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기 태양의 제국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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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기 태양의 제국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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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시의 가을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학창시절 의미도 모르고 외웠던 시인 김광균의 추일서정(秋日抒情) 첫 구절이다.
2010.04.21

 

22세기 태양의 제국 폴란드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시의 가을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학창시절 의미도 모르고 외웠던 시인 김광균의 추일서정(秋日抒情) 첫 구절이다.


1939년 독일은 선전포고도 없이 도룬시부터 공습을 감행했고 폴란드는 영국에 망명정부를 세웠다. 가치를 잃은 지폐가 낙엽처럼 흩날리던 암울한 세월. 소련과 나치독일의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밀약(독-소 불가침 조약)에 따라 이해 9월 폴란드는 동,서로 분할점령을 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다. 이듬해 3월, 소련은 폴란드인 2만5700명의 처형계획을 만들어 스탈린의 승인을 받고 소련 서부 스모렌스크 인근 카틴숲에서 두 달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방아쇠를 당겨 이들을 몰살시켰다. "다시는 독립국가를 만들 수 없게 해 주겠다"는 소련의 의도아래 대학교수, 변호사, 의사, 언론인, 작가 등 지식인 모두의 씨를 말리는 현대판 인종도륙작전이 감행됐다.


이후 소련의 위성국가 신세가 된 폴란드는 이 비참한 역사를 입가에 올리지도 못한 채 지내다가 60여년이 지나서야 공식적인 추모행사를 시작했다. 소련은 사건 발생 50년 동안 나치의 소행이라며 발뺌하다가 1990년에야 책임을 인정했다. 분노가 들끓었지만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없었던 폴란드인들에게 "카틴숲의 악몽"은 현대사의 트라우마이며 희생과 순교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70년 후 추모행사를 위해 그곳을 찾은 폴란드의 카친스키 대통령 일행이 전원 현장에서 사망했으니 기막힌 역사의 악연이다.


현대사에서 폴란드처럼 비극적인 역사를 간직한 나라도 드물다. 그 비극의 무대 뒤에는 항상 러시아가 있었다. 같은 슬라브 민족이면서도 반목과 갈등의 역사를 반복했던 두 나라의 비극은 966년 폴란드가 가톨릭을, 988년 러시아가 그리스 정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부터 시작됐다. 초반엔 폴란드가 유리했다. 리투아니아와 손잡고 연방을 구성해 17세기 러시아 침략에 성공하며 모스크바를 통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짧은 승리를 맛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바로 쇠퇴의 길을 걸었고 강대국으로 다시 돌아온 러시아와 프로이센 등에 의해 세 차례나 영토분할을 당했다. 1795년에는 아예 지도에서 폴란드가 사라지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123년 동안 폴란드는 제정러시아 지배를 받는다. 1918년 1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찾아온 독립도 오래가지 못했다. 1939년 2차 대전으로 다시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분할 점령해 버린 것이다.


독립국가를 만든 폴란드는 미국편으로 돌아서 동유럽 미사일 방어기지를 자국 영토에 세우도록 허용하면서 러시아 정부와 깊은 갈등을 빚었다. 또 러시아 연방에서 독립하려는 체첸반군을 지원하는가 하면 2008년에는 러시아와 전쟁을 벌인 그루지아를 지원하는 등 폴란드의 선택은 항상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웠나갔다. 수백 년 동안의 원수지간이 쉽사리 우호관계로 발전하기 어려워 보인다. 때마침 벌어진 아이슬란드 화산폭발로 항공 대란이 일어나고 대부분의 국가수뇌진이 장례식에 불참한가운데 폴란드 크라코프에서는 예흐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최근 들어 폴란드는 각종 정책을  둘러싸고 사실상 내부국론이 분열돼 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장례를 집전한 도널드 투스크 총리의 말대로 "이 죽음을 맞이해 폴란드는 하나로 뭉치는 모습"을 보였다.


국제정치와 미래예측의 탁월한 학자 조지 프리드만(정치 외교 안보분야의 싱크탱크 스트렛포의 대표)은 폴란드가 이러한 모습을 딛고 앞으로 22세기 태양의 제국으로 급부상할 것 이라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최근의 저서 <100년 후. Next 100 Years>를 통해 지금의 미국과 중국 외에 22세기 강대국 후보로 일본과 터키, 폴란드를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6세기 이후 지금까지 폴란드는 쇠약한 상태다. 하지만 200년간 역동성을 유지했던 독일이 앞으로 50년간 인구감소 등으로 몰락하고 그 자리를 폴란드가 채운다는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가 동쪽으로 다시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막대한 경제적 기술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고 현재의 양국 관계를 유추해보면 러시아와 대치하는 국가들의 연합에서 폴란드는 선구적 역할을 하며 강대국으로 올라설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 같은 예측이 솔깃해지는 것은 지정학적 측면에서 폴란드가 우리와 유사점이 너무 많다는데 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고통의 역사를 살아온 한국은 지금 세계의 주변에서 중심으로 치닫고 있다. 자크 아탈리 같은 프랑스의 경제 미래학자는 한국이 앞으로 "일레븐" 국가 가운데 가장 소득이 높아지면서 아시아 최대의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보았다. 급부상하는 세계의 중심 국가 즉 일본, 중국, 인도, 러시아, 멕시코, 인도네시아, 남아공, 브라질, 캐나다, 호주, 한국 등 11개 국가  "일레븐" 중에서도 발전의 속도나 역동성이 가장 뛰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폴란드 국민들이 슬픈 역사를 딛고 일어서 웅대한 국가 재건의 길을 걸어주기를 기원한다. 그리하여 미래학자들의 예측대로 그들이 떠오르는 "신3대 강국"이 되고 우리가 "일레븐의 중심국"이 되어 미래의 어느 날 세계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날을 그려본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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