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 히도시 기다주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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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 히도시 기다주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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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메워 만든 일본 오사카 간사이(關西)국제공항 활주로가 시야에 들어왔다.  잔잔한 바다 한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공항. 자주 와보는 곳이지만 오늘은 유난히 파도가 잔잔하다. 하늘은 태양빛으로 가득차있고 휴가철 방문객들은 분주하게 짐을 챙긴다. 공항을 빠져나와 해풍을 맞으며 자동차는 속도를 낸다. 역사의 도시 나라를 향해서. 

나라현. 고대 일본의 역사와 문화가 가득 담겨 있는 곳, 그래서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인 명소로 유명해진 곳, 우리에게는 백제문화의 전래지라는 자부심이 있는 곳. 나라가 우리의 나라(國)와 같은 뜻이어서 더욱 친숙한 곳, 일본 사케의 탄생지이기도 한곳.

산을 넘고 울창한 스기(삼나무)숲을 돌고 돌아 간사이 지역 동남쪽 내륙 깊숙이 뻗어 들어간 나라현에 도착했을 때는 한여름의 태양이 이글거리는 8월 하순이었다.


서기 400년부터 빚어 마셨다는 일본 술, 사케의 매력을 알아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다. 일본의 혼으로 알려진 사케는 그야말로 일본의 역사다. 이제 장년층에서 청년층으로 서서히 인기를 몰아가고 있고 시대를 앞서가는 '젊은 술'로 재탄생 하기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사케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 술의 역사와 문화는 어떤 것이며 현지의 사카구라(양조장)모습은 어떨까에 대한 오랫동안의 호기심을 해결할 시간이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아름다운 고도(古都) 나라에서 멀지 않은 카시하라 시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스페인 남부의 알함브라 궁전 마을을 연상케 했다. 무로마치 시대 불교가 번성하면서 늘어난 사원에서 사케를 빚어 제사상에 올리기 시작했다는 카시하라의  풍경은 넉넉한 인심과 풍요한 산수로 이 고장에서 왜 사케가 시작됐는지를 짐작케 했다. 쇼락구지(正曆寺)에 100명이 넘는 승려들이 세 번의 발효과정을 거쳐 삼단시코미 제조법으로 만든 승방주가 바로 이곳 카시하라 사케의 원조다.


나라지역을 대표하는 기다주조(喜多酒造)의 기다 히도시 대표는 이미 양조장 대문밖에 나와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석등과 향나무가 어우러진 정원을 지나 천년의 고택 안채로 안내됐다. 손님을 위해 정성껏 마련한다는 차가운 일본 전통의 호지차를 두손으로 받쳐 들고 마시면서 첫 인사를 나눴다. 같이 놓인 요깡을 한입 베어무니 허기가 가신다. 정갈한 다다미 방 응접실에서 대화는 시작됐다.

  

 

문-사카구라 정문에는 기다주조라는 문패가 걸려있고 주신 명함에는 미요 기쿠(御代 菊)도가라  고 적고 있는데 두 가지 사이에는 어떤 의미의 차이가 있나요?

 

=기다주조는 술도가 즉 양조장(사카구라)의 이름이고, 미요 기쿠는 우리 도가에서 가장 오래된 대표적인 사케 이름입니다. 기다주조는 291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서기 1718년부터 여기서 술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는 일본 역사의 에도막부 시대였기 때문에 양조장을 만든 조상님은  당시 불교와 관련된 승방주를 빚는 장인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의 비법이 지금까지 대를 이어 전해져 오는것이지요. 그래서 저희 도가가 나라현의 대표적인 양조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에는 약 2천 여개의 양조장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는  기다주조가 열 번째 안에 드는 명문 술도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우리 제품이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것은 물론이고요.


문-사케의 장인(匠人)이라고 하기에는 비교적 젊으신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기술을 익히고  이 역사깊은 사카구라를 맡게 되셨는지요.


=아, 저는 원래 이집의 사위입니다. 제 고향은 후쿠이 현이고 저희 본가도 양조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도쿄 농과대학 주조학과를 졸업하고 아내와 결혼하면서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도쿄의 주종연구소에 근무하는데 마침 그곳에 연수를 온 아내를 만난 것이지요. 결혼하면서 무남독녀 외동딸을 둔 처갓집에서 저더러 도가의 장인을 이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민하다가 본가의 양조장을 접고 이곳 기다주조의 9대 장인이 되었습니다. 물론 성도 기다주조의 기다로 바꾸었지요.

 

(함께 차를 마시던 8대 대표이자 장인어른인 기다 가쯔요시 씨는 웃음으로 이 사실을 인정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데릴사위 형식으로 대가 끓길뻔 한 기다주조를 히도시씨가 이어받았던 것이다. 그의 아내는 분주한 걸음으로 차와 간식거리를 내오고 있었는데 다소곳하고 겸손이 몸에 밴 행동 등이 전형적인 일본 가정주부의 모습이었다)

 


문-미요 기쿠가 유명해진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사케의 품질은 쌀과 물, 그리고 누룩(효모)에 의해 좌우됩니다. 쌀은 일본전국에서도 이곳 나라현의 생산품이 특급입니다. 평야와 산, 강이 어우러져 최상의 사케쌀을 거두고 있지요. 이곳은 그래서 고대부터 하늘이 내린 고장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습니다.  나라가 그 옛날부터 일본 역사의 주요 시대마다 도읍지였고 중심적인 문화를 가꿔 나간 이유가 이런데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물도 좋습니다. 저희 양조장 마당에 아직 샘이 남아있습니다. 오랫동안 그 물을 떠 올려 술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빚어진 미요기쿠는 당연히 사케의 최상품으로 소문이 나고 나름대로의 역사를 갖게 된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문-보통 사케와 미요기쿠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특별한 과정이 더해지는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세 가지 요소에 요즘 제가 시도하는 것은 이제 전통기법보다 현대식 기법을 좀 가미해 보자는 생각입니다. 8대 장인까지는 쌀과 물, 효모를 섞는데 대개 눈대중과 경험으로 작업을 해왔습니다. 이제는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제조과정의 시간개념을 도입한다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고대부터 내려온 나라지방의 주조비법인 열처리작업이라든가 하는 기술이 고스란히 베어 있습니다.

누룩과 초기 발효균을 만드는 방법이나 술의 부패를 막기 위한 제조공법 등이 근대 양조법을 넘어서는 기술의 기초를 이뤘다고 볼수 있지요.

 

 

문-기다주조에서 만드는 사케의 주요 공정은 어떤 과정을 거칩니까?


=먼저 술쌀(酒米)을 엄선해 매입해다가 씻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 다음 浸淸(신세끼), 즉 수분을 적당히 함유하도록 마대에 담아 물에 담금처리를 한 다음 미즈기리(수분제거)와 식히기, 그리고 무시(찌는 과정)와 무시고메(술밥을 만드는 과정)가 이어집니다. 그런다음 효모인 누룩균을 섞어서 잘 배합한  다음 압착기에 넣고 발효를 시키고 열처리를 거쳐 제품으로 병입포장이 되지요. 즉 현미-정미-선미-찌기-식히기-효모섞기-밑술만들기-삼단시코미(삼단계발효)-짜기-여과-열처리-병포장-출하판매의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간단히 설명 드렸는데 구체적으로는 40여 가지 공정이 또 복잡하게 이어지고 각 과정마다 초단위까지 엄격한 시간배정에 따라 철저한 품질관리가 가해집니다.

 


문-이 술도가에서 생산되는 미요기쿠외에 어떤 종류의 술들이 있나요


=우리 종업원들의 열정과 창의력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사케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장년층이 사케의 주소비층이지만 젊은이들을 위한 새로운 술을 출시하기 위해 이번에 리헤에(利兵衛)와 하쯔고이(初戀)를 만들었습니다. 리헤에는 알콜도수 20%의 준마이 긴조슈입니다. 하쯔고이는 '첫사랑'이라는 뜻으로 청년층이 즐길만한 알콜도수와 스토리를 만들어 넣었지요. 도수가 낮고 달콤하면서도 발포성이 강해 상큼함을 느끼도록 만들어져 대학생이나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또 병포장도 기존의 큰병에서 벗어나 300 미리리터의 작은 병을 선택했고 흰병에 분홍색 장식을 가미해 술보다는 음료수같은 기분이 들도록 배려했습니다. 미요기쿠는 전통을 자랑하는 저희 주조의 대표선수이고요(웃음).


문-일본술은 어떻게 등급을 구분하고 또 만들어지는 과정이 다른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는 대개 준마이 다이긴조가 인기인데-


=사케는 크게 3가지 정도로 나눕니다. 혼조주슈(本釀造酒)는 발효를 끝낸 모로미(거르지 않은 술)의 밥알로 향을 내고 쌀 도정률이 10% 이하이며 양조 알콜을 첨가한 술입니다. 가장 대중적인 술이지요. 그 다음단계인 준마이슈(純米酒)는 쌀로만 빚은 사케로 이때 도정은 별도로 정합니다. 긴조슈(吟造酒)는 혼조주슈와 준마이슈 가운데 60% 이상 쌀을 도정해서 심백을 중심으로 만든 고급 술이입니다. 이 제품들을 가지고 품질에 따라 다시 다이긴조와 준마이 다이긴조 등으로 나눕니다. 말씀하신 준마이 다이긴조는 최고급 사케입니다. 일본에서도 비싸서 어지간한 샐러리맨들은 못 마시는데 한국에서 인기가 있다니 놀랍네요. 아마 수요층이 초기라서 고급사케를 선호하는것 같습니다.



문-그럼 한국의 애주가들이 고급술을  좋아하는 거로군요. 비싸야 좋은 술이고 또 선물을 할때도 감사의 뜻을 새긴다고 해서 다이긴조가 유행하는데 즐기기 나름이라는 말씀으로 해석됩니다. 일본에서 한해에 생산되는 사케는 어느 정도나 되나요?


=일본의 쌀 생산량은 연간 900만 톤 정도입니다. 이 가운데 5%인 40만 톤 정도가 술을 빚는데 사용됩니다. 사케는 연간 80만 킬로리터가 만들어지는데 20여 년 전보다 반으로 줄어든 것입니다. 세월이 가면서 술 소비도 줄고 쌀 소비도 줄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밥 안먹고 사케 덜 마시고 한다는 얘기죠. 특히 일본 술시장이 개방되면서 전 세계 술이 다들어오니까 사케의 경쟁력이 점차 낮아지는 겁니다. 이러한 흐름이 사케의 고급화를 빠르게 진행시킨 요인이기도 합니다.


문-최상의 사케는 쌀이 결정짓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유명한 산지는 어느 곳을 꼽나요?


=최상의 술은 쌀과 물, 바람, 기술이 잘 어우러져야 빚어집니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은 쌀입니다. 사케쌀은 우리가 먹는 일반 쌀과 다릅니다. 슈조고데키마이(酒造好適米)라고 하는데 일반 쌀과 달리 둥근 원형에 가까운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나라지역이 유명하고요. 효고현(兵庫)의 야마다 니시키(山田錦)와 동북지방의 고햐구만세키(五百萬石), 나가노현의 미야마 니시키美山錦), 히로시마의 핫다(八田), 오카야마의 오마치(雄町) 등을 최고급품으로 칩니다.


문-기다주조의 사케가 한국에도 수출이 됩니까?


=네 아직은 소량입니다만 지난해부터 조금씩 물량을 늘리고 있습니다. 간사이 지역 양조장들이 연합해서 작년에 서울에서 사케 박람회를 열었고 앞으로도 일본술을 알리는 기회를 자주 가질려고 합니다. 내년 1월쯤 서울 롯데호텔에서 더 많은 술도가가 참가하는 대규모 사케 품평회와 시음대회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문화적으로 볼 때 일본과 중국, 한국이 사케소비의 중심지라고 할수 있습니다. 동양의 술이 간직하고 있는 오묘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소비층들이거든요. 한국시장을 겨냥해 기존의 대병이 아닌 소형 병 포장과 좀 더 부드러운 사케 상품을 내놓을 생각입니다. 올해 상반기에 한국의 막걸리가 600만 달러어치 일본에 수출됐고 사케는 550만 달러어치가 한국에 팔렸습니다. 술로만 본다면 일본이 한수 아래라고 봅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마코리 인기가 대단 합니다. '마코리'라고 발음할수 없는 점을 이해해 주십시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일 양국의 술 거래 물량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봅니다.

 


###일본에서 우리의 고우영씨 만큼 유명한 작가 오제 아키라 의 '명가의 술'이라는 오래된 만화가 있다. 양조가의 딸로 태어나 도쿄에서 회사원 생활을 하던 나츠코가 후계자이던 오빠의 죽음으로 귀향하고 여자는 안 된다는 편견과 반대를 이겨내면서 오빠가 꿈꾸던 환상의 술을 만들어 나간다는 감동적인 줄거리다. 사케 초보자들에게 이 만화를 추천하고 싶다.

 

여인의 가슴으로 데운다는 술 사케. 그 낭만과 기막히게 포장된 스토리 텔링으로 '일본술은 비싸도 마실만 하다'는 이미지가 이미 전세계적으로 형성돼 있다.

 "눈이 내리는 겨울밤. 바닷가 여관주인이 나그네에게 가슴팍에 묻어 안고서 데운 사케를 한잔 내놓고 인생을 이야기하는 술". 그 술에 흠뻑 취하면 문학이 되고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된다던가.


LA의 일식 레스토랑 '노부'에서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사케를 마시는 장면은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사케는 동양의 술에서 세계의 술로 한 단계 수준이 높아져 있다. 나라의 사카구라 기다주조를 돌아보면서 한국 술의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사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막걸리나 한국의 전통주를 지구촌 제일의 술 브랜드로 만들 수는 없나?. 이런 저런 생각으로 복잡한 머리는 양조장 탐방 후 옮긴 카시하라의 일본식 카이세끼(정식) 요리집 '砂貴'에서 말끔해졌다. 기다 사장과 주고받은 사케로 취기가 오르면서 기분이 유쾌해지고 서로는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본 나라 현지취재)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onsumer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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