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식의 정치소비자 시선] 모두가 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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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식의 정치소비자 시선] 모두가 뇌 때문이다
  • 윤성식 고려대 명예교수 admin@cstimes.com
  • 기사출고 2021년 08월 10일 16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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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을 대상으로 남의 생각에 얼마나 영향을 받는가를 실험했습니다. 누가봐도 명백하게 길고 짧은 두 개의 막대를 보여주고 어느 막대가 더 긴가를 답하는 실험입니다. 실험 대상자 중 일부는 무작위로 선정한 실험대상자이고 일부는 실험하는 측에서 가짜 답변을 하도록 의도적으로 집어 넣은 사람입니다. 먼저 미리 짜고 들어온 사람에게 어느 막대가 더 긴가 물어봅니다. 당연히 모의한대로 짧은 막대를 더 길다고 답합니다. 미리 짜고 들어온 사람이 연달아 엉터리 답변을 반복한 뒤에 무작위로 선정된 진짜 실험대상자에게 물어봅니다. 재미 있는 사실은 대부분이 짧은 막대를 더 길다고 가짜 답변에 동조합니다. 실험이 끝나고 실험하는 측에서 왜 그런 답변을 했느냐고 묻자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남들이 그렇게 답하니 자기도 그렇게 답했다고합니다.

누가봐도 명백한 사항에 대해서도 남의 의견대로 따라가는데 명백하지 않은 쟁점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변 사람이 특정 정치적 성향의 사람으로 채워져 있다면 우리는 그 영향을 매우 강하게 받습니다. 부처님은 있는 그대로 보라고 말씀하셨지만 중생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조직에 따라서는 특정 정치적 성향이 압도적입니다. 그런 곳에서는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동화됩니다. 조직 만이 아니라 지역도 특정 정치적 성향이 압도하는 곳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호남과 영남입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정치적 판단보다는 주변에 의해 형성된 정치적 판단을 선택하기 쉽습니다. 어쩌면 다수의 정치성향을 따르는게 또 다른 이익일 수도 있습니다. 진화의 과정에서 다수에 추종하는 사람의 생존율이 높았음이 당연합니다.

특정 정치적 성향이 압도적인 곳에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가면 금방 동화됩니다. 조직문화는 법이나 윤리보다도 더 강력합니다. 순응하지 않으면 왕따라는 무서운 응징 수단이 있습니다. 특정 정치적 성향과 반대의 정치적 성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가면서 자신의 견해는 약화되고 조직의 정치적 성향에 맞추게됩니다. 영남에 거주하면 영남의 정치적 성향에 영향을 받고 호남에 거주하면 호남의 정치적 성향에 영향을 받습니다. 여당에 호의적인 조직에서 일하면 여당을 지지하게 되고 야당에 호의적인 조직에서 일하면 야당을 지지하게됩니다. 우리의 뇌 구조는 선택을 하고 합리화를 하므로 정치적 성향을 바꾸어도 합리화할 수 있는 논리나 구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뇌는 불편한 것을 유난히 참지 못하기에 불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논리와 구실을 만들어냅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베스트 셀러는 미국 버클리 대학 조지 레이코프 교수가 저술했습니다. 레이코프 교수는 미국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의 뇌 구조가 다를 거라는 가설을 제기합니다.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언급하면서도 하나의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공화당 지지자의 뇌는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둔감하다는 연구결과입니다. 앞으로 뇌와 정치에 관한 연구가 진행될 수록 재미 있는 결과가 많이 나올 것입니다.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는 확실히 뇌구조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좌파는 뇌 구조가 이상해요'라고 저에게 말했지만 제가 보기엔 좌파도 똑 같은 소리를 할 것 같습니다. 즉 '우파는 뇌 구조가 이상해요'라고.

뇌 신경회로는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결정되지만 후천적으로도 형성됩니다. 미국의 경우는 정치적 성향에 관한 한 선천적 요인이 더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에서는 일란성 쌍둥이가 태어나자 마자 헤어져 양육된 경우가 많습니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가 동일하므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양육될 경우 선천적인 유전자의 영향과 후천적인 환경의 영향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떨어져 자란 수많은 일란성 쌍둥이의 정치적 성향을 조사한 결과 놀랄만큼 지지 정당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따라서 후천적 영향보다 선천적으로 어떤 정치적 성향이 있는 것입니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는 선천적 요인보다도 후천적으로 어떤 지역에서 성장했는가에 따라 정치적 성향이 상당히 영향을 받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남이나 호남에서 자란다면 특정 정치 성향을 선택한다기 보다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물론 항상 예외는 있습니다. 헤어져 자란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도 모든 쌍둥이의 지지 정당이 동일하지는 않았습니다. 동일한 사례가 더 많았을 뿐입니다. 미국도 지역주의가 있지만 우리나라에 비하면 지역주의 근처에도 못갑니다. 우리나라 지역주의는 타고난 정치성향을 압도할 정도로 위력이 있는 후천적 요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22년 대통령 선거를 한해 앞둔 지금 과거에 비해 선거에서 지역주의의 영향이 약화된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듭니다.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뇌과학 연구의 주장은 굉장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처음 이 연구결과가 소개되었을 때 많은 학자가 혹시 이 연구가 잘못 설계된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했습니다. 반복된 연구에서 자유의지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지속적으로 나오자 학계는 상당히 충격에 빠졌습니다. 최근에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전혀 없는게 아니고 약간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지만 인간에 있어 자유영역의 범위는 생각보다 좁습니다. 일란성 쌍둥이의 사례를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는데도 둘의 정치 성향이 비슷하다면 자유의지로 선택했다고 보기보다는 그러한 성향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해석해야합니다. 영남, 호남 어디에서 태어났는지에 따라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선천적 요인, 후천적 요인은 우리의 행동을 제약합니다. 우리는 자유의지로 살고 있는 것 같지만 그렇게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때문에 그렇게 선택하는 것입니다.

트럼프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가장 절묘하게 이용한 어떻게 보면 정치 천재(?)였습니다. 정치 경력은 전혀 없는 사람이 쟁쟁한 정치인을 물리치고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된 것에 그치지 않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말입니다. 재선에 실패한 직후에도 30%가 넘은 열렬한 지지자가 있기에 4년 뒤에 다시 출마할까봐 민주당에서 겁을 낼 정도입니다. 트럼프를 싫어하는 공화당 정치인도 많지만 행여 선거 때 트럼프 지지자의 표를 잃을까봐 조심합니다. 바이든이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고 믿는 유권자의 비율과 트럼프 지지자의 비율이 대충 비슷합니다. 아직도 백신을 맞지 않는 미국 국민은 대다수가 트럼프 지지자라고합니다. 트럼프 지지자의 특징은 억지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인 우월주의를 교묘하게 '미국 우선주의'로 색칠하는 전략에 많은 미국 국민이 열광하는 '트럼피즘'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트럼피즘의 초기에는 많은 사람이 트럼프 지지층은 교육 받지 못한 저소득층 백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의 많은 연구에 의하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구분 없이 백인 우월주의자가 트럼프 지지층임이 밝혀졌습니다. 백인이 자신의 영역을 아시아, 흑인, 라틴계가 점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불안과 불만을 느끼자 이에 반발하게 되고 그동안 억눌린 감정에 트럼프가 불을 질렀다는 분석입니다. 실제 조사를 보면 고소득층 백인이라도 백인 우월주의자이면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입니다. 가난해도 백인 우월주의자이면 트럼프를 지지합니다.

트럼프 지지자에게 설문을 하니 민주주의에 손상이 가더라도 상관 없다는 답이 더 많았습니다. 트럼프는 거짓말을 수없이 했습니다. 그래도 지지자는 끄덕도 하지 않습니다. 거짓말이건 심지어 민주주의가 훼손되건 상관 없다입니다. 중요한 목표를 위해서는 용인될 수 있다는겁니다. 미국 공화당 지지자에게 공화당 정치인의 한심한 행동을 보여주니 '그럴 수 있지'라는 반응을 보였고 민주당 정치인의 한심한 행동을 보여주니 '저런 죽일 놈'하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럴 때 활성화되는 부위는 감성을 관장하는 뇌부위였습니다. 백인 우월주의자에게 트럼프의 거짓말은 '그럴 수 있지'에 해당합니다. 민주주의를 훼손하더라도 상관 없다는 반응은 미국 의회 의사당에 폭도가 난입하여 여러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귀결됩니다. 트럼프를 지지하기 위해서 민주주의란 덜 중요한 장식품에 불과합니다. 말하자면 의사당 난입은 '그럴 수 있는' 사건입니다.

코로나19로 트럼프는 궁지에 몰렸고 언론이 미국의 코로나19 방역 실패를 부각하기 위해 한국의 성공사례를 자주 보도했습니다. 그러자 트럼프는 한국이 코로나19 통계를 조작했다는듯이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조작했다는 말이냐'고 하자 그건 모를 일이라고 하면서 한국과의 관계가 좋으니 말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인간을 꿰뚫어 보고 있는 대화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지자는 아마 '한국은 조작이야 조작. 미국이 뭐가 못하는게 있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는 유권자를 조종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트럼프의 언어를 연구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는 인간의 뇌 구조를 잘 알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가 거의 확정되자 백악관에서 우편투표가 부정이라는 언론 브리핑을 했습니다. ABC, NBC, CBS 등 지상파 3대 방송국은 물론이고 트럼프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는 폭스 뉴스조차 가짜 뉴스라며 마이크를 끄고 방송을 중단했습니다. 심지어 폭스 뉴스의 진행자는 트럼프에게 부정선거라는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까지했습니다. 트럼프는 물론 이러한 요구를 묵살합니다. 미국 언론은 우리보다는 훨씬 앞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트럼프가 가짜 뉴스를 토해내자 방송을 중단한 주요 방송국은 물론이고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사실상 트럼프를 겨냥하여 가짜 뉴스를 막는 제도적 장치를 하였습니다.

트럼프는 틀린 통계를 인용하다가 반박 질문을 받으면 대꾸하지 않고 답변도 하지 않고 무시해버립니다. 주한미군에 대한 불완전한 정보를 이야기할 때 다른 사람이 이의를 제기하면 답변하지 않고 무시합니다. 얼마나 인간의 불완전성을 잘 아는 행위입니까? 말하는 순간 상대방의 덫에 걸리는거지요. 정치대화는 논리로 하는게 아니라 감성으로 하는 것입니다. 트럼프 지지자는 '그럴 수 있지'를 넘어서 '트럼프가 맞아'라는 식이니 트럼프 말은 효과가 있습니다. 우리가 유권자로서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가를 이해한다면 정치가 조금은 좋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일 수록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불완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칫 망각하고 자신의 견해에 대해 확신을 가지는 우를 범하기 쉽습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로서 인간은 어떤 뇌를 가지고 있는지 직시해야합니다. 선거가 가까워질 수록 유권자는 더욱 더 비이성적, 비합리적이 된다고합니다. 정치인과 언론보다 국민이 더 똑똑해야 세상이 국민을 위한 세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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