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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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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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소망재활원의 장애어린이 14명이 무대 앞에 나섰다. 대나무를 깎아 만든 밤벨이라는 악기를 하나씩 들고서 각자 불편하지만 여유 있는 걸음걸이로 대열을 맞췄다. 밤벨(뱀부벨;Bamboo Bell)은 인도네시아 전통악기로 높낮이가






성남 소망재활원의 장애어린이 14명이 무대 앞에 나섰다. 대나무를 깎아 만든 밤벨이라는 악기를 하나씩 들고서 각자 불편하지만 여유 있는 걸음걸이로 대열을 맞췄다. 밤벨(뱀부 벨;Bamboo Bell)은 인도네시아 전통악기로 높낮이가 다른 대나무 통 10여개를 가로로 붙여서 팬플룻처럼 제작된 목관악기다. 입으로 불어내기가 힘겨운 장애인들이지만 이들의 얼굴이 상기되면서 나오는  벰벨소리는 파도처럼 좌우를 오가며 근사한 하모니를 이뤄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나라로--", "꽃잎속의 작은 이슬방울들- 바람아 너는 알고 있지 비야 너는 알고 있지, 무엇이 이 숲속으로 음 우리를 데려갈까--". 음정과 박자가 곳곳에서 빗나갔지만 은은한 이들의 연주에 참석자들은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다.

곧 이어 휠체어에 몸을 기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 교수가 소개됐다. 그는 4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 네스벨리 연구출장도중 교통사고로 중상을 당했다. 헬기로 긴급수송이 이뤄졌고 수차례 수술로 목숨은 건졌지만 목 아래쪽으로는 전신마비 상태의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고통을 딛고 학교로 돌아온 이 교수는 특수 고안된 휠체어 컴퓨터로 의사 전달을 하면서 여전히 강단을 지키고 있다. 환경과 과학의 최전선에서 정상인과 같은 연구업적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스로 알려진 이 교수에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담기면서 격려의 박수가 모아졌다.

또 한사람이 호명됐다. 25년 전 교통사고로 장애가 됐지만 불굴의 의지로 스포츠용품 수출회사를 차려 현재 연간 25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은경무역 이종오 사장. 김종훈 대표와 고교 동창이기도 한 이사장은 동기회장을 맡을 정도로 정상인보다 정력적인 삶을 살고 있다. 존경과 경이의 뜻을 담아 박수를 보내고 난 뒤 모두는  숙연해졌다.

지난주 서울 삼성동 공항터미널에서 있었던 사회복지법인 "따뜻한 동행"의 출발식 모습이다. 건설 감리업체 한미파슨스 김종훈 대표와 직원들이 매달 1%의 급여적립으로 모은 21억원이 종자돈이다. 김 대표는 중증장애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새로운 삶을 일궈낸 이들을 일일이 참석자들에게 소개하면서 앞으로 남은 여생을 사회복지사업에 바치겠다고 말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대기업 출연금이 아니고 직원들이 함께 참여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설립한 복지법인은 국내 최초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는 시작이었다.



김종훈 대표가 사회봉사를 시작한 것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교회에서 장애인 시설을 방문했는데 뇌성마비 장애아들을 보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정상인으로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큰 축복이고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매주 토요일 복지시설을 찾았고 지난 96년 회사를 설립하면서부터는 한미파슨스의 모든 직원이 함께 토요봉사를 실천했다. 입사하면서 아예 봉급의 1%를 기부하겠다는 서약서도 받았다. 15년 동안 모은 기금에 김 회장이 개인 주식 50%를 처분해 보탰다.

건설관리라는 회사특성을 살려 우선 노후 복지시설 개선과 보수작업을 하면서 형편이 닿는 해에는 작은 복지관도 신축했다. 구성원들의 전문적인 역량을 활용하고 협력회사와 공동으로 시설공사를 추진하면서 여러 가지 시너지 효과도 냈다. 날이 갈수록 직원들의 참여와 만족도가 높아졌고 좀더 체계적인 활동을 해야겠다는 뜻에서 "행복한 동행"을 출범시키기로 했다.

행사끝에 만난 김종훈 회장은 소박한 뜻을 털어놨다. "언젠가 회사를 물러나면 앞으로 태어날 손자 손녀들 손을 잡고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내 작은 바람입니다. 그래서 손자 손녀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 할아버지라는 말을 듣는 것이 소망입니다.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먹고 사는데 필요이상의 낭비를 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해요. 주변을 돌아보면서 살아야 행복한 것 같습니다".

99원이 모아지면 1원을 뺏어다가 100원을 만들고 싶은 것이 세속의 욕심일진데 그 유혹을 뿌리치고 자기를 절제하면서 행복한 동행 쪽으로 생각을 바꾼 김 회장의 결단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하루하루 사는것이 팍팍하지만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모아져 더 아름다운 색을 낸다.

불교 경전에 한 수행자가 경전을 갉아먹는 쥐를 없애기 위해 고양이를 키우고 그 고양이를 먹일 우유를 얻기 위해 소를 키우고 그 소를 먹이기 위해 부인을 얻어 결국 수행자의 길을 포기했다고 쓰여 있다. 탐욕을 다스리는 것이 깨달음의 명제다. 정신의 풍요로움은  물질적 풍요를 늘압도한다. 몸은 비대해지면서 마음은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고 가르친 법정스님의 화두를 떠올려 본다. 나를 다스려 세상을 밝게 하는 일이 거창하거나 보통사람은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김종훈 대표와 한미파슨스 직원들이 행동으로 보여줬다. 오늘부터 마음의 풍요를 찾아 세상의 낮은 곳을 돌아보는 지혜를 갖자고 다짐해본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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