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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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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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3


 



51%의 미학

  

황금비율은 주어진 길이를 가장 이상적으로 둘로 나누는 숫자의 미학이다. 고대 수학자 유클리드가 기하학적으로 정의한 이래 건축과 미술 등에서 즐겨 응용돼 왔다. 그리스 건축물은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 비율을 적용했다. 그 가운데서도 이집트 피라미드는 대표적인 황금분할의 적용 예이다. 근사값이 1.618인 무리수. 이 숫자를 적용한 생활문화는 담배갑, 명함, 신용카드 등이 꼽힌다. 기능적으로도 완벽하고 모양도 좋아서 세계인이 선호하는 모델이다.

관심이 집중됐던 지난주 보궐선거의 성적표를 받아보니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신기한 51% 승리의 공식이 성립됐다. 경기도 분당 을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51% 득표, 김해 을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 51%, 강원도지사 민주당 최문순 후보 51.1%, 서울중구청장, 강원도 양양군수 등 승자의 득표율도 거의 51% 내외를 기록했다. 결국 51대49라는 선거의 황금분할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51% 승리'와 '49% 패배'는 힘겹게 이기고 아깝게 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2%포인트 이겨 승리한 쪽은 겸손한 마음을 가질 것이고 패배자는 근소하게 졌기 때문에 툭툭 털고 재기를 다질 수 있어 좋아 보인다. 지금까지 우리는 압도적 승리나 일방적 완승에 비교적 후한 점수를 줘 왔다. 그러다 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이기기 위해 수없이 많은 불법들이 저질러졌다. 선거가 축제의 장이 되지 못한 주요 원인중의 하나다. 후유증도 심각했다. 불법과 편 가르기, 상대 헐뜯기, 네거티브 전략 등 패싸움 수준의 경쟁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민주주의 시스템은 상생과 공동체의 역동선상에 서로 존재한다. 일방적이거나 압도하는 것은 그래서 부담스럽다. 선거에 패배했다고 혼자만 살고 상대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 때 현 대통령이 상대를 20%포인트 차이로 압도했다. 그러다 보니 집권초기부터 넘치는 자신감 때문에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겸손이 부족했던 기억들이 많았다. 국정운영이나 인사, 정국조정, 남북문제 등에서 골프로 말하자면 어깨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공을 맞추지 못하고 헛스윙을 한 적이 많았다. 겸손한 승리를 했다면 지금 같은 실수를 더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야권통합이 유지되고 국민의식에 변화가 없는 한 51대49의 선거 황금비율은 지켜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모든 것은 게임으로 연결된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좋든 싫든 우리는 게임에 나서야 하고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세상의 서열과 우열은 항상 게임을 통해 나타난 숫자로 판가름된다. 그 완결판이 선거일 것이다. 과거 1-2%포인트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면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시비를 걸거나 재검표 요구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모두 근소한 판정이었지만 결과에 불복하는 후보는 단 한명도 없다. 1%포인트에 깨끗이 승복하고 상대의 손을 들어주는 성숙함이 있기까지 민주주의 역사가 다져온 가능성이 현실화 되가는 느낌이다. 경쟁은 아름다워야 하고 결과는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성숙함이 엿보인다.

일방적 승리는 경제에서도 부담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기업의 압도는 한쪽의 그늘이 된다.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4대그룹의 생산총액이 전 국민 총생산의 51%에 이른다. 4대그룹의 총액이 5위부터 30위까지를 합쳐도 비교가 안된다. 더 세분하면 우리경제는 삼성과 비삼성으로 대별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경제력 집중과 상하계층분화로 풀기 힘든 갈등상황이 초래된다. 제도로 불가능하니까 초과이익공유제나 국민연금 대주주 자격행사 같은 충격요법이 난무한다. 머리를 맞대고 미래 선진국 진입준비와 지속성장을 연구해야 할 정부와 기업이 때 아닌 기싸움에 체력을 소모하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는 것이다.

대기업이야 환율로 벌었든 기술개발이나 해외시장개척으로 벌었든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당연한 결과라는 논리를 펼 수 있지만 다른 기업이나 중소업체들이 갖는 박탈감과 자괴감은 말할 수 없이 크다. 통계에서 말하는 역 피라미드가 아닌 튼튼한 항아리 모양이 중산층과 나라발전의 기초인데 말이다. 이익이 몰리는 대기업에 대고 정부나 시민들은 어떻게든 분배를 강요하고 대기업은 방어논리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서로 피곤한 일이다. 대기업만이 일방적 속도로 질주한다면 그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쫓아가지 못하겠다는 판단이 들면 그 다음 카드는 뻔하지 않는가. 갈등과 대결, 집단행동, 반목이 뒤따른다.  건전한 경제는 그래서 양측이 골고루 성장하는 것이다. 이때도 51 대 49의 황금비율이 방법이다. 경주의 최부자가 곶간을 열어 근처 백성들을 챙긴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이 회사돈이 아닌 천문학적인 자기 개인재산을 왜 내놨을까. 일본의 손정의 같은 경영자들이 파격적인 기부로 동일본 대지진으로 상처난 민심을 추스르는 모습들은 역사를 관통하는 세상의 트랜드다. 겸손하게 이기고 아름답게 패배하면 세상이 평화로워 진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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