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이렇게 지났으니 이제 진보당 노선의 정당성과 타당성을 입증하고 있다고 봅니다. 반역이라는 이름으로 공산당의 손에 의해 처형된 임레 나지의 명예가 헝가리 공산정권 자신의 손으로 복권되었듯이 죽산과 진보당의 명예도 대한민국 민주정권에 의해 회복되는 것이 역사적 필연이라고 생각 합니다"
정태영은 조봉암과 진보당이 지녔던 한계에 대해서도 솔직한 비판을 곁들여 객관적 시각으로 진보정치를 바라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토록 갈망했던 조봉암의 복권을 보지 못하고 2008년 3월 지병인 간경화로 눈을 감았다. 당시 강남성모병원 영안실의 모습은 쓸쓸하기 그지 없었다. 2007년 겨울 쓰러지기 전까지 저작에 몰두했던 한 노인의 열정은 시대의 아픔을 마감하고자 했던 회한으로 쌓여 남는 듯 했다. 진보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아닌 나는 단지 역사를 알고 싶은 지적 호기심이 더 강했다. 하지만 장례식이 끝난 뒤 그와의 인연 때문에 한동안 인간적 연민을 추스르기가 어려웠다.
"조봉암은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혼돈했던 시절 정적을 제거하고자 했던 이승만 정권이 그를 살인한 것입니다".
정태영의 저작은 이어진다.
"그는 사회민주주의자입니다. 죽산은 조선 양명학의 본고장인 강화도에서 태어나 강화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강화군청 고용원으로 1년을 일하다가 일본직원과 싸우고 쫓겨나 스물한 살 때 강화도 3.1운동에 참여한 죄로 1년간 옥살이를 합니다. 그가 '신태양' 57년 5월호를 통해 밝혔듯이 옥살이를 지내면서 독립운동에 생애를 걸기로 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엿장수를 하며 일본 중앙대 정치학과에 적을 두었고 이때 아나키즘과 사회주의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힘든 독립운동 후 건국정부 제헌의원을 거쳐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토지개혁을 다진 사람이 반역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그가 떨리는 손으로 썼다고 고백한 내용은 마무리로 접어든다.
"죽산은 사형장에서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싸움에서 진 사나이(이승만과의 대선경쟁에서 패배)가 죽는 것은 당연하다. 비겁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겠다. 하지만 진보주의 정신만은 잘 이어 달라"고.
조봉암을 위해 한 시대를 변호하고 웅변했던 정태영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3년 후 2011년, 올해 1월 대법원 전원합의부는 거물 간첩으로 낙인 찍어 사형을 내렸던 판결을 무죄로 뒤집었다.
"진보정당의 강령과 정책이 대한민국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 피고인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고 건국에 참여해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농지개혁의 기틀을 마련해 우리나라 경제의 기반을......."
진실을 바로잡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 53년만의 일이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위해 역사학계의 현대사 연구자료까지 검토했다고 한다. 증거, 법리 판단과 함께 조봉암과 진보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판결문에 담은 것이다. 이제야 우리나라의 정통성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자체평가까지 포함해서. 이번 판결은 보수의 울타리에 머물렀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높이고 넓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보수는 선(善이고 진보는 악(惡)인가. 이 땅에 태어날 때부터 좌우와 보수, 진보의 족보가 따로 있었던 것인가. 세상은 보수와 진보라는 양 날개로 항해하는 것인데 한쪽이 더하거나 덜하면 추락하고 말지 않는가. 죽산이 사형 당했기 때문에 진보는 악이었고 50년 만에 복권되었기 때문에 보수가 다시 악이 되는 것인가. 보수는 폭력을 정당화하고 진보는 억압을 정당화한다는 비판이 아직도 유효한가. 이념은 선택하는 시대에 따라 주류로 보이는 신기루가 아니겠는가. 눈을 크게 뜨고 돌아보면 거기에는 신기루대신 백성들만이 남아있는데 이 무수한 주장들을 떠나 국민을 위해 선이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이념이고 미래일수는 없는 것인가.
조봉암은 '나의정치백서'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진보당이 걸어 갈 길은 뚜렷합니다. 공산독재도 자본주의 독재도 다 같이 거부하고 인류의 새 이상인 진보주의의 진리를 파악하고 만인이 다 같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복지사회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복지논쟁이 화두인 지금 조봉암은 정확히 50년후의 미래를 예언했다는 느낌이다. 극단으로 흐르지 않는 '진보적 보수' 또는 '보수적 진보'로 따듯한 이념을 만들어서 힘든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하는데, 결국 허업(虛業)인 정치의 이 불완전 곡선이 어느 한 점으로 합일하는 시간을 기다려 본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onsumer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