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월드컵이 주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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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월드컵이 주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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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전에서 점점이 멀어지는 로벤 아일랜드를 떠나 다시 케이프 타운으로 돌아왔다.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희망봉 반도 위쪽에 자리한 케이프 타운은 일찍이 영국과 네덜란드가 식민지 개척으로 진출해 그 매혹적인 위치와 자연조건에 반해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던 땅이다


뱃전에서 점점이 멀어지는 로벤 아일랜드를 떠나 다시 케이프 타운으로 돌아왔다.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희망봉 반도 위쪽에 자리한 케이프 타운은 일찍이 영국과 네덜란드가 식민지 개척으로 진출해 그 매혹적인 위치와 자연조건에 반해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던 땅이다.
인간과 동물이 살기 가장 알맞은 기온의 천혜의 땅 남아공(South Africa: SA),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도시 케이프타운 앞바다에 떠있는 로벤 섬에서만 넬슨 만델라는 17년을 갇혀 있었다. 말이 그렇지 모두 28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백인정권의 모진 학대를 이기고 마침내 지난 92년 만델라가 석방되고 선거를 거쳐 남아공대통령으로 세계 인권운동의 영웅으로 돌아온 그의 불굴의 의지와 위대한 발자취를 보기 위해 로벤 섬은 지금도 순례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지상낙원 케이프타운은 남아공현대사의 비극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서둘러 인터뷰를 약속한 남아공의 마지막 백인정권 대통령 드 클레르크를 만나기 위해 차에 올랐다. 클레르크 재단을 운영하며 소일하는 노(老)정객은 케이프 타운 교외의 테이블 마운틴 가는 길,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아직도 세계문제를 걱정하고 있었다. 수많은 그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만델라는 민주주의 영웅으로 세계적 평가가 높지만 우리는 서로 노년을 걱정하는 인간적인 동지"라며 그를 이해하려면 넬슨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Long Walk to Freedom)'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생일 때는 서로 축하 케익을 보내고 가끔 둘이서 점심을 하면서 내면의 얘기를 나눈다고 한다. 극단적인 정치노선으로 서로 증오할 것만 같았던 두 사람 사이가 이렇게 가까운 것은 예외였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에서 구한 두툼한 번역본을 아프리카 여정 내내 감동 깊게 읽었다고 하니 청력이 약한 클레르크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굿-"을 연발했다. 하지만 만델라의 건강이 걱정스런 표정이다. 월드컵 얘기로 넘어가자 그와 함께 남아공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뛰어다녔던 기억이 새롭다면서 개최지로 결정 됐을 때 너무 좋아하던 만델라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케이프타운 클레르크 재단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드 클레르크(사진 왼쪽) 전 남아공 대통령과 함께-

치안문제와 경기장 준비 미흡으로 대안을 세워야 한다는 반대여론에 무던히 시달리던 남아공 월드컵은 이제 조 추첨까지 마치고 본격적인 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요하네스 버그에서 만난 남아공 체육부 차관 거트 우쉐이젠(네덜란드계 남아공 백인)은 "한.일 월드컵보다 더 자신 있게 이번 대회를 성공 시킬 것"이라며 걱정 말라는 표정이다. 이미 한국을 수차례 방문해 경기장과 운영시스템 등을 연구해 남아공월드컵은 한국대회가 모델이라고 털어놨다. 요하네스버그는 물론이고 프리토리아나 우리나라가 본선을 치루는 인도양 해변의 아름다운 도시 더반과 포트엘리자베스, 그리고 사법부가 위치한 불루폰테인 등에서 경기장 공사 마무리가 한창이다.

8년 간격으로 월드컵을 치루는 한국과 남아공은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우선 인구 규모와 정치 민주화 과정이 비슷하다. 남아공의 국토면적은 한반도의 5배가 넘지만 인구는 우리와 비슷한 4800만 정도다. 군부독재와 맞서 얻어낸 민주화와 유럽식민 세력인 백인정권의 인종차별을 끝장내고 지금의 흑인정권을 세운 과정이 닮았다. 김대중, 만델라 두 주인공들이 노벨 평화상을 받고 월드컵을 유치한 과정까지 공통점이다. 하지만 우리가 단일민족 순혈주의를 이어온 반면 남아공은 그야말로 무지개 나라다. 흑백과 인도 아랍계까지 섞여 이룩된 다민족 국가다. 그만큼 국가의 보폭이 넓다. 비동맹 77그룹의 리더 역할을 했고 인도, 브라질과 함께 3개국 협의체인 IBSA를 만들어 선진국 동맹에 대응하는가 하면 올해는 우리나라와 함께 아프리카 유일의 G20 맴버로 올라섰다.

정치 경제면에서도 남아공은 아프리카 100여개 국가의 큰 형님이다. 아프리카 100대 은행 가운데 1위부터 5위까지를 차지하는 경제 리더로 검은 대륙의 해외투자유치와 법률, 군사, 교육, 기술개발 등 모든 분야에서 아프리카의 베이스 캠프다. 아프리카 대륙의 총생산 30%를 차지하고 1인당 소득 5천 달러가 넘어섰는데도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은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 헤이드)과 백인정권의 폭정을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대부분의 현지 시민들은 삼성, LG같은 코리아 브랜드는 알아도 한국이라는 국가의 정체나 위치 등을 잘 모른다는 점이다. 케이프 인근의 와인생산지 스텔렌보쉬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포도주가 싱가포르 까지 진출해 있지만 한국에는 아직 닿지 않고 있다. 비행기로 20시간 날아가야 하는 거리만큼이나 심리적으로도 두 나라의 간격은 아직 멀다.

하지만 이번이 너무 좋은 기회다. 두 나라의 월드컵 경험을 공유하면서 영국과 네덜란드가 3세기동안 투자해온 사회적 인프라가 매력적인 남아공에 우리 기업들이 적극적인 진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울과 요하네스버그를 잇는 직항노선 문제를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하고 이미 수준이 검증된 현지 대학과 병원들을 묶어 양국의 협력과 비젼을 하나로 공유해야 한다. 또 미국이나 인도 등에만 집중하고 있는 FTA 협상을 남아공과도 추진해 양국의 수출입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대외정책연구원에 따르면 FTA가 채결될 경우 두 나라의 수출량이 현재보다 40%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회사 드비어스를 비롯해 상위권 광물회사들이 즐비한 현지 업계와 협력하면서 자원개발을 위한 전력진출 등이 이뤄지면 아주 매력적일 것이다.

백인정권이 막을 내린 92년부터 시작된 우리 이민사회는 이제 5천여 명에 육박하고 있다. 서로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지금까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던 양국관계를 더 긴밀하게 다듬어 갈 때다. 그래서 떠오르는 대지, 아프리카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중국과 인도의 자원선점을 인정하고 지금부터라도 겸허하고 따뜻하게 아프리카 끌어안기를 시작하면 가까운 장래에 큰 수확이 돌아올 것이다. 케이프반도 희망봉 앞바다에서 대서양과 인도양이 하나의 물결로 합쳐지듯이 남아공은 아프리카의 가능성을 한데 모아 녹여내는 희망의 용광로다. 여기에 우리의 열정과 기술을 섞으면 새로운 역사가 이뤄질 거라는 생각으로 다시 만델라의 자서전을 펼쳐들고 홍콩행 비행기에 올랐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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