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상태바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복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주말이었다. 봄꽃이 피어나는 정원을 오가며 중국인민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지센린(季羨林)선생의 인생에세이를 읽었다. 중국어를 시작하면서부터 알게 된 존경하는 석학이라는 점과 그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주말이었다. 봄꽃이 피어나는 정원을 오가며 중국인민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지센린(季羨林)선생의 인생에세이를 읽었다. 중국어를 시작하면서부터 알게 된 존경하는 석학이라는 점과 그의 잔잔한 철학이 마음에 들어 자연스럽게 재독(再讀)의 손길이 갔다. 하지만 96세에 생을 마칠 때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행복이라는 것은 "그저 다 지나가는 강물"속에 알맹이가 있다고 한 깊은 뜻을 헤아리는데 머리가 혼란스러워 진다.

"천지란 만물이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고 세월이란 끝없이 뒤를 이어 지나가는 나그네와 같은 것이다. 나는 이 행복한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품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늘은 너무도 파랗고 물은 너무도 맑으며 자연은 정말로 아름답고 인간은 정말로 소중하다. 행복도 고통도 다 지나간다. 지난 그 시간들이 다 행복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지센린 선생이 죽음을 앞두고 병원에 입원한 뒤 임종 전 남긴 행복에 대한 생각이다.

사람이 태어나 한평생을 사는 목적이 행복이라면 그게 뭘까에 대한 고뇌는 모든 이들의 공통된 명제다. 그래서 역사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철학자와 석학들, 종교계 리더들이 이 본질을 연구하는데 머리를 싸매어 봤지만 무슨 명쾌한 해답이 있었던가. 다만 각자 어떤 이유로 자신만은 행복하다고 느끼는 주관적인 요인만이 행복의 최근사치일 뿐이다.

부산 여중생 성추행피살 사건으로 한동안 분노를 삼키던 민초들은 천안함 사건으로 거의 공황상태다. 사건의 본질은 오리무중이고 수장된 장병들을 살리려다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는가 하면 이제는 선체인양 외에 방법이 없다는 답답한 상황만 생중계 되고 있다. 모두가 들떠서 한마디씩 자기주장으로 백가쟁명이다. 어떤 일이든지 진실에 다가서는 자세로 백성을 대하는 것이 지극한 태도인데 미흡한 해명으로 혼란을 부르는 정부가 안타깝다. 국민과 정부사이 서로의 신뢰전선에 이상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런 문제를 놓고 보여 왔던 과거지사가 개운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지난해 정부발표를 보면 우리나라는 잘 나가는 나라였다. 리먼 사태이후 대다수 국가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지만 한국은 성장률 0.2%로 호주 등에 이어 OECD 회원국 가운데 세 번째로 높았다. 수출입을 합산한 왕복무역은 13위권을 지켰고 수출로만 본다면 세계 시장점유율이 2.6%에서 3%로 정부수립이후 또 신기록을 갈아 치웠다. 국민 한사람 당 소득은 1만7천여 달러로 2008년 2만 달러를 잠깐 찍은 후 계속 낮아지고 있지만 최근의 경제위기를 잘 이겨내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이렇게 숫자만 좋아지면 국민들은 행복한가?

월드컵 4강 진입, 중동 원자력 발전 건설수주, 벤쿠버 동계올림픽 종합성적 5위 달성에 이어 올해는 G20 정상회의가 우리나라에서 열려 국격이 높아질 것이라는 요란한 광고가 저녁 황금시간대 주요 TV화면을 장식한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뿌듯하다는 멘트와 함께-.

"이러니 너희들 행복하지? 정말 행복하지?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라고 대답을 강요당하는 느낌이다. 소득 3만 달러를 달성하면 남들이 우리를 알아주고 선진국 대열에 낄 수 있어 자동적으로 행복해질 거라는 집단 최면상태에 빠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 회원국 30개 나라 가운데 우리의 행복지수는 25위로 최하위에 가깝고 자살 사망률은 부동의 1위를 몇 년째 지키고 있다. 여기에 각종 정치사회적 갈등은 줄기는커녕 오히려 더 커져만 가고 있다.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 히말라야의 왕국 부탄과 비교하면 우리소득이 40배 이상 높다. 숫자로만 보면 그들보다 우리가 월등히 행복해야 하는데 설명이 안 된다. 국가경쟁력이 높아진다고 자동적으로 국민들의 삶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성숙 없이 물질만 풍요로워지면 세상은 어김없이 천박해진다. 서두르지 말고, 호들갑 떨지 말고, 다지면서 천천히 이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길이다. 서로에게 화나는 일을 만들지 말고 화를 풀어야 인생도 풀리고 나라도 풀린다고 베트남 출신의 틱낫한 스님은 일깨우고 있다. 숨기고 조급해하고 과시하면서 우리의 치적을 알아달라고 구걸할 필요가 없다. 내면을 담금질해 우리 스스로가 만족하면 그만이다. 뭐든지 만들어서 억지로 끌고 가고, 강요하고, 주입시키려는 과거의 자세는 이제 식상하다. 거창하고 장중하고 엄청난 것들만 의미를 두지 말고 잔잔한 흐름 가운데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선진스러움, 이것을 이뤄내야 한다. 서로에게 조급한 짓, 미안한 짓, 욕심스런 짓을 거둬야 행복한 세상이 열린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