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 수교 50 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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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 수교 50 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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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출고 2011년 05월 03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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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내리는 함박눈이 쓰가루(津輕)반도와 시라가미(白神)산지로 휩쓸려 간다. 사과와 눈의 고장 아오모리(靑森)를 온통 삼켜 버릴 듯 천지를 뒤덮은 눈발의 기세는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없다. 창문으로 펑펑 쏟아지는 눈송이를 바라보다가 숙소를 나와 폭설 속으로 걸어 나갔다.
2011.05.03

 

한·호 수교 50주년

 

금년은 한국과 호주가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한지 50돌이 되는 해이다.

작금의 한국과 호주간 교역관계를 들여 다 보면 참으로 변화된 한국의 위치를 실감케 되고 그래서 한-호 관계가 이제 겨우 50년 밖에 되질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이하고 좌.우 갈등의 혼란 속에서 결국은 국토가 두 동강 나 버리고 참혹한 민족상잔의 전쟁을 겪으면서 같은 단군의 피를 타고난 배달민족은 영원히 씻지 못할 상처를 입었다.

이 한국동란 때 호주는 뉴질랜드와 연합군을 만들어 한국을 도왔고 적지않은 호주의 젊은이들이 수교도 돼 있지 않은 듣도 보지도 못했던 자그마한 동아시아의 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으로 피를 흘렸고 주검을 묻어야 했다

특히 호주와 뉴질랜드 연합군은 휴전이 임박한 시점에 조금이라도 영토를 더 확보 하려는 남북간 치열한 교전의 최첨단 중의 하나였던 가평전투에서 많은 인명을 잃었다. 그래서 매년 살아 남은 호주의 한국전 참전 용사들이 6.25 때가 되면 가평을 찾아 가평전투에서 죽어 간 전우들의 넋을 위로 하곤 한다.

그 지독히 못살았던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를 분기점으로 동강이 나 버린 반도 대한민국은 끝내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내고 이제 어엿한 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정도로 세계 경제대국의 일원으로 거듭 나게 되었다.

필자가 처음 이곳 호주 브리스베인으로 이주해 온 1989년도에만 해도 한국전 참전용사나 한국과 관련 있는 일부 광산업 관련 기업인 혹은 동아시아 담당 정부 인사 등을 제외 하고는 한국을 알고 있는 호주인 들이 극히 드물었다전쟁에 패하고도 미국 다음으로 세계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위세에 눌려 아시아에 있는 다른 나라들은 이곳 호주에서도 거의 알려져 있질 않았었다. "일본 그리고 아시아 국들"로 분류 되고 있었다.

지금은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최강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도 당시엔 공산주의 국가로만 알려졌을 뿐 호주인들 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나라가 베트남과 필리핀이었었다. 베트남은 전쟁 후 수많은 피난민 들이 목숨을 걸고 배를 타고 이곳 호주까지 흘러 들어와 불법체류 함으로 써 호주인 들에게는 인도주의와 현실사이에서 고민을 안겨 준 민족이라 베트남하면 피난민 이라는 인식으로 알고 있었고 필리핀은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상과 비슷하게 중년정도의 아직 미혼이거나 혼자된 호주인들의 색시감으로 팔려(?) 오고 있어 일부 호주인들이 필리핀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세계 제일의 Apple 사의 I-Phone을 위협할 정도로 전자, IT업계의 최 강자가 된 삼성전자제품도 일본의 소니(SONY)나 파나소닉(PANASONIC)에 눌려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었다.

허나 그 뿐이랴. 이민 와서 얼마 안돼서 커피숍을 운영하게 된 아내에게 식 재료를 배달하던 호주사람이 "너희들 여기서 돈 벌어서 본국의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송금 하느냐?" 하고 물어봐서 참 어이없어 했던 일이 있었는데 88년도 올림픽을 치루고도 아직은 호주 대중들 에게는 코리아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잘 알려져 있질 않았었고 필자가 연구를 위해 초대 받았던 대학엘 가 봤더니 대학 도서관에 북한 관련자료는 꽤 눈에 뜨이는데 남한 관련 자료는 헐벗고 가난했던 동란시의 피난 행렬 가운데 벌거벗은 아이들 사진 몇 장이 전부였다.  

그렇게 초라하고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남한이 90년대의 성장을 거치면서 이제 호주의 네 번 째 큰 교역 대상국으로, 대한민국으로 우뚝 섰다. 필자가 무역대표로 근무했던 퀸스랜드주로서는 한국이 세 번째의 교역 대상국이 된 것이다.

수교 50주년동안 물론 호주도 많은 변화를 거쳤지만 한국의 발전상은 그야말로 눈부신 것이었다. 한국이 지구상의 어디쯤에 붙어 있는지 조차 모르던 이들 호주인들이 이제 한국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호주달러가 초강세를 기록하고 있는 요즘은 그 수가 많이 줄어 들었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시드니와 브리스베인의 번화가에는 한국 유학생들로 넘쳐 났고 산업 발전에 따라 급 상승한 천연자원 확보를 위해 많은 한국의 기업들이 호주의 자원에 투자했거나 계속 투자를 모색하고 있다. 미국 소고기가 지배하던 한국 시장에 이젠 가장 안전하고 청정한 호주 소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제는 비즈니스를 떠나 골프장이나 동네 산보 길에 만나는 사람들도 내가 한국에서 왔다 (I am from Korea) 그러면 다들 아는 체를 하거나 서울에서 왔느냐, 부산에서 왔느냐 하고 물어 볼 정도가 되었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수교 50주년을 맞아 호주 연방 수상이 한국을 방문하여 이 명박 대통령과 든든한 우방이자 무역 파트너임을 과시했고 년 내 자유무역협정 체결에도 합의 했다.

퀸스랜드 주정부에서도 수교 50주년을 기리기 위해 호주에 주재하고 있는 한국 회사들의 지사장들과 한국과 무역을 하고 있는 퀸스랜드주의 기업인들, 대학 총장들을 초대하여 "한국-퀸스랜드주 무역 및 투자의 밤" 이라는 제목으로 퀸스랜드주 재무 및 통상장관 주관으로 만찬 행사를 가졌다. 필자도 초대 퀸스랜드주 한국 무역 및 투자 대표부 대표의 자격으로 이 만찬에 초대 되었다. 참으로 달라진 한국의 위상이요, 한인 출신으로 호주사회에 자리 매김하고 있는 기업인의 일원으로 새삼 긍지를 느끼게 되는 요즈음이다.

그러나 좀 더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날리고 같은 아시아의 잠룡으로서 중국이나 일본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신용 있고 보다 더 질서 있고 상식에 따른 행동을 보여 줄 수 있는 한국인이 되어야겠다. 정부도 높아지는 경제적 위상만큼이나 한국의 참된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무엇이 참된 자존심인가를 교육시키는데 많은 역량을 쏟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한때 일본인들을 가리켜 'Economic Animal'이라 했듯이 세계 곳곳에서 한국의 젊은 아이돌 그룹들이, 김연아가, 최경주가 한국인의 자존심을 드높이고 있을 때 한편에서 철없는 단체 관광객들이 호텔방에서 김치로 라면을 끓여 먹고 남들은 국내에서도 돈이 없어 다 못하는 공부를 부모 잘 둔 덕에 해외 유학 와서 카시노에 고급 승용차에 마구 귀한 외화를 낭비 하면서 Ugly Korean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를 달기 전에…….

 

필자소개

 

1946년 경남 진주 출생. 성균관 대학교 영어 영문학과 졸업.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로 활동, 럭키화학과 럭키개발에서 근무했다. 1989년 호주 브리스베인으로 이주한 뒤 호주 퀸슬랜드 주 정부 개발성 해외투자담당 상임고문과 초대 퀸슬랜드 주정부 한국 무역및 투자대표부 대표(2000. 12- 2009. 4)를 거쳤다. 현재는 호주 East West Park Lines사 Project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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