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준 교수] 코로나로 다가온 '지식순혈주의의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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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준 교수] 코로나로 다가온 '지식순혈주의의 파괴'
  • 박항준 세한대 교수 danwool@naver.com
  • 기사출고 2020년 12월 08일 11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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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로는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근친을 금하고 있다. 근친의 반복은 돌연변이를 낳기 때문이다. 옛 왕조들 중 순혈주의에 따라 근친을 반복한 왕조가문은 후진성을 극복하지 못했음을 역사적으로 볼 수 있다. 더불어 순혈주의는 그들만의 리그를 구성하고 혈통 우월주의에 빠지게 된다. 아리안족의 우월주의에 빠진 독일인들은 1000만에 가까운 이스라엘인들을 학살했다.

순혈주의에 빠지면 경험치 못한 외부자극에 대한 대응이 어렵게 된다. 외부 문화를 배척하고,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쌓아놓고 폐쇄적으로 살다보면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스페인의 침략당시 천연두로 멕시코 아즈텍인들은 2천만 명의 인구가 100년 만에 160만 명으로 줄어들며 멸망하였다.

안타깝게도 순혈주의는 학문 분야에서도 존재한다. 특히 인문철학 계열에서의 순혈주의는 강력한 카르텔(담합)이 형성되어 있다. 내부적으로 유명 스승을 중심으로 사단이 구성되어 있어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주류사회를 만들어간다. 유명 대학 교수들이 갖는 사회적 위치와 정치적 의지, 사회제도 설계 등에서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모두들 이 그룹 안에 끼거나 심지어 그들과 만나고, 아는 것만으로 만족해하고 뿌듯해 한다.

학문적 순혈주의는 2천 년 전 '역사시대'로 접어들면서 이단을 배척하고 본질에 충실한 학문적 순수성을 지키는 강력한 무기였다. 그러나 역사시대가 지식사회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중기 이후 고착화된 순혈주의가 정치화되고 패거리, 이익집단, 당파싸움으로 변질되면서 기형적인 돌연변이를 낳기 시작한다. 새로운 학문을 이단취급하면서 스스로 본질을 놓아버린 것이다.

새로운 학문의 연구개발을 위해 세워진 대학은 대표적인 학문 순혈주의를 조장하는 '지식이전센터'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순혈주의적 학풍 아래 기존 학문을 그대로 전달하기만 하는 교수들의 가르침은 순혈주의 폐해의 대표적 현상이다. 과거 김정운 교수의 저서 '에디톨로지'에서 인문적 천재들이라 할 수 있는 철학과 교수들이 모두 수백, 수천 년 간 지식순혈주의에 빠져 자기 철학은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플라톤과 니체, 공자의 가르침에서 한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개탄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노벨경제학상에서 몇 년 전부터 사라지지 시작한 정통 경제학적 순혈주의의 일몰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2016년 계약이론, 2017년 넛지, 2018년 내생적 성장이론, 2019년 소셜 임팩트, 2020년 경매이론 등의 경영학이나 사회 철학과 융복합된 이론과 연구의 수상은 수 백 년을 지배하던 거시경제와 미시경제, 국가의 개입과 자유방임주의라는 카르텔 내에서만 논의되어 왔던 '경제학적 순혈주의'가 깨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단언컨대 2000년을 기점으로 역사시대 지식정보사회의 산물인 '지식순혈주의'는 머지않아 사멸하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사회는 이미 이러한 지식과 학문의 순혈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대놓고 보이고 있다. 이 징조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보여 왔는데 대학이 더 이상 새로운 학문을 생산해내지 못하고 졸업생만을 양산하는 지식 공장화되면서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공교육의 권위가 하락하게 되면서 대안교육이 확대되고 있고, 사교육이 공교육 위에 존재하게 된다.

단순 순혈주의 기반 전통지식을 그대로 전달하는 '순혈주의 교육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심지어 2001년 '공자가 죽어야 나가라 산다'라는 책이 출판되고, 2018년 국회 교육문화관광체육위원장이 '교육부 폐지 법안'을 발의하기까지 하게 되는 데에는 학문적 순혈주의의 폐단을 극단적으로 경고한 것이다.

이제 학계 외에도 곳곳에서 지식 순혈주의가 파괴괴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등학교 출신 대통령, 네트워크통신으로 인한 유튜브, 검색엔진을 통한 지식정보의 공유, 대기업의 블라인드 면접, 대중참여 시스템(블록체인, 클라우드펀딩, 청와대 청원) 등은 학력에 갇히고, 전통에 갇혀 고인물이 되어버린 지식과 학문의 순혈주의를 극복하려는 대중주도(Crowd-based)의 노력이다.

순혈주의의 최대 약점은 학문간 융복합을 저해함으로써 창의적 도전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선언이나 클라우드,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AI)알고리즘 또한 이 순혈주의의 약점을 타파하려는 학문간 융복합의 도전과제들이다. 앞으로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아 우리는 학문적, 지식적 순혈주의의 한계를 대신할 다양한 혁신적 노력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사회, 경제, 문화, 기술, 철학 등 모든 분야에서 지난 2천 년 간 고수해왔던 순혈주의를 타파하고 펼쳐질 21세기를 맞이할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을 하길 바란다. 공자를 뛰어 넘은 새로운 철학이 탄생할 시기라는 말이기도 하다. 지식사회를 주도했던 사회적 지식이 높고 성공한 유명인사가 떠들어 대는 말이 아닌 이 시대를 제대로 읽는 통찰력을 가진 이들이 집단지성을 이뤄 새로운 철학, 새로운 경제학을 창조해야하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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