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준 교수]소비자가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상태바
[박항준 교수]소비자가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 박항준 세한대 교수 danwool@naver.com
  • 기사출고 2020년 10월 20일 10시 52분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택'은 인간의 자존감을 높이는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인문학을 'liberal arts'라고 불리는 것도 '선택의 자유'가 인문의 기본임을 알려주는 말이다. 이 '선택'이라는 개념으로 인해 인간은 신(神)으로부터 독립하게 되고, 왕과 귀족들로부터 해방되어 '선택'의 주체가 된다.

더 나아가 '선택'으로 인해 우리는 스스로 지도자를 뽑게 되었으며, '민주주의'라는 대중이 주인 되는 사회를 완성시켜왔다. 이만큼 '선택의 자유'는 인간에게는 가장 중요한 실천철학적 개념이다.

우리가 선악과를 먹은 것도 '선택'이었으며 대통령을 뽑은 것도 '선택'이었다. 저녁 메뉴를 고르는 것도 '선택'이며 배우자를 고르는 것도 '선택'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선택'이라는 의사결정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선택'은 신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며 자유주의의 산물이다.

그런데 '선택'에는 '불확실성'이라는 그림자가 따라 다닌다. 선악과를 먹었을 때 올 수 있는 벌, 지도자를 잘 못 뽑았을 때의 국가적인 후폭풍, 잘못된 메뉴를 골랐을 때의 아쉬움, 잘못된 배우자 선택에 따른 가정파탄 등의 '불확실성'은 두려움과 더불어 '선택'에 대한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선택'의 결론으로 인해 자칫 불행한 삶, 화가 나는 삶, 억울한 삶, 불만인 삶을 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적 '복지사회', 21세기형 '행복한 사회'란 바로 불확실성을 통제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바로 '예측가능사회(predictable society)'다. '예측가능사회'는 선택을 최소화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자유주의를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다. 신의 노예가 되거나 국가의 노예가 되어 선택권을 잃어버리고 시키는 대로 살자는 말도 아니다. '예측가능사회'는 말 그대로 공정한 게임에서 누구나 예측 가능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국민의 선택에 부담을 줄여주는 사회다.

어느 대통령을 뽑더라도,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가의 시스템 안에서 비슷한 정책 결과가 예측 가능하다면 목숨 걸고 대통령을 뽑을 일도, 상대측 후보를 비난할 이유도 없다. 예측가능 시스템만 구축되어 있다면 어느 아프리카 부족이 추장을 뽑듯이 연장자 중에서 제비뽑기로 대통령을 뽑아도 된다. 누가 뽑히든 사회는 예측가능하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리더나 권력자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사회는 불안정한 사회다. 리더나 권력자의 능력에 따라 국운이 갈리고, 사회가 혼란해진다면 그건 국가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국민은 대통령이 바뀌는 5년에 한 번씩 매번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 셈이다. 빅데이터와 AI로 세상이 돌아가는 첨단을 달리는 21세기에 '선택' 하나로 그간 피와 땀으로 구축해 놓은 국가와 민족, 사회가 붕괴될 수 있다니 참으로 한심하고 위험해 보이지 않는가?

결국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예측가능사회'가 가장 행복한 사회가 된다. 따라서 우리가 앞으로 선택해야할 지도자는 영웅호걸이 아니다. 어느 영웅호걸도 이렇게 다양한 선택을 해야 하는 복잡한 사회에서 항상 올바른 '선택'만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뉴 노멀시대! 소비자측면에서 보면 지도자는 국가의 예측가능시스템을 구축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국민들이 한 번의 실수로 인생을 망치거나 한 번의 선택으로 벼락부자가 되어 열심히 노력하는 국민들이 기운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예측 가능한 사회가 공정사회, 형평사회, 행복한 사회가 된다. 더불어 뉴 노멀시대에 만들어지는 예측가능시스템을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줘야할 의무도 분명히 존재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