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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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의 추억
  • 김준환 폴라리스 대표변호사 admin@cstimes.com
  • 기사출고 2020년 12월 17일 09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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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집집마다 디지털 도어락이 보편화 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집이 숫자 키패드로 되어 있어서 비밀번호로 출입을 한다. 열쇠를 들고 다닐 일이 없다. 자동차 역시 스마트 키가 표준이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예전처럼 주머니에 열쇠 꾸러미를 들고 다닐 일이 없다. 열쇠가 없어지니 열쇠고리라는 아이템도 함께 사라졌다. 스마트폰 등장으로 MP3플레이어가 없어지듯이. 필자의 집도 지문으로 여는 방식이라 이제 더이상 열쇠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직업상 가끔 법원을 통한 집행을 하게 된다. 법원에는 '집행관실'이 있다. 집행을 하다 보면 가끔 문 열어주지 않는 집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강제 개문'절차라고 한다. 강제 개문을 하려면 열쇠 업자가 필요하다. 따라서 집행관실에는 항상 열쇠 업자가 대기하며 집행관의 집행 시 동행을 하게 된다. 변호사가 직접 집행을 하지는 않지만 참관을 하거나 증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 (강제 개문 시에는 증인이 필요). 그래서 강제 개문 절차를 종종 경험하게 된다.

도어락 광고에서는 절대 열리지 않는다는 제품들이 열쇠 업자의 손에 쉽게 열리는 것을 보며 허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열쇠업자들 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열쇠를 발견하게 된다. 디지털 도어락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과거 방식인 기계식 도어락의 경우다. 열쇠가 비싸거나 정교해서가 아니다. 지역적 특성 때문이다. 우리나라 열쇠업자의 장비는 아시아 계통의 열쇠를 여는 장비다. 미국이나 유럽의 열쇠는 잘 열지 못한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어떤 집행을 갔는데 열쇠업자가 문을 열지 못했다. 자물쇠는 일제 S사 제품이었다. 비싸지만 우리나라에도 종종 판매되는 제품이라 열쇠업자들이 열 수 있는 제품이었다. 문제는 그 자물쇠는 일본 S사의 미국지사 제품으로서 미국향 제품이었던 것이다.

당시 집행을 꼭 해야했던 상황이어서 국내에 내로라 하는 열쇠업자를 수배했다. '대전의 김선생님'이라는 초고수가 이 미제 S 자물쇠를 열 수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고 김선생님을 모셔오려고 했다. 당시 집행관실에서 지불하던 일반 열쇠업자의 출장비는 5만원 이었는데 김선생님의 출장비는 50만원이었다. 그래도 모셔오려 했으나 1년간 예약이 꽉 차 있어서 결국 그를 모시는 것은 포기하게 되었다.

필자는 요즘 영국에 지사를 설립해 자주 가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런던에도 작은 집 하나를 마련하게 되었다. 런던은 아직 디지털 도어락이 보편화 되지는 않아서 오랜만에 열쇠 꾸러미를 손에 들게 되었다. 한국에 와서 혹시나 하는 분실 우려에 열쇠복사를 맡겼다.

그런데.. "이거 혹시 외국 열쇠인가요? 외국 열쇠는 복사가 안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주 간단하고 평범한 열쇠임에도 세 군데에서 같은 대답을 얻었다. 10여년 전 대전의 김선생님이 갑자기 생각났다. 아직 일을 하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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