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해남 미황사, 천년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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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해남 미황사, 천년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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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경계를 푸는 일이었다. 일상에서 벗어나 고립된 산사를 찾는 것은 마음의 빗장을 열고 자신 속으로 들어가는 작업이다.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다른 기운을 들여다보고 다스리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욱하고 차오르면 순간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른다. 심상을 누르고 냉각된 눈으로 먼 바다를 보는 연습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위험한 시간이다. 어디론지 떠나야 할 때다.

그것은 경계를 다시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세상살이에 시달리다가 늘어져 무디어진 의식의 경계를 들락거릴 때가 그 때다. 적당하게 수습이 되면 산에서 내려오리라는 마음의 다짐도 있었다. 일상에 상처받거나 생각의 정처가 없어지면 무조건 자신을 속세의 경계 밖으로 밀어내는 습관도 한몫 했다. 여행이라고 포장된 탈출이다.

"여행을 위해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발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아무 곳에나 들러 묵고 그곳이 평안하기를 빌어라" (마태복음 10장 예수의 당부). 그런데 나는 두툼한 등산복과 산악용 등산화에 아이젠, 지팡이, 배낭까지 챙겨갔으니 갑자기 쏟아진 폭설핑계를 대기에는 쑥스러웠다. "현실에서 만난 노여움이나 척박한 욕망을 벗어나기 위한 여행(알랭드 보통)"임이 틀림없다. 속물이다.

한반도 땅 끝 마을너머 해남 미황사는 거기에 고요하게 엎드려 있었다. 백두대간 마지막 돌산 자락.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는 구례 지리산부터 곡성, 화순, 영암, 강진, 해남까지 남도 오백리 역사숲길로 이어진 맨 마지막 자락이다. 풍경소리 너머 멀리 바다가 보였다.
 

해남 미황사 앞에서
▲해남 미황사 앞에서

1200년 전 대양을 넘어 우전국(인도) 불교가 전해졌다고 알려진 길목이다. 신라 경덕왕 때(749년) 돌로 만든 배가 달마산 아래 포구에 닿았다. 그 배는 금인(金人)이 노를 젓고 화엄경 80권에 법화경,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16나한상, 금화, 검은 돌 등이 가득 실려 있었다. 사람들이 이를 수습하려는 순간 검은 돌이 갈라지며 소한마리가 나왔다.

그날 밤 의조화상(신라승려)의 꿈에 소가 경전과 불상을 지고 가다가 누우면 그 자리 모시도록 계시를 받았다. 소가 처음 누웠던 자리에 통교사를 짓고 마지막 쓰러진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와 뱃사공(金人)의 황홀한 색을 따서 지어진 이름이 '미황사(美黃寺)' 다.

나는 늘 이렇게 신화같은 옛이야기를 좋아한다. 금인을 마음속으로 그리면서 일주문에서 사천왕문까지 긴 돌계단을 올라갔다. 위쪽에 넓은 자하루는 미술관으로 운영 중이었다. 앞마당에는 부리부리한 달마상이 노려보고 있었다. 몇 개의 돌계단을 더 올라가면 수행전문도량이다. 용맹 정진하는 수도승들의 거소다. 묵언수행으로 동안거에 들어간 지 이미 2개월째라고 한다.

목조 대웅전(보물 947호)은 작품이었다. 청초한 학 한 마리가 올라선 단아한 모습이다. 형편상 단청을 생략한 나무색이 더욱 잔잔하고 아름다웠다. 단청에 지친 눈이 환해지는 듯하다. 단 아래 '윤장(輪藏)대' 에서 발을 멈췄다. 불상과 경전을 넣은 책장(팔각탑)을 밀면서 몇 바퀴를 돌았다.

글을 모르거나 시간이 없는 이들이 윤장대를 돌리면 읽은 것 같은 공덕을 얻는다. 중국 양나라 선혜대사가 시작한 수행법이다. 네팔에서 수없이 만났던 광경이다. 문제는 무지가 아닌 마음이니 옳은 선택이다. 내 몸 가득히 공덕이 스며든 기분이다. 기둥 옆 돌무덤 사이 돌 염주하나가 삼각바위에 걸려 있다. 어떤 이의 비원이 담겼겠지. 고단한 이승의 무게를 나눠달라고.
 

▲미황사의 명물 대웅전과 병풍같은 달마산
▲미황사의 명물 대웅전과 병풍같은 달마산

그날 밤 산사에는 늦은 눈보라가 또 휘몰아쳤다. 춘설치고는 가혹했다. 매서운 바람과 폭설은 애써 시야에 넣었던 만상을 완벽하게 가둬버렸다.

"깊은 겨울밤, 사나운 눈 폭풍이 오두막 주위에 휘몰아치고 모든 것을 뒤덮을 때 그 때야 말로 철학을 할 시간(하이데거)" 으로 내게 다가왔다. 눈을 뜨고 있을 때보다 차라리 눈감고 있을 때 사물이 더 잘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른 새벽 눈길을 나섰다. 미황사 사천왕문에서 시작되는 달마고도(17,8킬로미터)다. 동쪽부터 둘레길을 한 바퀴 돌고 서쪽으로 돌아오면 다시 그 자리다.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인 윤회의 길이다. 숲속에 넒은 부도전과 사적비가 번성했던 옛 영화를 간직하고 있었다.

산길은 나무들이 군락을 이뤘다. 산죽벌판이 감싸는 길을 지나자 굴참나무 영역이다. 내리막에는 산 정상에서 떨어진 바위들이 계곡을 가득히 메운 돌길이었다. 붉은 동백 꽃봉오리들이 흰 눈 위에 선연한 핏자국으로 낙하해 있었다. 낮은 소나무들 사이로 남도 바닷가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안선을 따라 정돈된 논과 밭이 한 폭의 정물화 같다. 푸른 보리밭은 계절을 앞당기고 있었다. 달마산 능선 8킬로미터 바위병풍이 웅장하다. 중간에서 직벽 쪽으로 올라 도솔암에 앉았다. 바위틈에 둥지처럼 숨겨진 형상이었다. 기막힌 풍수다. 세상과 완전히 결별한 삶을 살고자 한 절박함이 아니었다면 도무지 이 벼랑에 발을 디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수직 같은 벼랑이 땅이고 도솔암은 거기에서 튀어나온 암석 같았다. 여섯 개의 바위를 지나 삼성각이 보였다. 아슬아슬한 난간의 끝이다. 속세인 들로 북적대는 미황사를 등지고 기어오르듯 이 돌산 틈으로 피신했을 것이다. 생사의 끝을 알고 싶은 그 비장함으로 지어진 암자. 시공을 넘어 알 수 없는 어떤 경지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사유들만이 절벽 아래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구도의 길은 외로움과 인내의 싸움이다. 가난하고 애통하고 깨달음에 주려야 가능한 선택이다. 다른 이들의 삶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온유하고 청결해야 한다. 권세와 배부름의 문을 버리고 거친 바위사이 이 좁은 틈으로 들어와 홀로 세상을 꿰뚫어 보고자 하는 결연함이 있어야 한다. 옛 사람들의 정진에 고개가 숙여진다. 경계 밖으로 날마다 자신을 추방하며 들판에 홀로 있기를 간절히 기원했을 것이다. 자유는 소유를 버리는 것이다. 자유는 깨달음이다. 도솔암은 그들의 도구였다.
 

▲달마고도 암석사이 도솔암
▲달마고도 암석사이 도솔암

달마고도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만들어진 에코루트다. 기계를 외면하고 사람들이 돌 하나, 나무 이정표 하나를 모두 등짐으로 져다가 손으로 다듬어 개통(2017년)했다. 땅 끝 사람들이 장에 가려고 넘던 옛길이다. 달마산 12암자를 잇는 수행길의 변신이다. 혼산족(홀로 등산)과 산린이(초보등산객)들까지 한해 20만이 다녀갔다니 놀라울 뿐이다.

공룡 등뼈 같은 바위 암릉은 남파랑길 내내 이어졌다. 남파랑길(2016 개통)은 부산 오륙도를 시작으로 이곳 해남 땅 끝 마을까지 90개 구간 1470킬로미터다. 동해 해파랑길, 서해 서파랑길까지 연결해 한반도 4500킬로미터 둘레길, 국제 트래킹 노선이 추진 중이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3배나 길다. 하루 40킬로씩 4개월을 걸어야 완주할 수 있다.

달마고도 남파랑 길은 바다가 친구다. 다도해의 섬들이 다가왔다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천개의 섬이 떠다니는 화원반도가 멀리 내려다 보였다. 석양은 해안과 육지, 산과 길, 속세와 절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희미하게 덮어가고 있었다.

"산은 백번을 돌고 물은 천 굽이 굽이치네"

달마산에 선 고려 어느 시인의 묘사다. 관능적 서정이 넘실대는 반도의 종점이다. 수 억 년 전 중생대의 조산활동으로 산맥이 형성되고 이후 몇 번의 빙하기가 거쳐 갔다. 2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면서 지구를 덮었던 두꺼운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 낮은 지역의 골짜기들은 바다가 되고 산은 육지와 섬으로 남았다. 해남의 구불구불한 다도해는 이 과정에서 빚어진 희귀 리아스식 해안이다. 지구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지형이다.

나는 길에서 세상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독백하다가 허물어졌다. 걷다가 감탄하다가 두 시간에 한 번씩 세 번을 무너지고서야 발가락 하나가 멍든 채 제자리로 돌아왔다. 가파른 돌산 아래 바닷가에 지나온 청춘을 던졌다. 푸른 보리밭에 힘겨웠던 중년을 밀어 버렸다. 하지만 끝까지 나를 따라오는 육신에 운명의 백기를 들었다. 이럴 줄 알았다. 단시간 원점 윤회를 위해서는 많은 땀이 필요했다. 그러나 시선은 산사를 오르며 건넜던 피안(彼岸)교의 세계를 꿈꿨고 의식은 정토를 그렸다.

달마고도에 스친 내 옷깃이 인연으로 남기를 바랐다. 500겁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그 인연 말이다. 우주가 시작되고 소멸할 때까지 43억 2천만년. 그게 한 겁인데 사방 4킬로미터 바위에 선녀가 일 년에 한 번 씩 내려와 옷깃을 스쳐 모두 닳아 없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라니. 그의 500배가 지나야 이 세상 서로 모르는 이들끼리 옷깃을 스치는 인연이 될 수 있다니. 산다는 게, 살아 있다는 게 온통 신비함 투성이다.

나는 묻는다

이 길의 끝이 어디요

그는 대답 한다

운명을 따라가시오

운명도 그쪽으로 가고 있소

우리도 따라가는 중이요

전봇대도 가고

겨울도 가고

봄도 가고

인생도 가는 방향이 그쪽이요

(이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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