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인가 협잡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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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인가 협잡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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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3


 

소신인가 협잡인가

 

 

주말에 복통이 일어 소화제를 사먹으려고 약국을 찾아 사방을 헤맨 시민들의 원성이 인터넷을 장식하고 있다. 감기증세를 가라앉히려고, 그 흔한 타이레놀 한 알 사려고, 일요일 밤 옆 동네까지 뒤졌지만 어디서도 약을 구할 수는 없었다는 경험들이 줄을 잇는다. 어머니의 토사곽란을 진정시키려고 몇 시간을 돌아다닌 뒤 지쳐버린 어느 부처 공무원은 약국과 보건복지부를 폭파시켜버리고 싶었다고 절규하고 있다. 약이라기보다는 그냥 생필품으로 익숙해진 감기약, 소화제, 진통제 등 몇 가지 상비약을 편의점에서 구하도록 해달라고 그렇게 애원했건만 보건복지부는 우이독경이다.  벌써 14년째다. "너는 짖어라 우리는 약사들 편이다" 인지, 아니면 "복지부는 약사회 승낙 없이 절대로 이 문제를 풀어줄 수 없다"는 것인지.

우리가 그토록 닮고 싶어 안달하는 선진국은 모조리 슈퍼에서 약을 팔고 있다. 미국도 독일도 영국도 일본도 다 판다. 그런데 왜 우리만 안 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에 약사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어서 정치권이 아무리 목청을 높여봤자 소용없는 일이라는 게 대체적인 정설이다. 약사회의 표심이 지역민심을 꽉 잡고 있어서 이들의 비위를 거슬리는 정책은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또 하나 이유로 들먹여 진다.

대통령까지 나서 슈퍼에서 약 사먹도록 제도를 바꿔보라고 압박하는데 담당 장관은 서울 성동구 자기 지역구 약사들과 한가로이 저녁 먹으면서 "여러분이 걱정할 일은 발생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라"고 했다든가. 특임장관이라는 양반은 은평구 약사회 모임에 참석해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허용문제와 관련해)약사님들은 안심하셔도 좋다"고 했다든가. 어느 나라 대통령에 어느 나라의 훌륭한 장관님들 이야기인지, 코미디프로의 대본인지 헷갈린다.

약사회의 보복이 두려우면 이대로 국민을 볼모로 끝까지 가보자는 얘긴데 이건 너무 무책임하고 안하무인 아닌가. 어떻게 보건복지부 장관이 약사회의 이권과 논리에 휘둘려서 그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가. 여론이 비등하자 자기들도 슈퍼에서 팔 수 있는 약을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천연덕스럽게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세상이 잠잠하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또 지나갈 것이다. 개 짓는 소리가 그치면 날이 밝아오고 사람들은 또 일상으로 돌아가고. 안되나 보다 하고 잊어버릴 것이고. 그렇게 14년을 살아왔는데 자기 임기 중에 이런 결정을 내리고 국회의원 떨어지는 수모를 당할 수는 없겠지. 짐작했던 스토리다.

본지도 너무나 많은 소비자 불편호소가 접수돼 오래 전부터 이 문제를 거론해 왔지만 실현가능성은 이번에도 기대난망이다. 모든 여론조사에 80%대의 찬성을 보이는 정책은 흔치 않다. 그렇게 지지를 받고 있는데도 약사회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면 정부에 문제가 있다. 인하대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 같은 이는 "복지부와 약사들의 협잡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국민들이 불편하다는데, 슈퍼에서 팔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데. 왜 복지부만 무지몽매한 백성들이 그렇게 약을 사먹으면 큰일 난다고 호도하며 버틸까.

답은 뻔하다. 2조원이 넘을 것 같은 편의점 판매액을 약사회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대놓고 구차하게 밥그릇 타령을 못하는 약사회대신 복지부가 얼버무리며 총대를 메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주말에 배를 잡고 구르든지, 머리통을 감싸 쥐고 서커스를 하든지 복지부 철밥통 공무원들은 약사회와의 끈적끈적한 몇 십 년 유착을 끓어낼 수 없는 것이므로. 이게 2011년 국민을 위한다는 정부의 모습이다.

말이 나온 김에 복지부를 좀 더 들여다보자. 인천 송도 외국인투자자유지역을 지정해놓고 민간의료법인 유치를 공언했다. 의사가 아닌 사람도 병원을 지어서 영리목적의 의료행위를 하도록 해주자는 것이었다. 우리 정도 경제력과 국가발전에 맞추려면 이제는 민간에 영리병원을 풀어줄 때도 되었다는 판단에서 마련됐고 시행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민간에서 기대에 찬 준비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전재희 전 장관은 대통령 면전에서까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삿대질을 해가며 죽어도 안 된다고 비토를 놓았다. 민간병원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당연히 의사회의 입김을 의심할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문제 역시 수년 동안 갑론을박만 하면서 또 해를 넘기고 있다.

이 정권 들어 대를 잇는 복지부 여성장관들은 대통령 의중 따위에 처음부터 관심도 없는 듯하다. 정책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돌아갈 때를 대비해 자기 셈법에 골몰하고 있는 모양새다. 집단 이기주의에 휘둘려 국민과 시대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복지부는 약사회와 의사회의 유착을 끓고 시대의 흐름에 부응해야 한다. 복지부 장관 타이틀이 황송해서 아니면 집단이기주의의 최면에 걸려 국민의사를 뭉개면 개인은 성공할지 몰라도 정부는 망가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통령과 국민의 요구가 무시당하면서까지 이익집단의 논리에 놀아나야 하는가. 대통령은 이렇게 모욕을 당하고도 담당 장관을 그냥 내버려 둬야 하는가 묻고 싶다.

표가 아쉬울 때는 국민의 발바닥이라도 핥겠다고 덤비고 선거가 끝나면 그냥 안면몰수다. 한 두 번 봐온 행태는 아니다. 그래도 세월이 가면 달라지겠지 하고 기대해 보지만 결과는 역시나다. 그렇게 해야 지역구 의원 한번이라도 더 해먹고 잘하면 또 다른 장관자리도 가능하겠지. 애초부터 국민들의 불편을 살피는 행동은 가식이었으므로. 그렇게 생각하면 차라리 국회의원님들이나 장관님들이 측은하니까 민초들이 주말에 배 좀 아프고 두통 좀 견디는 방법밖에 없지 않는가. 

 "목자(牧者)가 백성(百姓)을 위해 있는가. 백성이 목자를 위해 있는가. 백성은 곡식과 피륙을 제공해 목자를 섬기고 가마와 쌀을 제공해 목자를 송영한다. 결국 백성은 피와 쌀과 정신까지 바쳐 목자를 살찌게 하는 것이니, 이로 보자면 백성이 목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개탄했던 조선시대의 관리나 이 대명천지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다고 호들갑을 떠는 대한민국의 관리나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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