자연과 대비되는 인간의 유한성은 한 번뿐인 삶에 대한 자각과 자성의 바탕이 됩니다.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송준길(宋浚吉, 1606~1672)과 함께 삼송(三宋)으로 불리던 제월당(霽月堂) 송규렴(宋奎濂, 1630~1709)은 칠순을 맞으며 '섣달 그믐날 저녁에 빠르게 짓다[除夕走筆]'라는 시 열 편을 썼습니다. 1부터 10까지 글자 수 단위로 된 시 중 육언시(六言詩)에 자연과 인간이 나옵니다.

푸른 산 푸른 물 절로 있는데 /靑山綠水自在
밝은 달 맑은 바람 누가 다투나 /明月淸風誰爭
눈앞의 즐거운 일 다 누리거늘 /且盡眼前樂事
어찌 죽은 뒤 헛된 명예 따지랴 /何論身後浮名

그다음 칠언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땅에 다행히 남자로 태어났으니 /落地幸爲男子身
백년 인생 헛되이 살지 말라 /莫敎虛作百年人
무공은 구십에도 오히려 경계했는데 /武公九十猶箴警
하물며 내 나이 칠십임에랴 /何況吾生是七旬

​여기 나오는 춘추시대 위무공(衛武公, ?~기원전 758)은 아흔에도 시를 지어 노래하고, 늘 자신을 경계하며 독실하게 살았다는 인물입니다. 많은 동양의 선비들이 그를 본받으려는 자계(自戒)의 마음과 자세를 시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

​곧 칠순 생일을 맞으면서, 제갈량과 '삼국지'를 빌미로 인간의 목숨과 하늘, 그리고 계절의 운행과 변화에 대해서, 역사와 인간의 일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제월당 같은 시를 짓지는 못하지만, 생의 큰 매듭을 맞아 앞으로의 나날이 헛되고 어리석은 삶이 되지 않기를 스스로 경계하고 다짐하게 됩니다. / 임철순 미디어 SR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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