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벽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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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벽암록
  • 전은정 기자 eunsjr@cstimes.com
  • 기사출고 2021년 05월 28일 13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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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오 극근/ 김영사/ 2만3000원

[컨슈머타임스 전은정 기자] '벽암록'은 '종문宗門 제일의 책'이라고 극찬받는 선의 교과서로, 12세기 북송 후기에 원오 극근 선사가 편집한 공안집이다. 북송 초기에 설두 중현 선사가 주요 선사들의 문답 중 백 칙을 선별한 다음 자신의 깨달음을 송(시)으로 표현한 '설두송고'에, 원오 극근이 주석과 해설을 붙였다.

벽암록은 매우 난해한 책으로 정평이 나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의 영역을 말로 보여주어야 하는 선문답 자체의 어려움에 더하여, 구성면에서도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라 쉽게 읽히지 않는다. 더욱이 이 책은 여러 차례의 강의 내용을 모은 것이라, 내용이 중복되어 있기도 하고 필록자의 의도가 추가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형식적·내용적·사상적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벽암록이 담고 있는 깊이와 아름다움은 9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선 수행자들을 매료해왔다.

벽암록의 저자 원오는 대오大悟가 철저하기 위해서는, 공안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활구活句로 체득'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벽암록에서 원오의 평창을 보면, 대오의 체험을 강하게 요구하는 내용이 여러 곳에 나타난다. 그래서 원오는 번잡한 교리보다는 전광석화와 같은 생생한 말을 사용했다. 특히 하어下語(본칙과 송 중간 중간 달은 짧은 촌평)에서 그런 표현이 자주 보여,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자유의 세계를 나타내려는 노력의 흔적이 묻어난다.

원오가 선 수행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세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첫째,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 즉 '무사선無事禪'은 미망迷妄이라고 한다. 둘째, 결정적인 대오철저大悟徹底의 체험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가 부처'라고 말하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셋째, 대오의 체험을 얻기 위해서는 공안을 자의字義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태도를 버리고, 의미와 논리를 끊은 한마디, 즉 활구活句로 궁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이러한 원오의 수행관이 담긴 벽암록은 당唐대 선에서 송宋대 선으로의 사상적인 이행과정, 즉 '무사선無事禪'에서 '깨침의 선'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어, 중국 선종 사상과 수행 방식의 변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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