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컨슈머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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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컨슈머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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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버킨백. 서양인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블루퍼플 칼라 진한 바탕에 부드러운 악어가죽의 모양과 질감이 원형그대로 최대한 보존된 품질. 1984년 여배우 제인 버킨이 장 루이 뒤마 에르메스와 공동으로 디자인 했다는 명품. 기본모델 7천 달러에서 10만 달러까지 고가품. 우리나라에선 재벌가 사모님들과 청담동
2011.01.05

 

스마트 컨슈머의 길

 

 

 

"에르메스 버킨백.

서양인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블루퍼플 칼라 진한 바탕에 부드러운 악어가죽의 모양과 질감이 원형 그대로 최대한 보존된 품질. 1984년 여배우 제인 버킨이 장 루이 뒤마 에르메스와 공동으로 디자인 했다는 명품. 기본모델 7천 달러에서 1만 달러까지 고가품. 우리나라에선 부유층 사모님들과 청담동 며느리들의 필수품."

 

요즘 강남 여성들 사이에서 이 핸드백은 유행통신의 대명사가 되어있다고 한다. 1만 달러면 천만 원을 넘는 가격인데 돈만 있다고 살수 있는 물건이 아니어서 아시아에 할당된 수제주문량을 한국에 다 몰아달라고 했다느니 선취주문하고 1년을 '웨이팅리스트'에서 버킨백이 올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여성들이 줄을 섰다느니 얘깃거리도 많다. 참 대단한 구매열풍이다. 덕분에 2백 만 원대의 기존 에르메스 고가품은 명품대열에서 낙오해 시들해졌다니 먼 동화속의 남의 나라 얘기 듣는 기분이다.

 

지난 봄 제주 핑크스 골프클럽에서 '유러피안 투어 발렌타인 챔피언십'이 열렸다. 프로암 대회에 초청돼 영국에서 온 프로골퍼와 경기를 마치고 만찬장에서 스코틀랜드 위스키제조사 발렌타인의 사장을 만났다. 어니 엘스와 콜린 몽고메리, 양용은 등 골프 월드스타들이 대거 참석한 이 대회를 왜 한국에서 여느냐는 순진한 질문에 머뭇거리던 그는 "전 세계 발렌타인 판매량의 23%를 한국에서 사줍니다. 저희로서는 소비자들에게 보답을 하는 차원에서 이 대회를 제주에서 매년 열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대회스폰서인 발렌타인사의 실무자에게 들은 얘기로는 특히 17년산 이상 프리미엄급 발렌타인 위스키의 판매가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단다. 물론 한국시장에서 가격은 다른 나라보다 더 비싸다. 정관계 로비로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이 발렌타인 30년산을 트렁크에 박스로 싣고 다니면서 접대하고 마셨다는 수사기록은 한동안 화젯거리였다.

 

점심에 5천 원짜리 설렁탕 먹고 커피는 6천 원짜리 스타벅스를 들고 거리를 오가는 젊은이들 때문에 이미 웃음거리가 된 이야기지만 외국에선 2천 원 미만인 커피가 한국에 오면 두, 세배로 값이 뛴다. 그런데도 불티나게 팔리니 세상의 어느 장사꾼이 이런 대박을 그냥 넘기겠는가. 국제적으로 발표되는 스타벅스 지수나 햄버거 지수를 보면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같은 제품을 선진국에 비해 훨씬 비싸게  사먹고 있다.

 

"값은 따지지 않고 가장 비싼 청바지를 찾습니다"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아빠의 생일선물용으로 인터넷에 낸 알림문구다. 10만 원대 뱅뱅이나 캘빈클라인 정도는 애들이나 입는 브랜드여서 재미없고 100만 원대의 폴스미스나 버버리, 카케오 키구치를 찾는단다. 참 이름도 생소해서 제품이름인지 디자이너 이니셜인지조차 헷갈리는데 검색창에 청바지를 쳐보니 '비싼 청바지'를 찾는다는 애타는 알림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돌체 앤 가바나의 페인팅 청바지나 꼼데가르송의 준야 와타나베가 만든 100만 원 이상의 청바지. 이런 정도는 선물해야 중3의 얼굴이 선다는 얘긴데. 그 아빠는 흐뭇하게 이 청바지를 받았을까? 문제는 이러한 수입 청바지 역시 다른 나라보다 값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산 커피 '코피루왁'은 세계 최고품으로 쳐준다. 국제시세는 파운드당 100달러 정도지만 한국에서는 300달러에 거래된다. 개 좋아하는 사람이 늘면서 시베리안 허스키는 외국의 2배 값인 1억 원을 호가하고 말티즈나 골든 리트리버는 새끼 한 마리에 50만원을 넘는다. 카스피해산 캐비어는 200그램에 미국이나 일본의 3배인 700만 원까지 매매되고 호주산 마카다미아는 1킬로그램에 400달러인데 이마저도 없어서 못 판다.

 

얼마 전 서울 강남에 문을 연 스웨덴 침대 브랜드 해스텐스 매장에 들렀다. 겉보기에는 보통침대매트리스였는데 가격은 무려 1억 3천만 원을 붙여놨다. 외제 승용차 한 대 값이다. 같은 스웨덴 제 덕시아나 역시 대표상품이 2천만원대다. 두바이 최고급호텔 부르즈 알 아랍의 특실에 넣었다는 입소문으로 130%나 판매가 늘었다고 판매 마케팅매니저가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부자처럼 행세하고 싶은 욕망이야 이해가 가지만 사고도 바보소리 듣는 쇼핑은 이제 벗어 날 때도 되었는데 하는 생각 때문에 안타까움을 지울수 없었다. 비싸다고 소문이 나야 잘 팔리는 한국시장에서 소비자들만 된통 바가지 쓰는 느낌이다. 

 

3년 전 호주의 한 교포 디자이너가 한국에 진출했다. 적당한 마진을 붙여 5만 원대 언더웨어 세트를 홈쇼핑에서 팔았는데 통 장사가 되지 않아 고민이 쌓였다. 그런데 방송국관계자가 값을 두 배로 올리고 수입품임을 강조해보자는 충고에 그대로 따라했더니 일주일 만에 재고물량까지 몽땅 소진됐다. 호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면서 팔긴 팔았지만 그는 정말 이해 할 수 없는 경험을 했다고 털어놨다.

 

왜 그럴까. "알뜰한 소비는 곧 천한 소비로 인식되기 때문에  남들이 사지 못하는 비싼것을 사야 차별화에서 밀려오는 아늑한 자긍심을 느낄수 있기 때문"이라고 소비심리학자들은 분석한다. 특히 한국은 압축 성장으로 양산된 졸부들이 쇼핑으로 인격을 사려 하는 대표적인 지역으로 지목된다니 자존심이 상하는 대목이다. 

 

알만한 업자들은 이처럼 왜곡된 소비심리를 기가 막히게 이용해 바가지를 씌우고 호주머니를 털어낸다. 대부분의 고가 덧씌우기 전략이 거짓말 마케팅이고 허영심에 호소하는 내용임을 폭로한 '에르메스 길들이기'의 저자 마이클 토넬로의 책을 보면 입맛이 쓰다. 한국에 오는 대부분의 명품은 수량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만들어지고 뒷거래를 통해 얼마든지 빼돌려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품절직전에 나만 이 비싼 물건을 용케 사는 것처럼 속아 그야말로 '국제봉' 노릇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無印良品'

일본의 체인점이자 제품이름이다. 말 그대로 '어떤 브랜드도 달지 않았지만 품질은 좋은 제품'이다. 브랜드 선전이나 유통마진을 빼고 적당한 제조비와 이윤을 붙인 뒤 그야말로 적당한 가격에 파는 상점이다. 명품에 비해 손색없는 품질의 상품들이 3배에서 5배 이상 싸다. 비싸야 잘 팔린다는 쇼핑행태가 싫어서 일본의 뜻있는 젊은이들이 만든 회사인데 단골손님도 많고 인기가 대단하다.

 

21세기 소비자는 이제 전 세계가 무대다. 오늘날처럼 정보가 다 노출되고 비밀이 없는 세상에 우리만 바가지 쓰면서 명품을 못 구해서 안달을 하면 나라 체면 구기는 일이다. 상류층 소비도 있어야 경제가 돌아가고 또 비싼 것을 갖고 싶은 것은 인간의 기본 욕망이지만  똑똑한 소비를 해야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 세계 10대 무역대국이라는 자부심에 걸맞게 이제 소비도 '스마트 컨슈머'를 지향해야 할 때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onsumer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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