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결합의 시대
상태바
지금은 결합의 시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빈세트 반 고흐가 남긴 초상화는 여러 점이 있지만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은 딱 두 점이다. 1888년 연말쯤 어려운 생활을 하던 고흐는 아를의 카렐호텔에서 라마르틴 2번지로 짐을 옮겼다.
2010.11.11

 

지금은 결합의 시대

 

 

 

빈세트 반 고흐가 남긴 초상화는 여러 점이 있지만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은 딱 두 점이다. 1888년 연말쯤 어려운 생활을 하던 고흐는 아를의 카렐호텔에서 라마르틴 2번지로 짐을 옮겼다. 하지만 혼자 지내기가 쓸쓸했던 그는 당시 퐁타뱅에 살고 있던 고갱에게 편지를 보내 같이 지낼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합쳐진 인상주의 두 거장은 그러나 작품을 두고 자주 언쟁을 벌이다가 급기야 그 해 12월 고흐가 면도칼로 귀를 자르고 자살을 시도한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고갱은 파리를 떠나고 홀로 남은 고흐는 다음해인 1889 1월에 귀를 붕대로 감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고뇌를 달랜다.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Self Portrait with Bandaged and Pipe)'이라는 불후의 명작이 탄생한 사연이다. 이 작품은 영국의 코톨드 인스티튜트 갤러리에 소장돼 있다.

 

   
 

 

얼마전 LIG 손해보험 구자준 회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 강남의 그룹 본사를 방문했다. 극지탐험과 마라톤을 통한 나눔경영으로 모범을 보이는 그의 경영철학을 존경하기 때문에 가끔씩 충전이 필요할 때 만남을 갖곤 한다. 접견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낯익은 그림 한 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평소에도 관심의 대상이었던 고흐의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이 아닌가. 그런데 잠깐 그림을 응시하는 동안 뭉툭한 파이프에서 담배연기가 피어 올랐다. 신기해서 자세히 들여다 보았더니 이번에는 자화상의 눈동자가 살아 움직이면서 깜빡였다. 푸르스름한 담배 연기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턱은 조금씩 움직인다. 120년 전의 유화가 살아 꿈틀거리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화면은 이내 바뀌어 파이프를 물지 않은 고흐의 다른 자화상이 디졸브 영상으로 나타난다. 인상주의를 대표할만한 6점의 그림이 차례로 떠오르고, 움직이고, 넘어가고, 마치 슬로우 비디오 화면처럼 5 30초 동안 반복적으로 상영되었다.

   

이 신기한 예술품은 비디오 아티스트 이이남씨가 55인치 LED TV 화면으로 고흐의 대작들을 재현시킨 것이었다. 어두컴컴한 옛날 갤러리에서 칙칙한 유화를 감상하는 것보다 훨씬 현대적 분위기로 고흐의 그림들이 다가왔다. 고풍스런 액자의 디자인 틀에 액정화면을 응용해 디지털 영상으로 그림을 재현해낸 것이다. 이이남씨의 '비디오 액자'는 아주 비싼 값에 주문 제작된다고 한다. 너무도 선명한 디지털 화면에 무빙 동영상까지 곁들여져 당시의 대작들을 현대 사람들의 눈으로 재해석하도록 연출된 것이다. 미술과 디지털 기술이 결합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낸 것인데 반짝이는 창조가 몰고 온 이 분야의 신시장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한다.

   

스토리와 문화의 결합, 브랜드와 스토리의 결합,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결합, 브랜드와 브랜드의 결합, 과거와 미래의 결합 등으로 지금 소비시장은 핵폭발을 일으키고 있다. 소비자들의 민감한 트랜드를 따라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누가 승리자인가. 소비자 경제시장의 거대한 화두가 밀려들고 있다.

  

10월의 가평을 흥분시켰던 자라섬의 재즈 페스티벌은 어느덧 국제적 음악행사로 발돋움했다. 재즈 뮤지션 뿐만 아니라 일반 재즈 애호가들의 높은 관심 속에 마무리된 노래축제였는데 화제의 주인공은 재즈가 아니라 와인이었다. 재즈와 와인을 결합시켜 대대적으로 홍보한 결과 이름도 없던 '가평와인'이 연간 생산량의 절반을 파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이다.

   

파리의 백화점을 휩쓸고 다녔던 일본 쇼핑객들에게 최고의 목표물은 루이뷔통 가방이었다. 150년 전통에 변하지 않는 클래식 디자인으로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것 같던 루이뷔통의 인기는 그러나 식상하다며 변심한 소비자들의 눈 밖에 난 뒤 사경을 헤맸다. 이때 루이뷔통은 일본인 아티스트 무라가미 다카시와 손을 잡는다. 아줌마 가방의 이미지를 벗고 팝아티스트적인 경쾌한 문양과 다양한 색상으로 이미지를 바꿨다. 극적으로 분위기가 바뀐 가방은 다시 선풍적인 인기 속에 전 세계 주요 매장에서 화려한 부활을 쏘아 올렸다.

   

LG 냉장고 표면에 명화를 그래픽하거나 와인잔처럼 TV를 탁자위에 사뿐히 올려놓을 수 있도록 만든 '이건희의 보르도 TV', 전라남도 함평시골의 나비축제, 골프장과 가라오케 클럽을 결합시킨 실내골프장 골프존의 대박, 휴대폰과 MP3, 카메라까지 한 번에 결합시킨 스마트폰 등 경쟁에서 결합으로 승부를 낸 제품의 예는 끝이 없다. 요즘은 심리학까지 동원되는 추세다. 매년 1111일을 '빼빼로 데이'로 명명해 과자를 팔고 연인들끼리 장시간 통화하는 습관을 이용해 커플폰은 요금을 대폭 깎아주는 할인 마케팅을 하고, 가족끼리의 항공사 마일리지를 공유하도록 배려하며, 모든 구매행위가 한곳으로 적립되는 신개념 보너스 카드 등으로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양방과 한방을 동시에 갖추고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나 단순한 치료보다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심리에 착안한 치과 성형외과 피부과 연합 합동병원이 대세다. 정보기술과 심리학, 화학과 디자인, 스토리와 휴머니즘, 종교와 사상을 넘어서는 결합으로 낯선 것들과의 공존을 통해 새로운 창조가 용솟음치고 있다. 소비자들의 제품사랑은 머물러 있지 않고 끝없이 움직인다. 경쟁에서 협력으로 다시 결합을 통한 공존으로 상품창조의 대이동을 만들어 주는 시대의 에너지다.

   

상품의 결합으로 상상력이 창출되는 시대의 다음단계는 무엇인가. 사람과 국가, 생각이 연합할 차례다. 혈연과 지연, 학연을 뒤엎어서 결합시키고 인종과 국가의 대결이 융합의 하모니를 이룰 수 있도록 새로운 창조가 필요하다. 신개념의 기발한 상품처럼 신시대의 기발한 융합이 이뤄져야 한다. 평생을 천방지축으로 살았던 세르반테스의 소설 주인공 돈키호테의 외침이 떠오른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어라  

 누가 미친 거요?  

 장차 이룩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내가 미친 거요? 

 아니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바라보는 당신이 미친 거요?"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onsumertimes.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