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식의 시선]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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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식의 시선]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 윤성식 고려대 명예교수 admin@cstimes.com
  • 기사출고 2021년 05월 03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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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진보보수당은 1984년 선거에서 169석을 얻어 집권합니다. 진보보수당이 각종 개혁입법을 주도한 후 연방부가세를 도입하는 조세개혁을 1991년 단행하자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되고 급기야 1993년 선거에서 겨우 2석 당선이라는 참패를 기록합니다. 20석이 아니라 단 2석입니다.

캐나다의 진보보수당으로부터 9년만에 정권을 탈환한 자유당은 철폐하겠다고 공약했던 조세개혁법안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자유당으로서는 세금이 더 많이 걷히는데 구태여 전임 정부가 욕먹고 도입한 증세를 포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자유당 정부에서 재정은 탄탄해지고 흑자로 전환됩니다. 진보보수당은 몰락하고 다른 정당과 연합하여 보수당으로 개편됩니다.

정치란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해주는 일입니다. 펄 벅의 소설을 영화로 제작한 '대지'를 보면 주인공이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리를 듣자 혁명이 무어냐고 묻습니다. '무언지 모르지만 먹고 사는 일하고 관련 있는거래'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정치란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먹고 사는 일은 의식주입니다. 요즘 옷이 없어 분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굶어죽는 사람도 과거에 비하면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집이 없어 분노하는 사람, 집을 사고 싶은데 정부가 막아 놓아서 분노하는 사람, 집이 있지만 세금이 늘어서 분노하는 사람, 전세를 내주면서 분노하는 사람, 전세 들어가면서 분노하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의식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집 문제가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정책 실패입니다.

부동산 정책 실패로 대다수 국민이 너무 힘들어합니다. 조국 교수 부부 사건과 추미애 장관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지만 부동산 문제는 계속 남아서 국민을 괴롭힙니다. 재산세는 일 년에 두번 냅니다. 종부세는 연말에 내니 1년에 세 번 세금을 내는 셈입니다. 국민은 세금을 낼 때마다 화가 납니다.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전세 내줄 때 화가 나고 집을 사고 싶은 사람은 대출 규제로 화가 납니다. 집 없는 사람은 오르는 집 값을 보며 허탈해하고 집 있는 사람은 세금이 올라서 화가 납니다.

정책이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를 기준으로 해서 투표하는 유권자는 소수입니다. 감성에 의해 투표하는 대부분의 유권자는 그렇고 그런 정책에는 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정책을 보고 선택하라는 말은 대부분의 유권자에게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말로는 정책을 보고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감성에 의해 선택합니다.

정책이 먹고 사는 문제를 살짝 건드리면 별 영향이 없습니다. 여전히 감성에 의해 투표합니다. 그러나 많이 건드리면 투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공화당의 링컨 대통령이 노예를 해방했기에 흑인은 원래 공화당 지지였습니다. 하지만 1929년 미국을 강타한 경제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해 루즈벨트 대통령이 최고 소득세율 90%라는 조세정책으로 혁명적인 복지를 추진하자 먹고 사는 문제는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흑인은 공화당 지지에서 민주당 지지로 돌아섭니다. 캐나다에서 169석을 얻었던 진보보수당이 2석으로 몰락한 것도 증세가 먹고사는 문제를 크게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크게 건드리면 열렬 지지자도 상당수 이탈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 유권자가 그냥 넘길 수 없는 선이 있습니다. 그 선을 넘으면 열렬 지지자를 잡아 두기 어렵습니다. 캐나다 진보보수당의 몰락을 보십시오. 민주당으로 대 이동한 흑인을 보십시오. 먹고 사는 문제는 어느 임계치를 넘으면 감성을 압도합니다. 자신의 먹고 사는 문제가 크게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인간은 분노합니다. 수 십 만년 동안 수렵 채취 생활을 통하여 진화한 인간은 생존의 위협에 가장 크게 반응합니다. 정치가는 반드시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유권자의 진화적 본성을 건드리는 어리석음은 정치의 본질을 망각한 어리석음입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모든 것을 삼키는 블랙홀이 되고 있습니다. 여론조사를 보면 70%를 넘는 국민이 부동산 정책을 실패로 규정했습니다. 이제는 부동산 정책 뿐이 아니라 어떤 정책 영역에서도 국민은 박한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조국 교수 부부 사건 때는 제 주변의 민주당 지자자 중 소수가 조국 교수 부부를 비판했습니다. 부동산 정책에 관해서는 제 주변 민주당 지지자 중 찬성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심각한 정도가 도를 넘습니다.

2021년 4월 서울 시장, 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인 민주당이 큰 표 차이로 참패했습니다. 갤럽 여론조사에 의하면 부동산 정책 실패, 경제 및 민생문제 해결부족이 이유라는 응답이 40%인데 반하여 불공정과 내로남불이 이유라는 응답은 7%에 불과합니다. 조국 사태로 나라가 요동을 쳤지만 먹고 사는 문제와는 크게 관련이 없었고 선거에 있어서도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불만이 민주당 참패의 원인입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과의 선거에서 내 걸었던 구호가 생각납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 선을 넘어버린 어리석음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인사 실패입니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몇몇 정책 책임자의 잘못입니다. 인사가 만사라고 말하지만 이말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닫는 정치인은 많지 않습니다. 권력 핵심부에 있는 사람이 인사 때마다 자기 사람을 강력하게 미는 행태가 인사참사를 빚는다는 사실을 대통령은 망각하기 쉽습니다. 대통령이 인재라고 생각한 사람이 사실은 인재가 아니라 인재라고 착각한 겉만 번지르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누가 전문가인가를 아는 것도 전문지식이 있어야 하므로 인재의 선택은 상당 부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누가 누가 덜 실패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정치가 누가 누가 덜 나쁜가의 선택이라고 한탄하지만 우리도 사회생활하면서 사람을 잘못 선택하여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습니까? 인간사와 마찬가지로 정치에 있어서도 사람 잘못 선택하는 인사실패는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흔히 CEO에게 가장 중요한 사항이 사람과 돈이라고 합니다.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사항도 인사와 먹고 사는 일입니다. 그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인사입니다. 인사가 바로 되면 먹고 사는 문제도 바로 잡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도 부동산 값이 지금 엄청나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건 상승하건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부동산 시장은 철저하게 시장에 맡겨져 있고 정부는 여기에 개입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2008년 경제위기도 부동산에 관련된 금융위기였고 정부는 오히려 민간을 구제하는 역할을 했을 뿐 경제붕괴에 대한 비난은 월스트리트에 쏟아졌습니다. 우리는 부동산 정책에 관한 한 정부의 개입이 너무 많지요. 사회주의 국가를 연상할 정도입니다. 그러다보니 부동산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정부가 지고 있습니다. 첫째 지나치게 강화된 국가개입을 어느 정도 시장에 돌려주어야 합니다. 둘째 분양으로 전환하지 않는 임대아파트를 서울과 수도권 교통요지에 대량으로 공급함으로써 국가가 개입의 의미를 살려야합니다./윤성식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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