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타임스 박현정 기자] 올해 중소기업에 취업한 A씨(26세)는 연말 이사를 앞두고 전세 대출을 못 받을까 봐 불안감에 휩싸였다. 중소기업취업청년 전월세보증금대출(중기청 전세대출) 지원대상이지만 중기청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전세를 찾기 힘든데다 은행의 전세대출 규제도 심해질 수 있다는 소식을 들은 탓이다.
금융당국이 강력한 가계부채 관리에 돌입했으나 대출 증가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자 전세대출마저 규제할 것이란 관측이 쏟아졌다. 추석 이후 발표할 가계대출 관리 방안에 전세자금 대출이 포함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시중은행의 8월 말 전세자금 대출 잔액은 119조967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 중 98.1%는 실제 전세계약과 관련된 실수요 대출이었으며 전세보증금을 담보로 이뤄진 생활안정자금 대출은 전체의 1.94%(2조3235억원)에 불과했다.
전세자금 대출은 주택금융공사, 서울보증보험 등의 보증을 바탕으로 은행이 전세자금을 빌려준다. 전세 계약은 임대인과 임차인이 하지만 은행은 임대인에게 바로 대출금을 입금해 투자자금으로 흘러가기 어려운 실정이다.
금융당국도 전세자금 대출은 자금 이용 목적이 명확한 실수요 대출로 분류해 각종 대출 규제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전세자금 대출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이마저도 규제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생활안정자금 대출은 전세자금 대출 가운데 유일하게 차주 계좌로 받는 자금으로 주식이나 암호화폐 등 투자 용도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생활안정자금 대출은 지난해 말 2조5252억원보다 7.99% 감소해 그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됐다.
문제는 자금이 충분히 있는데도 허점을 이용해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충당하고 여윳돈을 투자에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도 이를 확인할 바가 없다는 데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전세대출자가 모아놓은 돈이 있는지 없는지 금융당국이 확인할 수 없다"며 "전세대출을 100%로 받고 원래 가진 자금으로 투자에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 역시 "돈의 꼬리표가 없기 때문에 원래 가진 자금이 있어도 저금리 상품인 전세 대출을 받아 전세를 해결하고 원래 가진 돈이든 새로 대출을 받은 돈이든 투자하는데 사용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세자금 대출은 계약서부터 전입까지 모두 은행이 확인하기 때문에 실수요자가 아닌 경우 전세대출을 내주기는 어렵다"며 "전세대출 증가는 전세값이 많이 오른 영향"이라고 말했다.
전세대출이 급증한 것은 집값과 전세값이 폭등한 것과 연관이 있다. KB리브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작년 대비 각각 8.6%(107.2→116.3), 8.7%(113.3→123.2) 증가했다.
금융당국은 전세자금 대출 규제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일 금융지주 회장단과의 간담회 후 "전세대출은 실수요자가 많아 여건을 보면서 다시 한번 볼 것"이라고 전했다.
금융위 관계자도 이에 대해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어 확정된 바가 없다고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