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나라와 초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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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나라와 초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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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이야기다. 양(粱)나라의 장군 송축(宋蹴)은 이웃국가인 초(楚)나라와의 변경지대 한 현의 책임자였다. 변방을 경비하는 양측은 초소를 설치하고 서로 적들의 동태를 살폈다.
 2010.05.26

 

양나라와 초나라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이야기다. 양(粱)나라의 장군 송축(宋蹴)은 이웃국가인 초(楚)나라와의 변경지대 한 현의 책임자였다. 변방을 경비하는 양측은 초소를 설치하고 서로 적들의 동태를 살폈다. 주야로 번갈아 가며 초병들이 경계를 펼치는 상황에서 언제 싸움이 벌어질지 모르는 긴장상태가 지속되었다. 양측 병사들은 각기 오이밭을 만들어 직접 먹을거리를 조달했다. 그런데 양나라 병사들은 오이밭을 정성들여 가꾸는 반면 초나라 병사들은 게으름을 피우고 일을 하지 않아 오이밭이 엉망이었다. 잘 가꿔진 오이밭을 시기해 오던 초나라 병사들이 경비가 소홀한 어느 날 밤 양나라 변경으로 들어가 오이꼭지를 비틀고 뿌리를 뒤집어 오이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양나라 병사들은 흥분했고 즉각 보복공격을 하자며 야단이었다.


이때 보고를 받은 변방의 장수 송축은 "어찌 어리석은 자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느냐" 며 병사들을 꾸짖은 뒤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보복은 보복을 부른다. 그래서는 절대로 이웃국가인 초나라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 우선 몸놀림이 날렵한 초병 몇 명을 선발하라. 이들을 매일 밤 초나라 변경으로 잠입시켜 그들의 오이밭을 가꾸도록 하라. 초나라의 오이밭이 우리 것과 똑같이 무성하도록 퇴비와 물을 준비해 정성을 기울여라. 작전은 절대로 들키지 않도록 비밀리에 시행하라"


며칠 뒤 초나라 병사들은 다 죽어가던 누런 넝쿨이 살아나고 오이가 열리는 것을 이상하다고 여기고 야간정찰을 강화한 결과 이것이 양나라 병사들의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나라 장수는 크게 감동하여 즉시 초왕에게 장계를 올려 보고했다. 이 소식을 들은 초왕은 "너희들은 당연히 창피한줄 알아야 한다. 변경의 초병들이 또 다른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는지 추문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자초지종을 파악한 초왕은 "무릇 사람이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비례(非禮)하고도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이는 군자의 도리가 아니다"며 예품을 준비하고 격식을 갖춰 양나라에 사신을 보냈다. "이번일로 양국이 선린우호관계를 맺자"는 초왕밀서를 받아본 양왕은 즉시 화평관계 수락으로 화답했고 두 나라 주민들은 긴장을 풀고 자유롭게 왕래하게 되었다. 물물교환 장터가 생기고 곡식의 씨앗을 나누는 등 교류가 활발해져 한 동안 양국의 관계는 이웃사촌처럼 화목하게 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양국의 평화를 가져오게 한 송축의 공덕을 칭송하고 비석을 세우는가 하면 오랫동안 그의 넓은 도량을 기렸다.


천안함 결과를 놓고 남북이 요동을 치고 있다. 전쟁기념관에서 우리의 결연한 대응의지를 밝히는 대통령의 담화가 있었고 북한의 전투태세 준비명령 소식이 외신면 톱뉴스다. 주가와 환율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경제전선의 포물선이 이상방향을 그리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어느 쪽이 더 현명한 행동을 했는가를 가늠하기에는 아직 좀더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의 대북정책목표가 급회전하는 분위기다. 너무나 많은 희생과 인내를 딛고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30년 전으로 되돌아가야 맞는 것인지를 판단하기가 혼란스러워 진다.


몇 년 전 타계한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는 그의 마지막 저서를 접할 한국 독자들에게 우리나라의 경이적인 발전을 칭송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이룩한 성과를 한 차원 더 끌어올리고 더 나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한국은 가까운 미래에 북한이라는 숙명적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 고 조언했다. 싫든 좋든 국제사회가 보는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부부터 시작된 대북유화정책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지나오면서 '퍼주기' 논쟁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인내의 한계선상에 내몰리며 피를 말리는 울분과 격동이 있었지만 그래도 역사는 좀더 진전된 쪽으로 나아지고 있다고 믿어왔던 시선들은 다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칼은 가슴에 품었을 때가 두려운 것이지 빼드는 순간 상대와 똑같은 수준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반도의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 망나니 같은 집단의 광기를 비슷한 방법으로 응징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양나라 송축의 역발상이 필요한 때인지를 묻는 국민들이 많다.


올해 1월 이명박 대통령은 다보스 포럼에서 영국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떤 장애물이 있더라도 아무런 조건 없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밝혔다. 이것이 유효하다면 어떤 장애물도 넘어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정부가 그토록 공을 들이는 G-20 정상회의의 개최국 의장으로서 성공한 대통령이 아니라 북한을 잃어버린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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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mang 2010-05-28 21:39:46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가입한 신출내기 회원입니다.
그런데 오늘 님의 글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맞습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역사 되돌려 놓으려 하는지...
그런데 국민들의 감정만을 자극하고 있으니 걱정입니다.
좋은글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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