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 표' 에 묻힌 '소비자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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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 표' 에 묻힌 '소비자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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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79.4% "슈퍼-편의점 구매의사"…왜 무시하나

 

[이은희 인하대 생활과학대학 학장/소비자학 박사]오랜만에 택시를 탔는데 멀미가 났다
. 속이 메슥거려 도저히 회의에 참석할 수 없을 것 같아 약국을 찾아 한참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약국은 눈에 띄지 않았다. 평소에는 여기저기 있었다고 생각한 약국이 시야에 잡히질 않았다. 할 수 없이 눈에 띤 편의점에  음료수라도 사서 마시려고 들렀다. 음료수를 고르다가 혹시나 하고 점원에게 물었더니 병 소화제가 있었다. 음료로 분류된 소화제란다. 덕분에 예민한 내 위는 일시에 진정되었다.
 

 

지난 1월 14일자 신문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감기약 등 일반의약품의 슈퍼마켓 판매안에 대해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와 이재오 특임장관,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등 친이계 여권 실세들이 일제히 반대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특기할 사항은 이들이 모조리 지역구 약사회 의견과 연관 돼있다는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내 '약사 표'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충분히 예측될 수 있다.

 

그러면 '소비자표'는 확보할 생각이 없는 걸까? 전국민이 소비자이고 지역구민 전체가 소비자인데 말이다. 세상이 생산자 경제에서 소비자경제로 바뀌고 정부주도에서 민간개방형으로 시스템자체가 바뀌고 있는데 아직도 약사회같은 전문협회의 얘기만 듣고 목소리가 분산돼 있다는 이유로 소비자의견은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려도 된다는 것일까. 정치인들은 어떤 단체를 통해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소비자표는 무시해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첫째, 소비자는 조직화되기 어렵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조직화되지 않으면 손에 잡히는 표가 되기 어렵고 또 이해관계를 지속적으로 가져가기 어렵다. 더우기 특정 상품에 대한 소비자문제는 더욱 그렇다. 반면 약사회는 서울특별시, 6대 광역시, 9개도 등 총 16개지부와 228개 분회의 조직을 가지고 있다. 서울시에만 24개의 분회가 있고 경기도에는 31개의 분회가 있다. 이렇게 지역단위로 잘 짜인 조직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행동을 통일할 수 있다. 손에 잡히는 표다.

 

둘째, 소비자가 일상생활을 위해 사용하는 물건의 종류는 무수하게 많다. 실제로 한 달에 구매하는 품목 수를 계산해보면 웬만한 구매조달 부서의 리스트에 버금갈 정도이다. 따라서 하나하나의 상품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으며, 소비자의 표는 효력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셋째, 소비와 소득의 차이다. 소비는 줄일 수 있고 대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득은 생존의 문제이다. 이것이 대처하는 자세의 차이를 가져오며, 소비자의견이 무시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넷째,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이다. 어떤 상품에 대해, 상품을 만드는 기업과 소비자가 가지는 정보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다. 예컨데 국제유가가 내렸고 국내 유통마진도 적어진 상황에서 기름값이 묘하다는 심증은 있지만 진실을 알기는 어려운 것이다.

 

또한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자신의 지역구 약사회 총회에서 "국민 편의도 중요하지만 복지부는 국민 안전성을 더 강조할 수밖에 없다."라고 한 말과, "안전성이 입증된 일반의약품의 슈퍼판매를 허용하라"는 대한개원의협의회 주장 중 어느 쪽이 진실인지 일반 소비자로서는 정말 알기가 어렵다. 잘 모르니까 소비자의 생각도 벽에 부닥친다. 이런 게 표로 연결될 리는 만무하다.

 

그러니까 소비자 대상 조사에서 응답자의 80.4%가 야간이나 공휴일에 일반의약품 구입에 불편함을 겪었다고 하고, 79.4%가 슈퍼나 편의점에서 구입할 의사가 있다는데도 무시하는 것이다. 정작 약을 소비하는 소비자는 안중에 없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대다수 소비자의 바램을 애써 깔아뭉개고 외면한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소비자 의견을 듣기 보다는 구체적으로 선거때마다 달려와 도움을 주는 약사회만 챙긴다. 약사회는 그렇게 물어보는 질문지 구성이 잘못됐다는 궁색하고 황당한 주장만 내놓을 뿐 판매망 다양화에 결사 반대하고 있다. 이렇게 가면 국회의원과 약사회의 오랜밀월을 깨기란 정말 어렵다.

 

하지만 세월은 변하고 있다. 패러다임 자체가 통째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아직도 이문제가 그들의 협력으로 기득권을 지키고 소비자의 의견은 무시되어도 좋다는 현 상황이 그리 오래가진 못할것이다. 광우병 쇠고기 사태에서 보듯이 소비자들이 힘을 합치면 엄청난 폭풍우를 가져올 수도 있다. 기득권이 보호되는 정책보다 국민과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선택하는 것이 미래를 지향하는 열린 자세다. 정치적인 득표로 연결되기 힘들다고 해서 소비자들을 무시하면 엄청난 후회가 뒤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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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2011-01-31 18:26:45
백번 하고도 옳으신 말씀입니다,정말 소비자의 표를 무서워 해야 하는데 이놈의 정치인들은 아직도 그것을 모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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