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은 왜 매력적? '세기의 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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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은 왜 매력적? '세기의 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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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흑향씨는 도서관에 가면 제일 처음 하는 일이 신착 도서를 찾는 일입니다. 주로 역사와 문학, 언어 쪽을 위주로 살펴보는데, 그러다가 흥미로운 책 제목을 접하게 되면 주저 없이 책을 꺼내서 작가의 말을 꼭 읽어봅니다. 작가의 말은 책을 쓰게 된 의도라든지, 아니면 책이 시사하는 점이라든지 하는 걸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둔 곳이기 때문이지요. 작가의 말이 없으면 에필로그나 목차를 살펴 봅니다. 소설 같은 경우는 책 뒤쪽에 나와 있는 소개글, 혹은 앞 쪽에 나와 있는 추천사 등을 읽어보지요.

 

하지만 <세기의 악당>은 위의 어느 것 하나에도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단순히 책 제목 자체가 제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에요. 검정과 빨강이 조합된 두툼한 이 책은 '악인은 왜 매력적일까?'라는 부제를 거침없이 표지에 달고 있습니다. 목차를 읽어보니 고대 로마시대의 네로 황제부터 시작해서 야심찬 여걸 측천무후, 피의 여제 바토리, 니콜라이 황제 일가를 죽음으로 몬 예언자 라스푸틴, 인종 청소자 히틀러, 마루타 실험을 자행했던 이시이 시로, 그리고 조금 의외라고까지 보이는 항해왕 엔히크와 탐험가 콜럼버스까지.

 

 저자는 '악인'을 단순히 수많은 사람을 죽인 폭압가, 잔인하고 끔찍한 형벌을 자행했던 귀족 등으로만 한정하지 않고, 그들이 어떻게 해서 그 수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는지에 대한 심층적이고 논리적인 이유 또한 책 안에서 설명합니다. 물론 권력을 위해서,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사람의 예가 이 책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역시 영화로 만들어지고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건 사사로운 개인적인 욕망에서 일어나는 피비린내 나는 끔찍한 사건들이다보니,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600명이 넘는 어린 소녀들을 고문하고 죽여서 그 피를 마시고, 몸에 칠한 에르제베트 바토리의 이야기같이 으스스하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많습니다.

 

 악명높은 제 4차 십자군 원정대를 이끈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이야기나,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만들었으나 자기 스스로는 정신병을 앓아 아들까지 죽여버린 광포한 뇌제 이반 4세의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측천무후나 네로, 스탈린, 히틀러, 라스푸틴, 폴 포트, 마오쩌둥, 피사로 등 한 나라를 손 아래에 두고 자기 멋대로 휘두르며 수많은 죽음을 야기시킨 지배자의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다루었지요. 예컨대 측천무후만 해도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살린 긍정적인 측면의 소설도 많고, 히틀러 또한 자서전인 <나의 투쟁>이 유명하잖아요.
 
 그래도 꽤 재밌게 읽었습니다. 사진이나 그림 자료가 풍부해서 좋았어요. 인용 문구 같은 것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했던 것도 좋았고요. 어떻게 보면 2주 전에 읽었던 <타인의 고통>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직접적인 사진이 많아서 조금 충격이기도 했지만, 한 인물의 악행(?)을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적절히 잘 풀어쓴 것 같아요. 단순한 정보 나열에 그쳤다면 중간에서 한숨 쉬고 책을 덮었을 테지만, 중간 중간 저자의 생각도 확인하면서 읽어나갈 수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답니다.

 

소유흑향

 

 

 

덧 : 저자는 '학자들이 스페인 왕자 엔히크를 유럽 제국주의의 시작으로 보는 것에 대부분 동의한다'고 적었지만, 글쎄요. 그냥 이건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덧2 :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아니라, 아주 잠깐 언급되는 프리드리히 2세입니다! 아무리 막강한 힘을 등 뒤에 포진해놓고 있다고 하더라도, 교황의 협박에 굴하지 않았던 걸로 보아 배짱도 좋았던 모양이에요.

 

덧3 :  2차 세계 대전 중 731부대-소위 마루타 부대-를 지휘하며 중국인, 한국인, 러시아인 등을 감금해 인체 실험을 강행했던 악귀 이시이 시로는 재판에서 트루먼 대통령을 비난하며 자신은 인류를 위한 일을 했지만, 트루먼은 그저 원자 폭탄 두개로 수십만명의 목숨을 앗아갔을 뿐이라며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내뱉습니다. 더 기가 막힌 건, 스탈린의 강요와 자신에 대한 모욕 속에서도 미국의 트루먼과 맥아더는 그 천인공노할 악귀에게 사면이라는, 무죄라는 기막힌 선물을 전해줍니다. 무엇 때문에? 바로 그가 가진 실험 자료들 때문이지요. 희생자들의 피와 눈물과 고통의 비명이 서려있는 그 종이 몇 장을 얻기 위해, 미국은 도덕과 양심을 그림자 속으로 쏙 가려버렸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완전 무죄 소식을 들은 이시이 시로가 너무 흥분해서 심장발작으로 죽었다고 하니, 정말로 세상에는 '권선징악'의 원리가 작용하기는 하는가 봅니다. 사실 이 책을 읽고나서는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혹시 트루먼이 자료를 넘겨 받고 난 다음 비밀 요원에게 명해 이시이 시로를 독살하거나 암살한 것은 아닐까 하고. 물론 말도 안 되는 억측입니다만, 자기를 재판에서 그렇게나 신랄하게 비판했는데 트루먼이 '허허허'하고 웃기만 한다면 그것도 말이 안 되니 말입니다.

 

덧4 : 원자 폭탄으로 사람이 죽는 건 대부분이 열과 방사능 때문이겠죠? 크기와 조합에에 따라 위력이 다르긴 하겠지만 원자폭탄이 발생 시킬수 있는 온도가 어떤 건 10 million, 다시 말해 천만도가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고 하니 말입니다. 즉 폭발의 중심지에 있는 건 그게 무엇이든 먼지도 없이 한 순간에 '소멸'하고 만다는 것이겠지요. 실제로 나가사키 핵폭탄의 6만명이 넘는 희생자 중에서 '실종자'라고 표시된 사람들은 전부 '시체도 없이 사라진'사람들이니 말입니다. 특히 이 6만명 중에 그 뜨거운 열로 인해(Burns)죽은 사람들이 95%라고 하니, 그야말로 생지옥이었을 겁니다.  

 
 
출처: 소유흑향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dnjsgl3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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