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열도와 천년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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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도와 천년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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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2살 양금덕 할머니는 지금도 궂은 날이면 옆구리가 쑤신다. 67년 전 지진의 상처 때문이다. 1944년 12월 나고야의 미쓰비시 중공업 항공기 제작공장에서 일할 때 그곳을 강타한 지진으로 함께 일하던 조선인 처녀 6명이 깔려 죽었다.
2011.03.16

 

슬픈 열도와 천년 이웃

 

 

 

올해 82살 양금덕 할머니는 지금도 궂은 날이면 옆구리가 쑤신다. 67년 전 지진의 상처 때문이다. 1944 12월 나고야의 미쓰비시 중공업 항공기 제작공장에서 일할 때 그곳을 강타한 지진으로 함께 일하던 조선인 처녀 6명이 깔려 죽었다. 그 지옥에서 쇠꼬챙이에 옆구리를 찔려 쓰러졌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일본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당시 일본인 교장 선생님의 말에 짐을 쌌다. 30여명의 또래들과 함께 하루 10시간 이상 중노동을 했다. 1945년 전쟁도 강제노역도 끝났지만 남은 것은 친구들의 죽음과 옆구리 상처뿐이었다. 준다던 임금은 고사하고 목숨만 겨우 부지한 채 고향 광주로 돌아왔다.

 

양 할머니는 너무나 억울해 99년 같은 처지의 근로정신대 할머니 7명을 모아 일본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임금청구 소송을 냈다. 하지만 일본 법원은 소송을 기각했다. 힘든 투쟁이 10여 년 동안 지속되던 2009,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당시 후생연금에 들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토록 모질게 버티던 후생성은 이를 인정하고 연금 탈퇴수당으로 99엔을 지급했다. 이른바 '99엔 소송'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 터무니없는 푼돈 지급결정에 분노한 양 할머니는 일본 측에 물가상승을 고려한 현실적인 배상을 요구하며 지금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을 보고 양금덕 할머니와 근로정신대 시민모임은 광주에서 회견을 가졌다. "나라가 나쁘지 국민이 나쁘겠습니까. 시커먼 바닷물이 마을을 집어삼키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늘아래 다 귀한 생명이고 형제입니다. 일본이 부디 재앙을 딛고 슬기롭게 일어서길 바랍니다" 라며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죽도록 미워했던 상대를 따뜻한 응원으로 일으켜 세우려는 속 깊은 마음이 묻어난다. 

 

무려 19년 동안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시위'를 해왔던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도 마음을 바꿨다. "일본의 만행은 잊을 수 없지만 지금은 신음하는 일본국민들을 돕는 게 우선"이라며 시위대신 지진피해 돕기에 나섰다. 가슴이 찡하다. 과거사의 거미줄에 얽매여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는 것은 역사의 노예가 되는 길이라고 했던가. 가장 큰 고통 속에 신음하던 이들이 가장 넓은 포용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 결단들이 대단하다. 할머니들을 따라 구세군도 나서고 연예인들도 나섰다. 인류의 보편적 이상인 공존과 공생의 정신을 실천하는 선지자들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 생각해보면 일본과 우리는 작용과 반작용의 끝없는 순환을 통해 세월을 만들어 왔다. 너무나 많은 사연들로 빼곡한 한일관계지만 두 나라 국민들이 서로를 멀게 느껴야 할 이유는 없다. 끌어주고 밀어주는 미래가 올 수 있도록 다시 만들어 가면 된다. 처참한 재해 앞에서 싸우고 있는 그들에게 가장 먼저 구조대를 파견해 가장 가까운 이웃의 따뜻함을 전한 우리가 서로 말없이 통()하고 있다. 개인적 문화와 집단적 문화가 충돌하거나 어긋난 지난 세월이었다면 이제 서로를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온 것으로 봐야 한다.

 

이번 지진을 통해서도 전해지고 있지만 그들은 놀랍도록 냉정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품성을 가지고 있다. 수 없는 일본 방문길에서 목격한 질서정연함과 차분함, 예측이 가능한 문화들이 그들의 본질이다. 메이와꾸(迷惑), 폐 끼치는 행동을 죽음보다 싫어하는 그런 사람들이 양떼처럼 순진하게 군국주의나 제국주의에 내몰려 집단행동을 했다고 보면 지나친 해석일까? 이런 상처를 딛고 우리가 먼저 정신적으로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손을 내밀어 그들의 마음을 품어 줘야 한다. 평범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더 큰 길이 보이고 더 큰 역사가 될 수 있다.

 

"어차피 문명은 사람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상상의 실체에 불과하다. 자연의 질서와 순환에 겸허히 귀 기울일 때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그의 저서 [슬픈열대]에서 서술한 내용이다. 더 크게 보면 그들과 나, 자연과 우리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성찰의 기회로 삼고 슬기롭게 이 아픔을 이겨내도록 하늘이 내린 기회일수도 있다. 모두의 마음을 겸허하게 모아줘야 할 것이다.

 

인류는 수없는 재앙을 극복하고 해결하는 연속선에서 시대를 살아 왔다. 세월이 가면 그때 어떤 마음으로 그 순간을 대했는가가 남는다. 슬픔을 당한 집에 먼저 찾아가 위로의 말을 전하고 같이 눈물을 나누면 지나간 허물들은 다 스러져 내리는 법이다. 지나간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운 지혜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한,일 두 나라는 뗄레야 뗄수 없는 운명공동체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다. 21세기 아시아의 시대, '리오리엔트'가 오고 있는데 그 중심에 일본과 우리, 그 천년의 이웃이 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onsumer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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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 2011-03-16 19:07:58
그 천년의 이웃이 여러가지 면에서 참 무서운 사람들이죠?
재해 현장에서도 언뜻 언뜻 그런 모습들이 보이고.

그리고 우리처럼 마음도 좀처럼 활짝 열어놓지를 않죠.
지금 참 안됐기는 하지만 까다로운 이웃임에는 틀림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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