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베리는 삼성의 미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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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베리는 삼성의 미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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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의 힘으로 명문대를 마칠 것, 부모의 도움 없이 해외 유학을 다녀올 것, 해군장교로 복무할 것",스웨덴 최대의 재벌인 발렌베리(Wallenberg) 가문에서 최고경영자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필요조건들이다.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와 스웨덴 증권거래소
 2010.05.10

 

발렌베리는 삼성의 미래인가

 

 

"혼자의 힘으로 명문대를 마칠 것, 부모의 도움 없이 해외 유학을 다녀올 것, 해군장교로 복무할 것",


스웨덴 최대의 재벌인 발렌베리(Wallenberg) 가문에서 최고경영자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필요조건들이다.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와 스웨덴 증권거래소 시가총액의 40%를 차지하는 발렌베리가의 이러한 전통은 1856년 창업자 오스카 발렌베리가 스톡홀름에서 엔실다 은행을 창업하면서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5대에 걸쳐 150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통신장비의 선두주자이면서 오늘날 스웨덴의 자존심으로 통하는 에릭슨, 세계 최대 의약품 로섹의 신화를 만들어낸 아스트라제네카, 스칸디나비아의 날개 SAS, 산업공구 분야의 마켓리더 아트라스콥코, 하이테크 전투기의 강자 사브, 대형트럭의 롤스로이스 스카니아, 초일류 기업의 대명사 ABB, 세계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스토라엔소, 스웨덴 왕가의 로열뱅크 SEB, 세계 2위의 투석치료 전문기업 감브로, 유럽증권거래의 진원지 OMX, 세계가전시장의 거인 일렉트로룩스, 북유럽 최대의 IT컨설팅 업체 WM-데이터 등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이들 14개의 기업을 이끌고 있는 곳이 바로 <파이낸셜 타임즈>가 평가한 유럽최대의 산업왕국 발렌베리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쌓아온 개별회사의 경쟁력은 막강한 시너지효과를 형성하며 유럽의 빈민가 스웨덴을 세계적 선진국으로 우뚝 세웠다. 혹독한 기후와 열악한 산업조건 속에서 피워낸 의미 있는 꽃송이다. 발렌베리는 인구 850만의 스웨덴을 대표하는 기업집단이 아니라 전 세계적 모범 대기업으로, 지구촌 거대기업들이 꿈꾸는 모델로 위상을 높여 나가고 있다.


존경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발렌베리가의 비결은 무엇인가. 많이 알려진 이야기지만 그것은 한마디로 투명성과 도덕성을 강조하는 경영철학이다. 발렌베리에게 소유권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을 의미한다. 가문의 부를 신이주신 '선물'로 여겼으며 잘 키우고 잘 가꾸는 것이 '임무'라고 생각했다. 일궈낸 기업의 이익은 사회공헌에 아낌없이 쏟아 붓는다. 가문의 재산증식보다는 스웨덴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위한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창업자의 증손자 피터 발렌베리의 재산이 199억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를 반증한다. 스웨덴의 기업지배권을 가진 경영자연합은 한때 기업이익금의 85%를 법인세로 내자고 결의했다. 이 엄청난 세금을 피해 다른 재벌들이 스위스 탈출을 시도할 때도 발렌베리 가문은 노벨재단보다 더 큰 규모의 공익재단을 만들어 사회공헌과 첨단과학기술에 아낌없이 지원했다. 


발렌베리 소속 기업은 모두 독립경영이 원칙이다. 지주회사를 통해 이 14개 기업들을 지배하고 인베스터를 지배하는 공익재단이 최상위 지주역할을 한다. 인베스터가 자회사로부터 받은 배당이익을 공익재단으로 보내고 재단은 수익금을 스웨덴 과학 기술발전에 지원한다. 그래서 발렌베리는 과학자, 공학자, 의학자들의 든든한 후원자로 통한다. 그 결과 스웨덴의 학문과 산업, 공공의료등이 세계를 재패하는 밑거름이 됐다.


인베스터를 경영하려면 조건이 있다. 상기한 대로 부모 도움 없이 대학을 마치고 해외 유학과 해군장교 복무를 마친 사촌들 가운데 경쟁을 통해 경영자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자살하거나 자기도피를 시도하는 등 사고도 있지만 원칙은 엄격하게 지켜진다. 우리나라의 재벌들처럼 경영능력 검증 없이 때가 되면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자동 승계해주는 이상한 대물림은 찾아볼 수 없다.


또 한 가지 발렌베리의 특징은 노조와의 공존과 차등의결권이다. 한번도 노사가 불편한 관계를 갖지 않을 정도로 양측이 배려하는 모습은 이미 교과서적이다. 차등주식의결권 제도는 1주 1표의 전통방식이 아니라 인베스터의 주식은 1주 1000표의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차등의결권을 부여해 경영권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도록 짜여져 있다. 에릭슨 5% 주식으로 지주회사인 인베스터는 38%의 의결권을 행사한다.


지난 2003년 삼성 이건희 회장은 아들 재용씨와 함께 발렌베리를 찾았다. 삼성과 비슷한 위상과 기업구조를 가졌는데도 스웨덴 국민들의 변함없는 존경과 사랑을 받는 비결이 궁금했을 것이다. 당시 떠들썩했던 발렌베리 연구는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다가 이제는 차등의결권 정도를 연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은 주식으로 경영권 방어를 위한 대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발렌베리와 삼성의 차이점은 너무나 많다. 삼성과 달리 발렌베리는 기업도 그룹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발렌베리가 소유한 기업 어디에도 '발렌베리'라는 브랜드를 찾아볼 수 없으며 통일된 상징물도 없다. 소유지배 구조에서도 발렌베리는 삼성처럼 복잡한 출자구조가 아니다. 차등의결권주가 있기는 하지만 순환출자로 모든 자회사들이 운명적으로 묶여있지 않다. 경영역량과 리더십으로 경영권을 행사한다. 공익재단으로 흘러드는 이익금은 모두 사회책임투자에 소진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황제경영과 정경유착은 상상할 수 없다.   


최근에는 SK와 LG등이 오히려 발렌베리 모델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영자들의 사회적 존경에 목말라하는 한국 기업들에게 발렌베리는 좋은 본보기다. 애국심으로 키워준 국민소비자를 무시하고 기업의 과실을 오너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한국적 재벌의 사고방식은 이제 낡은 생각이다. 비자금과 각종 스캔들, 법정을 오가는 회장님의 어두운 표정이 한국 재벌의 이미지로 남아서는 곤란하다. 국가와 소비자, 기업의 수평적 공존이 미래의 비전이다.


존경받는 기업, 발렌베리 가문의 두 가지 가르침을 되새겨 본다.

"벌면 반드시 환원하라"

"존재하지만 튀거나 드러내지 말라"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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