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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0

 

 

베이징 798에서 만난 쩡판즈

 

처음에는 군수공장이었다. 원자탄의 부품과 포탄을 만들던 허름한 건물이었다. 벽돌로 외벽을 세우고 가건물처럼 지붕을 높게 올린 재래시설이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그 시절 의복도 갖춰 입지 않은 중국인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밤낮없이 모자라는 무기를 만들어 냈다. 그들의 애환과 땀 냄새가 아직도 구석구석 남아 있는 듯하다. 낡고 허물어진 골목길은 구겨진 역사가 녹슨 철판처럼 몇 겹으로 쌓여있었다.

베이징 ‘따산즈(大山子) 798 예술구’ 는 중국을 대표하는 최초의 예술특화지구다. 개혁 개방 이후 중국경제는 수많은 경제특구와 무역특구로 재미를 보았다. 여세를 몰아 예술까지 특화지구로 만들어 사회주의 발전 모델 안에 담아낸 느낌이었지만 따산즈는 보는 그대로 그냥 새로웠다. 798은 군수공장의 일련번호, 말하자면 지번이다. 화력발전소를 재 단장시킨 런던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나 뉴욕의 유명한 소호, 파리의 낡은 기차역 오르세 미술관처럼 버려진 유산에서 피워낸 재탄생이다. 베이징시내 또 다른 ‘숭장(宋庄)’ 이나 상하이 ‘M50 예술구’ 도 마찬가지다.

이곳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2002년 미국인 예술가 로버트 버넬이 들어오면서부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저렴한 임대료에 몰려드는 예술가들의 활동을 보고 공산당도 철거대신 보존과 발전대책을 내놨다. 철창에 갇힌 거대한 낙타가 컨테이너 박스처럼 포개진 설치미술부터 ‘798’은 시작되었다. 파격과 신선함의 연속이다. 400개의 갤러리와 화랑, 독특한 카페, 서점들은 눈을 즐겁게 만드는 대상들이다. ‘따산즈 국제예술제’, ‘798 비엔날레’ 는 해마다 수백만을 이곳으로 몰고 온다.

   
▲베이징 따산즈의 최대갤러리 유렌스에서
 

중국미술의 4대 천왕(팡리준, 장샤오캉, 웨이민준, 쩡판즈)이 오늘의 따산즈를 이끌어냈다. 뉴욕 소더비에서 아시아 최고가 낙찰을 기록한 장본인들이다. 이 가운데 나는 쩡판즈(曾梵志. 1964-)를 가장 좋아한다. 그의 그림 속에는 늘 독특한 울림이 있다. 따산즈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유렌스 갤러리에서 쩡판즈 작품들을 만났다. 그는 후베이 우한(武漢) 사람이다. 우한은 무지막지하게 더운 곳이다. 오죽하면 대륙의 ‘4대 화로(상하이, 우한, 난징, 챵사)’ 라고 했을까. 어린 시절 목격한 가난과 무더위 속 병원의 열악한 환경은 미술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병원시리즈>는 작품마다 묘한 감정으로 나의 발길을 붙잡았다.

3세대 아방가르드 작가답게 일그러지거나 멍한 표정에서 우러나오는 인간의 표정은 가슴 깊은 곳의 심연을 흔들고 지나가는 것 같다. 의사의 커다란 손, 간호사의 초월적 눈동자는 그 시절 중국의 부조리한 사회와 어쩔 수없이 생명을 이어가는 이웃들의 내면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관조의 시선이 차갑게 존재한다. <고기>와 <가면>, <조상>, <무제>로 이어지는 쩡판즈의 작품세계 시작점은 이 병원시리즈다. 초기에는 욕망과 허위로 가득한 사회를 고발하다가 지금은 정치영웅이나 대중스타를 불규칙한 자유곡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늘 그래왔듯이 그는 변할 것이다. 어떤 방향일지가 기대되는 궁금증이다.

2007년 중국을 방문한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만리장성이나 자금성보다 따산즈를 먼저 찾았다. 버려진 공장에서 떠오르는 중국미술을 보고자 했던 것이다. 쩡판즈의 그림들은 사르코지의 눈을 사로잡았다. 전쟁과 혁명, 산업화. 어떤 것도 비켜가면서 온전히 이뤄낼 수는 없다. 예술은 그 사회가 겪은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세대가 겪은 갈등을 그도 밟아왔다. 괴상한 표정의 병원사람들이 최면처럼 뒤엉킨 회화는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자신의 그림 <병원시리즈> 앞에 선 쩡판즈

 

따산즈는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내뿜고 있었다. 차이나의 독특함에 경험이 입혀진 대작들은 유럽의 대성당만큼이나 높은 천장 벽에 걸려 흐르는 역사를 반추하고 있었다. 이념의 틈바구니에 갇힌 고달픈 민초들의 삶이 절절하게 담겨있어 더욱 감정을 일렁이게 한다. 작품마다 시대의 아픔들이 골고루 뿌려져 있다. 공감이 빠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다. 고단한 시절의 분노와 억압을 이겨내고 예술이라는 수단으로 현재를 이어가려는 강력한 의지가 읽혀진다.

따산즈는 당대를 추구한다. 장야난, 이화, 황루이 등 1세대 중국 현대 미술가들의 정신이기도 하다. “지금의 798, 너는 당대에 있다. 798은 당대 예술인 모임이다. 당신을 위한 예술생활을 추구한다”. 예술구에서 접한 문구다.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그 범위를 당대, 지금, 현재로 국한한 것은 매우 독특했다. 새로운 영역, 미지의 콘텐츠를 향한 역동성의 반론이 아닐까도 생각해보았다. 개인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국가의 후진성을 그들은 이렇게 이겨내고자 했을것이다.



   
▲798의 분위기는 TRB(템플레스토랑)의 설치조각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군수공장 건물들은 구조주의 건축의 백미다. 높은 천장, 탁 트인 넓은 공간, 하루 종일 빛이 머무르는 조건은 최고의 갤러리다”. 얼마 전 작고한 이라크 출신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디드가 따산즈를 방문하고 던진 찬사다. 서울의 아라리온과 표 갤러리도 진출했던 시기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798은 무기의 그늘에서 피어난 예술의 부활이다. 사람 죽이던 흉기로 가득했던 공장은 이제 사람들의 영감을 살려내는 예술품들이 가득하다.

중화아트의 특이한 정서는 역사의 부활과 함께 세계인들의 시선에서 화려하게 비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눈에 그곳은 동상이몽의 현장이기도 했다. 대륙을 통치하는 공산당은 예술이 인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사회주의 품안에 오래 붙잡아 둘 수 있다고 믿는 것 같고,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이 숨 막히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조금이라도 이완시키는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는 커뮤니케이션의 미스매치(엇박자)를 보는 듯 했다. 정치와 예술의 이중성. 이것은 시대의 필연인가, 우연인가.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