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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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성장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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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플 때는 사람들이 아무 말없이 그저 허리띠를 졸라맨다. 그러다가 좀 살만해지면 세상도 보이고 내 몫도 찾고 싶어진다. 세상이 나아지면 나의 능력과 관계없이 평균점에는 도달해야 행복반열에 올라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2011.03.29

 

동반성장의 함정

 

 

 

배고플 때는 사람들이 아무 말없이 그저 허리띠를 졸라맨다. 그러다가 좀 살만해지면 세상도 보이고 내 몫도 찾고 싶어진다. 세상이 나아지면 나의 능력과 관계없이 평균점에는 도달해야 행복반열에 올라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970년 대 선진국부터 시작된 분배의 갈등은 이제 소득 2만 달러시대에 접어든 우리의 현실문제가 되었다. 얼마를 버느냐의 문제에서 어떻게 나눌까를 고민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숙명적인 역사를 가고 있는 것이다.

 

부자들에게 100만원씩을 가져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이들의 행복은 커질 것이다. 부자들은 다소 억울하겠지만 이 돈으로 공짜 분배에 참여하게 된다면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빈부의 격차가 커지면 민주사회에서 시민에게 요구되는 연대의식이 약화된다. 동시에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부자에게 더 돈을 부담시킬 방법이 없는지를 고민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빈부격차가 줄고 사회적 갈등과 불만이 잦아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확실히 우리사회의 빈부격차는 인내의 한계이상으로 벌어지고 있다.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불만은 변화의 시작이다. 예일대 비즈니스 스쿨 제프리 가튼 교수의 '전략적 변곡점 이론' 에 따르면 역대 불황이나 거품경제 뒤에는 대중의 사회책임 요구가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기업으로 확대해 보자. 대기업이 수출호황으로 돈을 목표치 보다 더 벌었다. 중소기업들은 나아지는 것 없이 늘 그런 상태에서 죽을 지경이다. 초과이익을 달성한 대기업에서 나머지 돈을 뺏어다가 중소기업들에게 나눠주면서 동반성장하자고 제안한다. 이러한 명분을 내세우면 수적으로 다수인 중소기업이나 국민들은 분배를 고민하는 정부의 태도가 고마울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할 말이 많다. 기업은 가만히 앉아서 그냥 돈을 벌었다는 말인가. 목표이익의 액수를 어떻게 정하고 기업마다 내재된 특수요인을 무슨 수로 평균화 해낼 것인가. 정량(공정위 동반이행 실적평가)과 정성(1.2차 협력 중소기업들의 대기업 체감도)을 합친 점수로 57개 대기업을 줄 세우겠다는 계획인데 이 고차원 방정식을 누가 풀어나갈 것인가. 그렇게 해서 돈을 걷었다고 치자. 그러면 어떤 기준을 정해 어떤 방법으로 중소기업에게 돈을 나눠준다는 말인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초과이익공유제가 공산주의에서 쓰는 용어인지 사회주의 용어인지 황당하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혜택을 받아야 할 중소기업도 싸늘한 반응이다. 중소기업 중앙회 김기문 회장은 "우리가 거지냐. 남의 이익에 관심 없다. 정당하게 받을 몫을 받고 싶다"고 토로했다. 김황식 총리는 좌파적 발상이라고 비판하고 사회적 합의를 위한 충분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청와대가 나서서 불을 끄고 사표 낸다던 정운찬 위원장은 다시 일하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보선 출마와 모 여성의 자서전에 오르내리는 구설수까지 겹쳐 "하네, 안 하네" 로 헷갈리게 하던 위원장의 사퇴번복 드라마가 오히려 국민들의 구경거리가 된 느낌이다. 총리 관록의 무게감과 진득함이 아쉽다. 모두 자신을 밀어주는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인데 정치권에서는 그런 위원장의 태도를 응석받이 어린아이로 취급하고 있다.

 

인선의 불만은 차치하고라도 정부가 중소기업에 돈 나눠주는 재미만으로 부족해 민간 자율을 가장한 규제권을 행사한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선진기업환경을 망치고 있다는 불만들도 가득하다. 이렇게 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사이 좋게 기술개발하고 협력하면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경영은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것인데 그러면 경영실패는 물론 환율변동과 금리손실도 보상해줘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정부의 역할은 납품단가를 연동시켜 중소기업의 적절한 이윤을 보장해주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그 체계가 잘 이행되도록 철저히 감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를 위해 서슬 퍼런 공정거래위원회가 있고 각종 협회가 무수하게 널려있다. 그래도 안되면 국세청과 검찰까지 동원해왔던 것이 지금까지 관행이었다. 또 미흡하면 국회를 통해 법을 만들고 제도적으로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야지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단번에 대통령 직속 위원회라는 투구를 쓰고 대기업 팔목을 비틀면 이는 온전한 방법이 아니다. 합리성을 확보해야 정책의 정당성과 생명력이 보장된다.

 

동반성장 위원회가 마음에 안 드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정권의 철학이 없다는 점이다. 출발은 대기업 프랜들리로 갔다가 집권중반에 갑자기 서민과 중소기업 쪽으로 선회해 대기업을 몰아붙이는 것부터가 설득력을 잃고 있다. 기업들이 수익을 많이 거둬 중소기업 단가를 제대로 매겨주고 이들이 낸 세금을 바탕으로 동반성장을 도모하도록 있는 제도가 잘 돌아가게 정부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1차적인 과제다. 그렇게 해서 지속 가능한 발전과 상생이 이뤄지고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지면 이것이 모두가 원하는 모범답안이다.

 

설령 동반성장이 성공을 거두고 정권차원의 치적으로 인구에 회자된다 해도 근본적인 숙제는 또 남는다. 케네디 대통령의 역설이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물질적 빈곤을 없애려고 아무리 노력한들, 더 어려운 일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만족의 결핍에 맞서는 일입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onsumer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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