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종금의 신화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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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종금의 신화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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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허드슨 강변의 석양은 여름밤을 수놓고 있었다. 7월의 태양은 밤 8시가 넘도록 맨해튼과 강 건너 뉴저지를 지글거리게 달구었고 성하의 열기를 흠뻑 머금은 고층빌딩 숲 사이로 어둠이 내려 깔리는 독립기념일의 밤은 흥분으로 고조돼 갔다.
2010.07.16

 

금호종금의 신화쓰기

 

 

뉴욕 허드슨 강변의 석양은 여름밤을 수놓고 있었다. 7월의 태양은 밤 8시가 넘도록 맨해튼과 강 건너 뉴저지를 지글거리게 달구었고 성하의 열기를 흠뻑 머금은 고층빌딩 숲 사이로 어둠이 내려 깔리는 독립기념일의 밤은 흥분으로 고조돼 갔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은 이 전통 있는 불꽃놀이를 보기위해 45번 부두로 끊임 없이 몰려들어 강변 쪽은 이미 사람의 물결로 뒤덮인 지 오래다. 이윽고 어둠을 차올라 터지는 폭죽들이 밤하늘을 가른다. 강변 곳곳에서 솟구치는 함성과 함께 버무려진 불꽃의 여운은 구겐하임과 메트로폴리탄을 돌아 볼 때의 감동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허드슨가 29층 파티장 발코니에서 내려다 본 독립기념일 밤 뉴욕의 풍경은 21세기 태양의 제국, 미국이라는 거대한 힘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다음날 월스트리트와 동서로 나란히 관통하는 파인스트리트 70번지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높이 290미터에 66층짜리 AIG(America Insurance Group)빌딩은 꼭짓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련하다. 1932년 석유와 가스 재벌인 헨리 도허티가 지었고 1970년 AIG 본사가 된 이래 지금껏 세계 금융의 심장부 월가의 자존심으로 자리매김 해 온 족보 있는 건물이다. 70년이 지났지만 최고급 블루대리석으로 장식된 내부나 값비싼 주석으로 둘러쳐진 고풍스런 외벽의 중후함은 건축당시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 이 건물을 맨해튼의 명품으로 만들려 했었는지 건축가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낯선 동양인을 안내하는 현지인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65층 이사회 의장실에서 바라본 월가는 AIG의 위용아래 하나로 모이고 멀리 대서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뒤  런던을 제치고 뉴욕이 세계 금융의 심장부로, 지금의 미국이 절대적인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전 과정을 모두 지켜온 현장이었다. 

   

 

 

지난해 이맘때 월가의 상징인 AIG 본사 빌딩을 한국의 금호종금이 매입하기로 계약 했다는 소식은 만우절 뉴스로 취급되었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들이 대부분이었고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지켜봐야 할 것 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대세였다. 지명도 높은 대형은행도 아니고 손꼽히는 증권사나 보험사도 아닌 작은 종금사가 엄청난 빅딜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당시의 분위기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금호종금은 아랍계 컨소시엄과 중국자본, 유럽은행 등 30여개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계약주체로 선정되었다. 약속대로 건물매입대금 1억5천만 달러 전액을 지불했고 AIG는 작년 8월 한국 금융사의 소유로 넘어왔다.


미국 언론들은 지난해 뉴욕에서 가장 저가에 팔린 대형부동산 계약 3위로 AIG 빌딩 매각을 꼽았고 성공적으로 건물을 사들인 금호종금은 지금까지 금융계의 신데렐라 대접을 받고 있다. 매입 1년 만에 산값의 3배로 되팔 수 없느냐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부속건물은 월가에 인접한 도이치뱅크가 지난해보다 두 배 값에 사들이기로 이미 계약이 성사됐다. 금호종금은 AIG 빌딩 리모델링 작업에 국내 대형 건설사들을 참여시켜 부가가치를 높힌 뒤 임대방식으로 수익을 올리는 장기적 신화에 도전하고 있다. 충분히 가치 있는 플랜으로 평가받는 가운데 올 하반기 2차 자본투자에 참여하겠다는 국내 연기금과 금융사들의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실력을 인정한 뉴욕시는 AIG 빅딜에 참여했던 한인 부동산 개발그룹 영우어소시에이츠와 함께 금호종금이 허드슨 강 57번 부두를 개발해달라고 제의해와 이 또한 성사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소식이다. 한때 일본자본들이 록펠러 센터와 타임빌딩 등을 사들인 적이 있었지만 단순한 건물 매매 중개였고 그마저 버블경제 붕괴로 되팔고 떠나 옛이야기가 되었다. 중장기적인 개발계획을 동시에 추진하는 금호종금의 프로젝트는 과거 일본이나 동남아 자본보다 한 단계 더 발전된 투자방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외환위기로 정부 인사들이 뉴욕을 오가며 국가부도를 모면해보려는 1997년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금호종금의 성공은 금융자본의 본격적인 미국진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자동차나 반도체 같은 산업제품은 미국시장을 석권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낙후된 우리 금융자본은 아직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고 한번도 이같은  대형거래를 미국에서 성사시켜 본적이 없었다. 또 국내 자본이 대형건설사와 함께 뉴욕 부동산 개발에 나선다면 충분히 시장성이 있다는 측면에서도 앞으로 허드슨 강 부두 개발참여의 기대가 크다.


세상은 이제 정보사회에서 지식사회로, 다시 첨단 네트워크 사회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어제가 이미 옛날이다. 한국 금융은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부단히 두드리면 결국 문은 열린다. 해외시장을 주시하면서 신뢰를 쌓고 투자시스템을 만들면 "금호종금의 신화쓰기"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무한한 잠재력을 발산하는 금융인들의 기개에 뉴욕의 문턱이 훨씬 낮아져 보이고 친근감마저 드는 것은 무슨 감정일까. 맨해튼은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땅이 아니다. AIG 빌딩의 푸른 첨탑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뿌듯한 기분으로 케네디 공항을 떠났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onsumer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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