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건주의 돋보기] 지자체는 계획이 다 있다지만…주민들 뒷방 신세가 웬말
상태바
[장건주의 돋보기] 지자체는 계획이 다 있다지만…주민들 뒷방 신세가 웬말
  • 장건주 기자 gun@cstimes.com
  • 기사출고 2020년 02월 21일 08시 06분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자체 일방적 '기생충' 마케팅에 주민들 몸살

[컨슈머타임스 장건주 기자] 영화 '기생충'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국내 영화 촬영지가 관광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유명한 곳은 영화에선 우리슈퍼로 나온 서울 마포구 아현1동의 '돼지슈퍼'다. 며칠 전 찾은 돼지슈퍼는 이른 아침에도 관광객들 발길이 이어져 영화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영화가 뜨고 나니 이때다 싶었던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은 영화 촬영지인 아현동 일대를 배경으로 '영화 전문가와 함께하는 팸투어'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이른바 '기생충 투어코스'다. 마포구도 돼지슈퍼 인근을 원형 보존해 전 세계인이 찾는 관광명소로 조성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곳 주민들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조용했던 동네가 연신 들리는 카메라 셔터 소리에 모처럼 활기를 찾았지만, 주민들의 피로감이라는 부작용이 커졌다. 주민들은 행여 자신의 얼굴이 함께 찍힐까봐 사진 찍는 사람들을 피해 다니기 바빴다. 한 주민은 "낡은 집에 사는 사람들을 전 세계의 구경거리로 만들려고 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게다가 마포구가 원형 보존 구역으로 지정한 돼지슈퍼 일대는 당초 아현1구역 재개발 구역에 포함된 곳이라 당장 주민들 사이에선 재개발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관광명소 조성 계획 발표 과정에서 실제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아무런 상의도 없었다는 불만도 나왔다.

마포구 측은 관광명소 조성 계획이 재개발 계획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아현1구역 재개발에 착수하기까지 10년 이상 걸릴 수 있기 때문에 그전까지만 관광지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주민들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미국 뉴욕 브롱크스에는 '조커 계단'이 있다. 영화 '조커'에 나온 후 관광객들이 순례하는 명소가 됐다. 이곳 주민들은 초반엔 인적 드문 우범지대의 이미지를 벗을 것이라며 이를 반겼지만, 소음·쓰레기 문제에 불만이 커지면서 곳곳에 '촬영금지' 팻말을 붙이고, 관광객을 향해 날계란을 던지는 일도 벌어졌다.

물론 관광명소에 관광객들이 자발적으로 몰려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을 최우선시해야 할 지자체가 나설 땐 더욱 신중해야 한다. 특히 기생충처럼 빈부 격차를 다룬 영화 속 빈곤의 현장을 볼거리로 만들겠다는 결정을 내릴 때는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