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듣겠습니다"
상태바
"이제 그만 듣겠습니다"
  • 임철순 미디어 SR 주필 admin@cstimes.com
  • 기사출고 2021년 03월 16일 10시 34분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상의 대화나 비대면 온라인 공간에서의 접촉을 마무리할 때 상대방에게 뭐라고 말하는 게 좋을까요? 대화든 토론이든 협상이든 듣는 이가 불쾌해지지 않도록 원만하게 끝을 내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대화의 소재와 내용에 따라 어법과 말투가 달라지는 건 당연하지만, 민감하거나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는 경우라도 배려와 품격을 갖춰야 합니다.

▇ 방송 인터뷰 거북한 마무리

요즘 TV나 라디오의 앵커나 사회자가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뉴스 관련자나 그 분야 전문가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 쓰는 말입니다. 바꿔 말하면 "이제 시간이 다 돼 인터뷰 끝내야 하니 그만 이야기하세요."라는 뜻입니다.

그런가 하면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앵커는 "오늘 저희가 준비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라는 말을 잘 쓰고 있습니다. 전에는 뭐라고 하면서 프로그램을 끝냈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이 방송, 저 방송에서 자주 듣게 되는 멘트입니다.

그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는데, "여기까지 듣겠다"는 말에는 내가 당사자가 아닌데도 거부감이 생깁니다. 사실은 말하고 싶은 게 더 있고 시청자나 청취자가 알아야 할 게 더 있는데도 입을 닫으라고 하는 것 같은 인상입니다. 상대의 표정과 몸짓을 알 수 없는 비대면 온라인 인터뷰의 경우에 이 말을 더 많이 합니다. 시간이 다 됐다는 걸 눈치나 분위기로 알려주기가 어렵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단톡방의 불유쾌한 입씨름

최근 한 대학 동창 단톡방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A가 '미스트롯2'에서 진으로 뽑힌 제주 주부 양지은을 칭찬하는 글을 퍼다 올렸습니다. 준결승에 못 오르고 탈락했다가 우승하기까지의 과정도 기적의 드라마이지만 품성과 태도가 참 좋으니 그의 노래를 한번 들어보라는 권유였습니다.

​그러자 B가 양지은이 마지막에 '인생곡'으로 부른 '붓'이라는 노래가 사실은 대한민국 70년을 부정하는 가사라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이것도 자기가 쓴 게 아니라 퍼온 글인데, "붓을 달라, 붓으로 백두산 천지를 먹물 삼아 역사를 다시 쓰자"고 주장한 무시무시한 가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대중가요, 너마저 빨간 물이 들었구나"라고 개탄했습니다.

이에 대해 C가 "지나치게 엮는 거 같은데, 생각 없이 퍼오지 마시기를…"이라고 댓글을 달았고, B는 "엮는 건 아닌데 가사를 잘 보기 바랍니다!"라고 대꾸했습니다. C는 "봤습니다. 그냥 들으시길", "이런 글 쓴 사람이 누군지부터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의도가 나올 수 있을 거 같은데…"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B가 "오케이. 거기까지!"하고 말을 막았습니다. 조마조마 지켜보던 친구들은 더 이상 입씨름이 번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안심을 했지만, 그 이후 단톡방이 조용 어색 썰렁해졌습니다.

▇ 대통령의 민망한 페이스북

문재인 대통령이 경남 양산에 마련 중인 사저에 대해 야당이 공격하자 "좀스럽다"며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선거 시기라 이해하지만, 그 정도 하시지요. 좀스럽고, 민망한 일입니다. 대통령 돈으로 땅을 사서 건축하지만, 경호 시설과 결합되기 때문에 대통령은 살기만 할 뿐 처분할 수도 없는 땅 이지요"라고 페이스 북에 썼습니다.

앞서 국민의 힘은 "대통령 사저 부지의 농지를 원상복구 해 농민에게 돌려주라"고 주장했습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3기 신도시 건설이 예정된 농지를 구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문 대통령 사저도 문제 삼고 나섰습니다.

​좀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문 대통령이 이렇게 발끈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참모들이 말리는데도 직접 글을 썼다는 말도 들리던데, 그만큼 요즘 분위기가 나쁘기 때문이겠지요. 이에 대해 유승민 전 의원은 "허탈과 분노를 달래줄 대통령의 공감, 사과, 위로의 말을 기대한 국민들에게 보낸 메시지가 고작 본인 소유 부지에 대한 원색적 분노의 표출인가"라고 개탄했습니다. 그야말로 민망한 일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이든 누구든 이런 배제의 언어, 공격적 언사는 삼갔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의 말은 최대한 절제되고 메시지가 정제돼야 합니다. 특히 SNS를 이용한 글쓰기는 파장이 크고, 한번 내보내면 내용이 취소되지도 않으니 늘 조심해야 합니다. 자고 나면 벌어지는 논란과, 아침저녁으로 오가는 천박한 말싸움, 말꼬리 잡기에 그만 좀 시달렸으면 좋겠습니다. 나야말로 "이제 그만 듣겠습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