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퍼자서전 '세상의 끝에 내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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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퍼자서전 '세상의 끝에 내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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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
Dispatches from the edge


앤더슨 쿠퍼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CNN 기자로, 그를 처음 알게 되었던 건 한 정치 방송을 통해서였습니다. 그가 화면에 모습을 나타내기 전에는 모든 것이 지루했습니다. 한 늙은 앵커가 테이프가 늘어지는 것처럼 듣기 싫은 목소리로 방송을 진행했는데, 그 노앵커의 숱이 사라져가는 머리카락이 신경에 거슬렸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추상명사가 난무하는 복잡한 영어는 제 인내심을 갉아먹고 있었고요. 그 때 카메라가 전환되면서, 굉장히 매력적으로 생긴 한 남자 앵커가 화면에 잡혔습니다.


그 순간,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은발이 저렇게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앤더슨 쿠퍼는 한 눈에 제 마음을 사로잡았지요. 단순한 동물적이고 이성적인 호감이 아니라, 좀 더 복잡한 의미의 감탄이었던 것 같아요. 뉴요커다운 빠른 말투는 자신감 넘치고 절도 있는 태도와 어울렸고, 깔끔하게 생긴 외모는 신기하게도 전혀 가벼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잘생겼다'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글쎄요. 그가 제가 좋아하는 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제게 있어 앤더슨 쿠퍼의 첫 인상은 그 누구보다도 강렬했답니다.


때문에 그가 자서전을 냈을 때는 뛸 뜻이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불안감도 존재했어요. 별은 멀리 있기 때문에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지, 너무 가까이 가게 되면 울퉁불퉁하게 보일 뿐이잖아요. 태양에 너무 가까이가서 날개를 잃어버린 이카루스처럼, 실망과 절망만을 안게 될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했고, 조심스럽게 그의 자서전을 펼쳐보았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너무나도 유명한 철도왕 밴더필드 가문의 직계 후손이라는 것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고, 앤더슨 쿠퍼 그 또한 예일대를 졸업한 수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자서전의 내용은 역시 조금 더 극적이고, 충격적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사적인 내용 보다는 앤더슨 쿠퍼의 내적인 고민들과 사고들을 더 세심하게 담고 있기도 하지만, 그 모든 고민들이 결국 아버지와 형의 죽음이라는 사적인 곳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었겠지요.


책은 그가 왜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비참한 지역에 가서 카메라의 녹화 버튼을 누르는지, 너무나도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르완다, 이라크, 소말리아, 인도네시아 등 모든 학살과 전쟁, 자연 재해, 기근이 만연해있는 지구촌 위험지대에서, 앤더슨 쿠퍼는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자신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일에 매진합니다. 처참하게 살해된 시체부터 자신의 귓전을 스치는 총알의 위협까지. 사람들은 왜 그가 그렇게 위험한 곳을 자진해서 가는지 모르겠노라고 입을 모으지만, 그는 단 한 번밖에 없는 앤더슨 쿠퍼로서의 삶이 온전히 그 자신의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잘생긴 외모,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의 후손, 예일대 졸업이라는 명함, 하키와 조정 등 운동으로 다져진 몸, 뛰어난 언어 구사력과 작문 능력까지. 그는 어떤 것 하나도 결핍되지 않은 상태로, 말 그대로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법한 캐릭터성을 가지고 뉴욕에서 생활합니다. 그런 그를 오지와 위험지역으로 내모는 동기가 무엇일까요?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름 만으로도, 그리고 어렸을 때 했던 모델일 만으로도,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 앞에 있는 신탁 자금만으로도 평생을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을 터인데, 가짜 기자 신분증까지 만들면서 미얀마와 베트남으로 달려가 팔다리가 없는 군인들을 취재하고, 전선을 누비며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까지 외국 특파원이 되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모든 것을, 책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느꼈던 흥분, 두려움, 죄책감, 미안함, 슬픔, 좌절, 고통…. 그도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고, 내가 그러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그 '긴장감'을 즐기며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참혹한 지진피해로 아이티 주민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제일 먼저 달려가서 제일 마지막에 온 것도 그였지요. 그는 뉴욕에 돌아와서 채 여독을 풀기도 전에 다시 또 아이티로 달려가 한 달 정도 더 그곳에서의 생활을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에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들의 고통이 잊혀져서는 안 됩니다. 그게 바로 제가 다시 이곳에 온 이유입니다.' 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카메라 앞에서 윙윙대며 날아다니던 파리떼들을 쫓던 모습은, 아마 제 평생 기억에 남는 명장면으로 남을 것입니다. 아쉽게도 이 책은 아이티 지진 이전에 집필된 책이라 아이티 지진 참사에 관한 기록은 없지만, 그래도 중간에 자리잡고 있던 쿠퍼 가족의 사진이나 앤더슨 쿠퍼의 고등학교 때 모습 같은 걸 구경할 수 있어서, 그의 팬으로서는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를 보면 항상 이런 말이 떠오릅니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


앞으로도 그를 지켜보며 응원하렵니다.
인연이 닿는다면 언젠가는 사인 한 장 받을 날이 오겠지요?

 

 

출처: 소유흑향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dnjsgl3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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