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이 사라진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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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이 사라진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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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2


 



꿀벌이 사라진 한반도

 




회문산은 이미 연초록 잎새들이 돋아나 제법 파스텔 톤의 색깔로 산맥이 물들여져 가고 있다. 전라북도 정읍과 임실을 잇는 근육줄기 같은 험한 산봉우리들이 나란히 고요한 춘풍의 유혹에 지쳐 꽃 바람에 몸을 내맡기고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 임병찬 장군의 활약으로 역사에 기록되던 곳, 한국전쟁 때는 마지막까지 노령산맥의 빨치산 은거지로 악명을 떨치던 고장, 그 첩첩 산중 회문산 휴양림 자락에도 무던히 쌓였던 겨울눈이 녹고 봄은 찾아왔다. 도시생활에 지칠 때쯤 나는 아편중독자처럼 이곳을 찾아 하루 밤 육신을 내려놓고 심산대간의 정기를 받곤 한다.

70년대까지 번성했던 옛 마을은 폐허가 되었고 사람들도 도시를 찾아 모두 떠난 텅 빈 산중에서 한봉으로 생활을 해오던 김 노인(81세)은 매년 선물하던 회문산 벌꿀을 올해는 줄 수가 없게 됐다며 시름에 잠겼다. 지난해부터 갑자기 사라져버린 벌떼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건너편 장군봉과 용두봉에도 봄은 가득히 밀려오는데 떠나버린 꿀벌 떼는 여전히 무소식이란다. 사라져버린 벌들을 아쉬워하며 그는 빈 벌통만 어루만졌다. 김 노인은 허공을 응시하며 "이제 세상의 종말이 오려나" 하고 자꾸만 혼잣말을 해댔다. 몇 년째 이 고을을 오가며 토종 꿀을 구해 먹던 나는 꿀벌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런데 문제는 이 회문산 자락 산마을 한봉 농가뿐만 아니라 인근의 남원, 순창을 비롯해 큰 산맥너머의 전남 구례와 담양, 경상남도 산청, 충북 제천에도 사라져버린 벌떼들로 주민들이 수심에 잠겨있다는 사실이다. 작년 가을에는 적지 않은 지방에서 주민들이 벌통을 태우며 양봉농가의 대책을 세워달라고 정부에 호소하기도 했다. 벚꽃과 복숭아, 자두 꽃이 만발했지만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벌들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올해 과일농사가 사상 최악의 흉년을 기록할 조짐이 확실해지고 있다

꿀벌이 사라진 벌판은 꽃 수술을 옮겨서 과실을 맺게 해줄 전령사를 구할 수가 없게 돼 모든 열매의 착과가 불가능해진다. 다급해진 단감농가와 매실생산단지, 복숭아 농장에서는 마을근처의 제한된 과수를 대상으로 사람들이 직접 인공수분 작업에 나설 예정이라고 한다. 토종벌은 꽃을 가리지 않고 날아가 꽃가루를 옮기는 왕성한 활동을 하는 곤충인데 이들의 집단실종은 한반도 생태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벌써부터 걱정들이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미국 캘리포니아와 조지아, 유럽의 폴란드와 스페인 등지에서도 갑자기 사라진 꿀벌떼 행방을 찾는 소식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수수께끼의 원인을 토양과 대기오염에 따른 환경파괴로 진단하고 있다. 꿀벌의 군집붕괴(CCD: Colony collapse disorder)로 벌집을 나간 벌들이 90%까지 돌아오지 않는 것은 꽃가루 유전자 변형과 과도한 살충제사용, 이산화탄소증가에 따른 기상이변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한가지는 전세계적으로 휴대폰 보급이 폭발하면서 무수한 전자파가 지상을 메워 이동하는 벌들이 방향성을 상실하고 엉뚱한 곳에서 죽는다는 것이다. 무서운 환경재앙이다. 인간들이 무분별하게 육갑을 떨면서 동물들이 죽고 파괴된 환경은 다시 인간에게 복수를 하는 악순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

꿀벌들의 폐사원인은 이렇게 추측만 난무할 뿐 뚜렷한 이유는 아직 아무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과일농사가 망가지고 꿀이 없어진 세상을 우리는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다. 농수산식품부와 한국토봉협회에 수소문해보니 전국 토봉농가 만 7천 곳 가운데 95%가 피해를 입었고 이 때문에 한통에 5만원이던 토종 꿀은 올해 초 80만원에도 구할 수가 없게 됐다. 환경의 재앙이 가져다주는 경제의 혼란이 이제 시작된 셈이다. 이지경인데도 꿀벌의 실종소식 정도가 하잘것없어서인지 정부나 국가차원의 심각한 고민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구제역으로 전국이 초토화되는가 하면 조류 인플루엔자가 횡행하고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상황에서 사라져버린 꿀벌들의 미스터리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두가 난감하다. 상대성 이론으로 원자폭탄 제조의 열쇠를 제공한 아인슈타인 박사는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안에 멸종한다"고 예언했다. 인류음식의 40%가 꿀벌의 수분(受粉)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유난히 꿀벌의 생태를 좋아했던 그의 분석이 이제 현실로 다가오는 것일까. 제발 현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이어지는 생태학자들의 메시지가 섬뜩하다. Bee's Today, Human's tomorrow. 지금 벌들이 사라지고 내일은 인류가 사라진다니.

뜻있는 지식인들이 그렇게 환경파괴를 경고하고 인류의 각성을 촉구했건만 오늘도 태우고 파헤쳐지고 부수고 뒤집는 개발은 그치지 않고 있다. 인간의 탐욕과 무절제가 몰고 오는 자연의 숨통 조이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산화탄소로 가득해진 허공에 생물체가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이 다가오는데도 우리의 파행은 끝을 모른다. 봄바람 훈훈한 회문산을 떠나 환경오염의 중심지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내내 생각에 잠겼다.
"세상에 무한한 것이 딱 두 가지 있다. 그것은 우주공간과 끝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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